"송년회만 생각해도 마음이 무거워져요"
연말이면 반복되는 참석하기 불편한 송년모임,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정책주간지 'K-공감' <신기율의 마음 상담소>와 함께 대처 방법을 찾아볼까요?
“불편하고 어색한 친목모임 싫어
송년회만 생각해도 마음이 무거워져요”
Q
저는 뚜렷한 목적 없이 만나는 친목모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 같은 연말이 되면 송년회 연락을 자주 받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어떻게 해야 모임에 참석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불편함과는 별개로 사람들과의 관계도 중요하니 초대를 매번 거절하기도 어렵습니다. 작년 이맘때도 가기 싫은 송년회에 억지로 참석해 피곤하고 어색한 분위기를 겪어야 했습니다. 모임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이 커져서 결국 핑계를 대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버렸습니다. 겉으로는 반갑고 즐거운 척 웃고 있었지만 마음속에는 불편함과 고립감이 가득한 시간이었어요. 그곳에서 저는 차라리 투명인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불편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이제는 모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무거워지고 지치는 기분이 듭니다. 올해도 어쩔 수 없이 송년 모임에 참석해야 할 거 같은데 어떻게 해야 편한 마음으로 모임에 갈 수 있을까요?
- 김영아·가명, 47 -
A
영아 님, 참석하기 싫은 송년회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하시겠어요. 제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영아 님 기분이 어떨지 잘 알 것 같습니다. 다들 웃고 떠들고 즐겁게 어울리는 자리에 앉아 있지만 저만 혼자인 것 같은 느낌, 분명 그 자리에 함께 있지만 저만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한 번은 친한 사람이 거의 없는 낯선 모임에 참석해서 대화에 끼지 못한 채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불쌍해 보였는지 처음 보는 분이 제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습니다. ‘오늘 모임 재미없으세요? 성격이 내향적인 편이시죠. 그래도 모임에 나왔으면 즐기셔야죠.’ 걱정인지 비아냥인지 알 수 없는 상대의 말을 들으면서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습니다. 그 뒤로도 몇 분이 제게 말을 걸었지만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고 저를 향한 시선이 고맙기보다 오히려 더 초조하고 불편해져만 갔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모임은 새로운 음식을 경험할 수 있는 ‘뷔페’?
그런데 이런 저와는 다르게 제 주위에는 진심으로 모임을 즐기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모임에 나가면 어떤 점이 즐거운지 여쭤보면 공통적으로 비슷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낯선 사람들로부터 내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모임을 뷔페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뷔페에 가면 평소에는 먹어보지 못한 음식을 자유롭게 맛볼 수 있듯이 모르는 사람이 많은 장소일수록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즐거움이 있다는 것이죠. 모임이 끝난 뒤에는 그곳에서 느꼈던 새로운 자극을 통해 그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나 영감이 떠오르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임을 좋아하는 분들은 관계의 초점이 저와는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상대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가치를 얻을 수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시선의 차이가 모임에 대한 태도를 결정짓는 이유였던 거죠.
물론 관계를 맺는 방식에 정답은 없습니다. 대신 중요한 점은 자신에게 어떤 관계가 더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지를 아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폭넓은 교류가 가치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사람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좁고 깊은 관계를 더 선호합니다. 돌아서면 잊히는 만남보다 좀 더 진정성 있는 교감을 원하는 거죠. 그래서 요즘에는 제 성향에 맞지 않는 모임에 참석하게 됐을 때도 예전처럼 우두커니 앉아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과 깊이 있는 관계를 맺으려고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두 사람과의 짧은 대화일지라도 마음을 다해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내가 혼자라고 느낄 때는 소외감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히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내 마음이 왜 쓸쓸한지, 내 마음이 어떻게 불편한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마음을 알아차리고 공감하는 거죠. 이런 내면의 대화는 자신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임이 아니어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있다
영아 님, 송년회가 불편하다면 굳이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관계는 꼭 모임을 통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그중에서 특별히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몇 사람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내거나 조용한 자리에서 만남을 제안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 방식이 오히려 더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는 데 좋을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석해야 할 때는 참석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짧게 참여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됩니다. 함께 참석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양해를 구한 후에 모임의 시작이나 끝 무렵에 잠깐 들러 인사만 나누고 나오는 식입니다. 나와야 할 시간을 미리 정해두면 조금은 덜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참석의 길이가 아니라 싫은 마음을 이겨내고 참석했다는 정성이니까요. 어쩌면 올해 송년회는 영아 님만의 방식으로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영아 님이 불편하지 않은 방식을 찾아 관계를 이어가고 진심을 전하는 겁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습니다. 단체 모임이라는 형식을 따르지 않아도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영아 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식으로 이번 연말을 준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