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금융교육]①불완전판매 방지법 있어도 당한다…“소비자 교육 필요”
상품 특성 파악 후 투자하지 않는 성향
불완전판매 노출 가능성 높아
키코부터 홍콩H지수 ELS까지
금소법 등 조치 취해져도 반복
"판매금지보다 금융교육 필요"
편집자주
최근까지 금융상품 불완전판매 사태가 계속 벌어지며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당연히 불완전판매를 한 은행 등 금융사의 잘못이 가장 크다. 하지만 금융소비자들도 문제다. 금융상품을 잘 모르면 가입하지 말아야 하고, 가입하려면 설명을 제대로 듣고 따져 묻고 해야 하지만 귀찮아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큰 손실이 발생하면 모든 게 금융사 불완전판매 때문이라며 거리로 나가 단체행동에 나선다. 이런 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려서부터 제대로 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 금융교육의 현주소와 함께 해외사례, 전문가의 의견들을 살피면서 바람직한 금융교육에 대해 짚어봤다.
#30대 이민기씨는 2019년 입사한 지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사회초년생이었다. 입사 후 다른 저축과 투자를 하지 않고 오로지 정기적금을 통해 3000만원을 모았다. 적금이 만기 된 후 투자를 고민하던 그때 주거래은행에 찾아간 이씨는 모아둔 돈 전액을 가지고 이탈리아헬스케어펀드란 상품에 가입하게 됐다. 이 상품은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정부에서 받아야 할 진료비를 미리 지불하고 정부에게 다시 진료비를 받아 차익을 남기는 해외 펀드에 간접투자하는 상품이다.
펀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이씨는 은행 창구직원의 설명에도 어려운 용어가 많아 듣기를 포기했다. 여기에 손실위험이 있지만 직원은 이를 알리지 않았고 이탈리아 국가 부도가 발생하지 않는 한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상품을 예금처럼 생각하고 상품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9년 말부터 투자금 상환이 연기됐고 만기 부실채권화되면서 2020년 펀드판매가 중단됐다. 이씨는 3년간 모은 3000만원을 전부 잃게 됐다.
#박상원씨는 60대에 접어들자 자식들과 함께 살던 집을 매도했다. 이렇게 확보한 5억원의 돈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재무설계사를 소개받고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고 분산투자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우선 2억원을 정기예금에 넣고 3억원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다음으로 투자에 있어서 자신만의 전략을 고민하기 시작했는데, 증권사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투자자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수 있는 서비스를 알게 됐다. 투자와 테마에 따라 사전 구성된 예시를 보고 한국 주식시장에 주로 투자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주식 외에도 펀드·채권·금 등 투자상품을 다양하게 구성했다. 펀드 중에선 해외금리와 연계된 고위험 파생상품도 있었다. 채권금리 하락으로 해당 상품에 2000만원 투자한 박씨는 1000만원의 손실을 봤다. 하지만 박씨는 2억원의 돈을 안정적으로 정기적금 등으로 활용하고 있었으며 채권금리 하락으로 채권형펀드의 경우 오히려 수익률이 높았다. 또 다른 투자상품을 골고루 투자한 덕분에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최근 금감원이 실시한 '2023년 금융소비자 금융역량 조사' 결과 금융소비자들은 금리·채권 가격 관계나 복리이자 계산 등 기본적인 금융지식이 부족하다. 투자원칙을 세우고 자신의 투자 성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분산투자 원칙을 제대로 세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상품 특성을 파악하고 투자한다는 비율이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성향 때문에 소비자들은 금융사의 불완전판매에 노출되기 쉽다. 불완전판매란 금융사가 상품을 판매할 때 원금 손실 가능성 등 상품 관련 주요 내용과 주의사항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논란이 된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사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2007년 키코 사태부터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손실 사태,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PEF) 사태 등을 겪으며 불완전판매를 막고자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지만 아직 한계점이 많다. 금융교육 강화 등 근본적인 대책이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예금”으로 소개된 홍콩H지수 ELS지난해 말부터 올해까지 대규모 손실이 일어났던 홍콩H지수 ELS 사례는 금융소비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홍콩H지수 ELS 계좌 중 만기 손실이 확정된 계좌는 17만건이며 손실이 확정된 계좌 원금 10조4000억원 중 44.2%에 해당하는 4조6000억원이 손실금액이다.
가입자들 상당수는 은행을 이용하는 도중에 창구 직원에게 상품 가입을 권유받았으며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했다. 특히 목돈을 굴리는 은퇴자나 고령자가 해당 상품에 가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기현씨(61)는 “은행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예금’이라고 설명하고 서류에 사인할 곳만 동그라미 쳐 순식간에 마무리됐다”며 “3개월 후 은행에 항의하니 ‘이왕 기다린 거 3년만 더 하면 이자가 붙을 수 있다’라고 해서 기다렸고 올해 4월에 가보니 담당자가 전출 갔다”고 말했다.
반복되는 불완전판매 논란…키코사태부터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까지불완전판매 논란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보험상품 불완전판매가 문제였다. 보험 모집인들이 주변 지인들에게 보험상품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해 가입자들은 제대로 된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들어선 펀드와 관련된 불완전판매 논란이 불거졌다. 2008년 키코(KIKO) 사태가 벌어졌다. 금융사들이 기업에 환헤지 상품을 판매하며 위험성 등 유의사항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수출 중소기업들이 2006~2008년 초에 원·달러 환율이 하향 안정화됐던 시기에 가입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원달러 환율이 폭등하면서 키코의 수익 구간을 넘어가 723개 기업이 3조3000억원 피해를 입었다. 당시 법원이 금융사의 불완전판매 책임을 일부 인정했으며 금감원도 이를 인정해 손해액의 15~41%를 배상토록 권고했다.
2013년에는 동양그룹 기업어음(CP) 사태가 일어났다. 동양그룹의 경영위기로 여러 계열사가 회사채와 CP를 발행했는데 그룹이 부실화되면서 이에 투자한 4만여명이 1조7000억원 피해를 입었다. 동양증권이 이를 파는 과정에서 그룹 재무 상황과 투자 적합성 여부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게 문제였다.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는 홍콩H지수 ELS 사태와 유사하다. 은행을 방문한 고객들에게 원금 전액 손실이 가능한 고위험 상품임에도 고지를 제대로 하지 않고 판매했다. 그 해 하반기 글로벌 채권금리가 급락하면서 미국·영국·독일 채권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파생결합증권(DLS)과 이에 투자한 DLF에 원금손실이 발생했다.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의 경우 불완전판매뿐 아니라 운용 과정에서 수익률을 조작하거나 애초 약정한 자산에 투자하지 않는 등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해 불거진 홍콩H지수 ELS 사태의 경우 그간 정부의 재발방지 대책이 무색하게 DLF 사태와 비슷했다. DLF 사태 이후 유사 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2020년 금융소비자보호법이 제정되거나 자본시장법에 ‘고난도 금융상품 판매 규제’가 도입됐다. 구체적으로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운영하고 성과지표(KPI)를 통한 판매조장 금지, 상품 가입 시 녹취절차 마련 등이다. 그럼에도 ELS 사태에서도 투자적합성원칙 위반, 설명의무 위반 등 불완전판매와 금융사 차원의 무리한 판매 독려 등이 똑같이 반복됐다.
단순히 고위험 금융상품 판매를 막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소비자들의 금융상품 선택권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ELS가 최대 100% 손실 가능한 고난도·고위험 금융상품인 측면이 있으나 저금리 시기엔 예금 금리 대비 높은 수익률을 거둘 수 있어 2003년 한국에 처음 출시된 이후 계속 판매된 투자상품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후보자 시절 ELS 상품 판매를 전문투자자로 제한하는 것에 대한 질의에 “판매 대상의 제한은 금융소비자 보호와 함께 금융소비자 선택권 등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근본적으로 금융소비자들이 상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하거나 자신만의 투자 원칙을 만들기 위한 역량을 키우는 게 시급하며 이를 위한 금융교육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대부분의 전문가는 금융교육으로 불완전판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도 단순 지식 습득을 넘어 판단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금융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고승범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장은 “청소년 시기부터 금융교육이 이뤄진다면 금융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금융상품 위험성, 수익과 위험률 간의 관계 등에 대해 기본 교육이 이뤄진다면 전문적인 금융상품 교육의 기초가 될 것이며 사회에 나와 각종 투자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고 덧붙였다.
유진 한양대학교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금융분쟁과 투자자 보호’ 논문에서 금융교육의 주된 목표를 이상적이고 최적의 금융의사결정을 실행할 수 있게 함이 아니라 비합리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잡아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그는 “금융소비자 본인들이 과도한 긍정이나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강조해야 한다”며 “펀드 투자 등 소비자들이 직접 결정할 일이 아니라 전문가 도움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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