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과자 사는 일, 누구에겐 당연하지 않습니다
[권현서 기자]
"엄마, 거짓말 아니제? 내가 혼자 어떻게 고르노."
마트에 가서 사고 싶은 과자를 직접 담아보라는 엄마의 말에 10살 태윤이가 말했다. 태윤이는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아나운서가 꿈인 어린이다.
지난 8월 태윤이와 태윤이 어머니 최윤겸(48)씨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태윤 유튜브'에는 태윤이가 점자로 된 상품명이 붙어있는 슈퍼에서 난생처음 스스로 과자를 골라 담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 영상은 조회수 약 1만 회를 달성했고 많은 비장애인들이 점자의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도 태윤이를 비롯한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와 함께 편리한 일상생활을 하길 바라며 힘쓰고 있는 태윤이 어머니 최윤겸씨와 이야기를 나눠봤다.
"혼자 과자를 사다니, 정말 기뻐요"
"스스로 계산하고 과자를 사서 나오자 그제야 믿더라구요. 정말 너무 기뻐했습니다."
태윤이의 오랜 소원은 스스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태윤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엄마가 골라주는 과자를 먹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때 태윤이 어머니 최윤겸씨 눈에 태윤이의 '점자정보단말기'가 들어왔다. 점자정보단말기란 전자 점자와 음성을 통해 문서의 출력과 인터넷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휴대용 정보통신 기기다.
▲ 태윤이의 점자정보단말기와 최윤겸씨의 작업 흔적 |
ⓒ 최윤겸씨 제공 |
▲ 점자정보단말기로 라벨링 작업을 하는 최윤겸씨 ⓒ 최윤겸씨 제공 |
▲ 점자 라벨을 손 끝으로 읽고 있는 모습 |
ⓒ 최윤겸씨 제공 |
▲ 친구와 함께 점자 라벨이 부착된 마트에서 라면을 고르는 태윤이 |
ⓒ 최윤겸씨 제공 |
마트 사장에게 들은 충격적인 말
"점자 라벨링 작업 협조 요청을 하러 마트에 갔다가 눈물을 흘리고 나온 적도 있습니다. 차가운 반응이 충격적이었어요."
점자 라벨 부착에 협조해 줄 마트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최윤겸씨는 집 근처 다섯 군데의 마트를 돌며 협조를 요청했다. 물건을 일부러 많이 구매하며 사장님을 설득하기도 했지만 네 곳에서 줄줄이 거절당하자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A 마트 사장님으로부터는 충격적인 말도 들어야 했다. A씨는 시각장애가 있는 한 어르신이 마트에 방문했을 당시 입구에서 그 손님을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무엇을 원하냐, 돈만 달라"하고 물건을 가져다 판 적이 있다며 "이렇게 다 해주면 되는데 왜 그런 작업을 하냐"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최윤겸씨는 눈물을 흘리며 마트를 나왔다. 인터뷰에서 최윤겸씨는 시각장애인도 같은 사람인데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는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약국에서 스스로 '마데카솔'을 찾은 날 태윤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점자가 표기되어 있어도 정확한 제품명이 아니라 제품 분류가 적혀 있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태윤이는 '음료'라고 점자 표기된 캔 음료를 열고 예상치 못한 탄산 음료를 마신 적도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약국에 방문했던 태윤이는 스스로 연고의 한 종류인 '마데카솔'을 찾고는 좋아하는 장난감이라도 찾은 것처럼 기뻐했다.
▲ 의약품 |
ⓒ Unsplash |
지금의 밝고 쾌활한 태윤이의 모습과 달리 어린 시절 태윤이는 많이 칭얼거리던 아이였다. 특수 맹학교 유치부 입학 후에도 적응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어린아이인데도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위축되고 고립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며 최윤겸씨는 태윤이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 태윤이와 최윤겸씨가 운영하는 '태윤 유튜브' 채널 |
ⓒ '태윤 유튜브' 캡처 |
▲ 즐거운 마트 장보기 이후 친구들과 밝게 인사를 나누는 태윤이 |
ⓒ 최윤겸씨 제공 |
이들이 생활필수품을 구매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보행을 하기란 여전히 불편하다. 10월 15일 흰 지팡이의 날(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지정한 날), 태윤이와 최윤겸씨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세상이 더 많은 이들에게 따뜻해지길,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행복한 세상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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