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 퇴근 하고 왔더니..." 사위가 딸처럼 보인 순간

김남정 2026. 4. 25.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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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집사' 꿈꾸는 작은 사위를 보며... 변화를 지켜보는 건 사람을 이해하는 일과도 닮아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남정 기자]

지난 토요일(4월 18일) 아침, 휴대폰 벨이 울렸다. 화면에는 '작은 사위'라는 이름이 떴다. 반가운 마음에 얼른 전화를 받았다. 스피커폰이라 딸과 사위의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장모님, 저 꽃시장 가는 길인데 필요한 거 없으세요?"

아침부터 들뜬 목소리였다.

"꽃시장엔 웬일이야?"

사위는 기다렸다는 듯 이야기를 꺼냈다.

회사에 곧 퇴직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요즘 식물 이야기를 자주 하신다고 했다. 사무실에 있는 화분을 틈 나는 대로 돌보며 식물의 특성을 알려주고, 손으로 직접 응애나 깍지 벌레까지 잡아주신다고 했다. 퇴직 후에는 '식물 집사'로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고 한다. 그러면서 집에서 수경재배(식물을 물에서 키우는 방법)하는 방법까지 자세히 알려주셨다는 것이다.

식물을 돌보며 살아가는 사람을 요즘은 '식물 집사'라고 부른다는데, 그 말이 사위에게는 꽤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가만히 듣다 보니까요, 저도 한번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 말 속에는 가벼운 호기심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나는 잠시 사위의 말을 듣다가 생각했다. 자신보다 훨씬 연배가 위인 사람의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듣고, 삶으로 가져오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흘려듣고 지나칠 수도 있는 말을 붙잡아 자기 일상으로 들여오는 태도. 그 마음이 먼저 따뜻하게 다가왔다.

나는 작은 관목 화분(작은 나무 형태의 목질 식물) 하나를 부탁했다. 크고 근사한 것 말고, 작은 플라스틱 화분에 담긴 소박한 것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식물은 키우는 과정에서 정이 드는 것이니까.

사위가 건넨 화분
▲ 오렌지 재스민 사위가 건낸 화분입니다.
ⓒ 김남정
저녁이 되어 딸과 사위가 집에 왔다. 사위는 오렌지 재스민 화분을 내게 건넸다. 꽃망울이 맺힌 단정한 화분이었다. 한눈에 봐도 아무거나 고른 것이 아니었다.

"장모님 생각하며, 엄청 고민했어요."

그 말이 괜히 고맙게 들렸다.

사위는 수경재배를 할 식물들은 혹시라도 시들까 봐 집에 두고 왔다며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버드 네스트 고사리, 앤슈리엄, 테이블야자. 각각의 이름과 특징을 말하는 모습이, 이미 오래 식물을 접해온 사람 같았다. 하루아침에 생긴 관심이라고 보기엔 엄청 진지했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나는 집에 있던 스킨답서스 한 줄기와 호야 한 줄기를 잘라 건넸다. 호야는 물꽃이로 오래 키워 꽃망울을 물고 있는 것을 주었다. 물에 담가 키우기에도 무난한 식물들이라 시작하기에 좋을 것 같았다. 사위는 거실에 있는 내 식물들을 둘러보며 질문을 이어갔다.

"이 떡갈 고무나무는 물을 자주 주면 안 된대요."
"이건 햇빛을 많이 봐야 하나요?"

나는 아는 만큼 차근차근 답해주었다. 식물이 가지를 낼 수 있는 방법, 원하는 수형으로 키우는 기본적인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사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모습이 진지했다. 단순히 정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잘 키워보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지는 질문들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저 눈빛이 참 좋다고. 새로운 것을 마주했을 때, 부담보다 기대가 먼저 앞서는 사람의 표정. 귀찮음보다 궁금함이 더 큰 눈빛. 푸른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사위의 마음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나눌 사위와의 대화도 상상이 된다. 옆에서 딸은 고개를 저었다.

"왜 자꾸 일을 벌이는지 모르겠어."

그 말 속에는 맞벌이 부부의 현실적인 피곤함도 묻어 있었다. 사실 '키우는' 일은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간다. 물만 갈아주면 될 것 같지만, 뿌리에 붙은 흙을 털어내고, 씻고, 썩지 않게 상태를 살피는 일까지 신경 써야 한다. 잘 자라면 기쁘지만, 시들기 시작하면 이유를 찾느라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는 무언가를 새로 키운다는 일이 조금은 망설여지기도 한다. 시간도 들고, 정성도 필요하고, 무엇보다 마음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위는 그 과정을 기꺼이 시작하고 있었다. 아직 해보지 않았기에 가능한 순수한 의욕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시작이 좋았다.

다음 날 아침(일요일), 딸에게서 카카오톡이 왔다.
▲ 수경재배할 식물들 (위) 꽃시장에서 사 온 식물들, (아래) 화분의 식물들을 수경재배 환경으로 바꿔 거실에 둔 모습
ⓒ 작은딸 제공
"엄마, 00씨, 진짜 식물에 진심이야. 난 늦잠 자고 있었는데 혼자 화분 흙 정리하고, 뿌리도 다 씻어서 예쁜 유리병에 담아 거실에 뒀어."

그리고 한 줄이 더 왔다.

"쉬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대."

기쁨 가득한 메시지 한 줄

그 메시지를 읽으며 웃음이 났다.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 '힘들다'는 말에는 투정이 아니라 과정이 있었다. 직접 해보니 알게 되는 수고로움, 그리고 그만큼 생기는 애정. 아마 지금쯤은 물병 속을 들여다보며 작은 변화에도 신경 쓰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저녁 9시쯤, 가족 단체대화방에 사진이 하나 올라왔다. 작은 사위가 보낸 것이었다. 연한 연둣빛 새 잎이 올라온 사진이었다.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사위는 그 부분을 빨간 동그라미로 표시까지 해두었다.

"장모님, 퇴근하고 왔더니 새잎이…"

짧은 문장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기쁨은 충분히 전해졌다. 딸도 곧바로 말을 보탰다.

"어제 사진엔 분명히 없었거든?"
 연둣빛 새잎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내왔습니다.
ⓒ 카카오톡 메시지 갈무리
그러면서 증명이라도 하듯 어제 찍은 사진까지 다시 올렸다. 잠시 뒤, 사위의 답장이 이어졌다.

"집이 푸릇하네요."

그 한 마디를 읽는데, 괜히 마음이 따뜻해졌다. 식물이 자라는 속도는 아주 느리지만, 그 변화를 발견하는 마음은 풍선처럼 부풀어 터질 거 같은 기쁨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집 안의 공기까지 바꾼다. 나는 사위를 떠올렸다. 장모로서 예의를 지키는 관계라고만 생각했던 사위가 어느 순간, 딸처럼 편안하고 다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식물을 키운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들여 변화를 기다리는 일이다. 쉽게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일을 묵묵히 이어가는 일이다. 사람을 이해하는 일도 그와 비슷한지 모른다. 지난 주말 나는 식물보다 먼저, 한 사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선의 변화가 우리 사이의 거리를 조용히, 바꾸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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