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변압기 한대 바뀌면 에너지 산업 바뀐다

거리의 전신주와 산등성이를 가로지르는 송전탑은 현대 문명을 지탱하는 혈관이다. 이러한 전력 시설을 평가할 때, 과거에는 ‘안정적 전력공급’이라는 기능에 집중했다. 하지만 기후위기 대응이 시대적 핵심 과제가 되면서, 전력 인프라를 바라보는 시각도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다. 변압기 한 대, 철탑 하나에도 제조부터 폐기까지 발생하는 온실가스의 총량, 즉 ‘환경 발자국’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그에 더해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한 제품에 추가 비용을 매기는 ‘국제적 환경규제’가 무역장벽으로 등장하면서, 이제는 친환경 제조 역량이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진 우리나라는 에너지 산업의 체질개선이 더욱 시급하며, 그 변화를 이끌 열쇠는 국내 최대 구매자인 한전의 ‘친환경 제품 구매’에 있다.
한전의 친환경 행보는 지난 2021년 ‘2030 친환경 전력기자재 조달 로드맵’을 수립하며 시작됐다. 이후 정부의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가 최대 61%까지 상향되면서, 새로운 목표가 필요하게 됐다. 이에 한전은 기존 로드맵을 보완해 ‘2050 친환경 전력기자재 구매 로드맵’이라는 새로운 청사진을 마련할 계획이다.
연내 수립 예정인 2050 로드맵의 핵심은 전면적인 고도화에 있다. 기존에는 부품 자체의 친환경성에만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가 전력망에 더 잘 연결되도록 돕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전력 시스템 전반의 ‘온실가스 감축 기여도’까지 평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2035년까지 친환경 기자재 구매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을 뒷받침할 강력한 장치가 ‘녹색제품 물량 배정제도’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기업에 입찰 물량을 우선 배정하는 방식으로, 2030년까지 그 대상이 대폭 확대된다. 한전이 시장에 명확한 친환경 신호를 보냄으로써 산업계의 자발적인 기술 개발과 체질 개선을 이끌어내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는 이런 환경친화적 공정으로의 전환이 부담될 수 있기에, 한전은 인증 컨설팅 비용을 지원하는 등 상생 역할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은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력망을 구성하는 가장 작은 부품부터 시작된다. 연간 3조~4조 원에 달하는 한전의 구매력은 산업 생태계 전체를 친환경으로 바꾸는 강력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 앞으로 한전은 미래 세대에게 더 깨끗한 에너지를 물려주고, 세계를 선도하는 ‘K-친환경 전력’의 리더로서 국가·국민의 신뢰에 보답해 나갈 것이다.
안중은 한국전력공사 경영관리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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