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BIFF] <결혼 피로연> 윤여정, “연기가 내 일, 세일즈는 내 몫 아냐”

윤여정 (사진: 나우무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초청작 <결혼 피로연>이 9월 19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작품과 제작 과정을 소개했다. 현장에는 연출을 맡은 한국계 미국인 앤드류 안 감독과 배우 윤여정, 한기찬이 참석해 영화에 담긴 의미와 비하인드를 전했다.

앤드류 안 감독, 윤여정, 한기찬 (사진: 나우무비)

<결혼 피로연>은 1993년 이안 감독이 연출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동명 작품을 리메이크한 영화다.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이 각각의 현실적 이유로 위장 결혼을 계획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코믹하게 풀어낸다. 원작이 대만계 가족의 이야기였다면, 이번 리메이크는 한국계 가족으로 설정이 바뀌었고, 한국적인 문화 요소가 적극 반영됐다. 작품은 올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돼 아마존 MGM 프로듀서상을 수상했으며, 부산에서는 월드 시네마 섹션을 통해 한국 최초 상영을 가졌다.

<결혼 피로연>

앤드류 안 감독은 이번 작업의 출발점을 1993년 원작을 처음 봤던 경험에서 찾았다. 그는 “9살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동성애라는 소재를 영화로 접했다. 아시아인이 동성애자라는 설정을 본 것도 처음이었다. 당시에는 그 의미를 다 알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개인이자 영화인으로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해서 원작을 무조건 리메이크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 30년 사이 많은 게 달라졌고, 특히 미국은 동성결혼이 합법화됐다. 나 역시 결혼과 아버지가 되는 것을 고민하는 시점에 와 있다. 들뜬 마음과 동시에 불안과 긴장을 안고 살아가는 경험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극 중 손자 민(한기찬 분)의 ‘눈치 백단’ 할머니 자영을 맡았다. 원작에서는 민의 어머니였던 배역을 할머니로 변경한 것은 그의 제안이었다. 윤여정은 “처음에는 엄마 역할을 제안받았다. 그런데 한기찬이 20대인데 내가 엄마라니, 그건 너무하다고 했다. 그래서 할머니로 바꾸자고 했다”고 비화를 전했다. 그는 “엄마든 할머니든 기본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부모는 교육하려는 의무감이 있어서 야단도 치고 간섭도 한다. 할머니가 되면 그냥 건강하게 잘만 자라면 된다는 너그러움이 생긴다.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기에 묻어났다”고 설명했다.

운여정 (사진: 나우무비)

윤여정은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인권 담론에도 의견을 내놨다. 그는 “동성애자든 이성애자든 상관없다. 모두 평등하다. 한국이 앞으로 더 나아가면 좋겠다. 미국처럼 되기를 바라지만 아직은 많이 보수적이다. 내가 한국에서 79년을 살아서 잘 안다”고 말했다. 이어 “게이냐 스트레이트냐, 흑인이냐 황인이냐 하는 식으로 꼬리표를 붙이는 건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인간이니까 그런 구분을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윤여정은 외신 인터뷰에서 장남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했고, 미국에서 동성 결혼식을 올렸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영화에서 손자에게 건네는 대사 “네가 누구든 넌 내 손자다”는 그의 실제 경험이 반영된 결과다. 윤여정은 “독립영화를 택하는 이유는 감독과 많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다. 상업영화에서는 배우가 의견을 내는 것이 선을 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엔 감독과 내가 경험한 한국인, 부모로서의 경험을 나누며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기찬 (사진: 나우무비)

민 역을 맡은 한기찬은 퀴어 역할이 처음은 아니지만 해외에서 영어로 연기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대본을 받고 원작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원작을 먼저 보면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 촬영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서야 원작을 봤다”고 했다. 이어 “퀴어 연기는 과거에도 했지만 이번에는 영어가 더 힘들었다. 한국에서 자라 영어권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언어 훈련이 필요했다. 그래도 이 커뮤니티를 통해 많은 걸 배웠다”고 밝혔다.

또 한기찬은 “사람을 사랑할 때 중요한 건 성별이 아니라 그 사람의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임했다. 그저 한 사람이고 한 남자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촬영 내내 ‘당신이 누구든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새겼다”고 덧붙였다.

앤드류 안 감독은 한국적 요소를 어떻게 담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제가 한국인이기에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형 결혼식에서 폐백을 본 게 인상 깊었다.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결혼 의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이번 영화를 찍으며 마치 저 자신을 위한 한국식 결혼식을 치른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앤드류 안 감독, 윤여정, 한기찬 (사진: 나우무비)

윤여정은 영화를 기다리는 관객에게 <결혼 피로연>의 매력 포인트를 말해달라는 질문에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나는 전형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이렇게 전형적인 질문을 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분마다 느낌이 다를 것 같다.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모나 보일 텐데 나는 일을 일로 하는 사람이다. 내 일을 했으면 미션을 끝난 거지 이 영화를 어떻게 봐달라는 거까지 말하는 건 내 역할이 아닌 거 같다. 영화는 인생이야기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겠지 이 영화는 이런 영화니 봐달라고 말하는 세일즈 역할은 나는 못하겠다"며 자신의 역할에 대해 선을 그었다.

<결혼 피로연>은 9월 18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이후 20일과 22일 영화제 기간 중 추가 상영되며, 오는 24일 국내에 정식 개봉된다.

결혼 피로연
감독
출연
조안 첸,앤드류 안,제임스 샤무스,조 피로
평점

글=부산 · 나우무비 심규한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