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헌법에 영토조항 신설…국무위원장의 핵사용 권한 명시도

북한이 최근 개정한 새 헌법에 한반도의 휴전선을 사실상 국경선으로 설정하는 영토조항을 신설한 것으로 나타났다. 개정 헌법은 국무위원장의 핵 사용 권한을 처음으로 명시하는 등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위상·권한 강화에도 중점을 뒀다. 다만 ‘전시 평정’이나 ‘제1적대국 교양’ 등 직접적인 대남 적대 문구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정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6일 통일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진행한 간담회에서 북한이 지난 3월 열린 최고인민회의(한국의 국회격) 제15기 1차 회의에서 개정한 헌법과 관련해 “북한이 정상국가 이미지를 갖기 위해 전체적인 헌법을 디자인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은 헌법 명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으로 변경하면서 각종 조문에서 사회주의 국가라는 표현을 상당 부분 삭제했다. 또 서문에 있던 선대 지도자의 업적을 삭제했고, 헌법이라는 최상위 법률에 어울리지 않는 전투적 표현(제국주의 침략자, 착취와 압박에서 해방, 파괴책동)도 대부분 없앴다.

북한은 이번에 “영역은 북쪽으로 중국과 러시아, 남쪽으로 대한민국과 접하고 있는 영토와 그에 기초하여 설정된 영해와 영공을 포함한다”는 영토조항(2조)을 신설했다. 영토를 휴전선 이북으로 한정, 남한과는 동족이 아닌 국가 간 관계란 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2023년 12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처음 내놓은 ‘적대적 두 국가론’에 따라 대남 단절 노선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북한이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삭제하고 9차 당대회에서 강조한 ‘사상·기술·문화의 3대 혁명’을 사회주의 총노선으로 규정한 것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다만 김정은이 직접 “국제법적 근거가 없는 유령선(線)”이라고 언급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비롯해 분쟁 요인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명문화하지 않았다. 이를 사실상 해석의 영역으로 남겨둔 데는 북한이 70년 이상 유지해온 민족·통일 정책을 폐기함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내부의 정체성 혼란과 동요 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향후 북·미 관계나 남북 관계의 추이에 따라 입장을 조정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유연성의 여지를 남겨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개정 헌법에는 김정은이 맡고 있는 국무위원장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는 내용도 대거 들어갔다. “핵 무력에 대한 지휘권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에게 있다”(제89조)고 규정하면서 국무위원장의 핵 사용 관련 권한을 최초로 명시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북한은 “국무위원회 위원장은 국가핵무력지휘기구에 핵 무력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도 있다”고 규정하면서 관련 기구에 핵 사용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근거까지 마련했다. 이 교수는 “(국무위원장이) 해외에 나갈 경우 관련 권한을 위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든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은 국무위원장을 ‘국가수반’으로 정의하면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한다는 기존의 문안을 삭제해 국무위원장에게 독점적인 국가 대표 권한을 부여했다. 또 헌법상의 국가기관 배열 순서도 사상 처음으로 국무위원장을 최고인민회의보다 앞서 배치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1972년 주석제를 도입했을 당시 헌법에서도 최고인민회의를 먼저 설명하고 주석의 임무와 권한을 설명했다”고 짚었다.
개정 헌법은 국무위원장의 ‘중요 간부 임면’ 권한을 규정하면서 기존과 달리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내각 총리도 임면 대상이란 점을 명시하고, ‘국무위원장 소환권’을 삭제하면서 명목으로나마 최고인민회의가 갖고 있던 국무위원장 견제 기능도 폐기했다. 이와 함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가졌던 외국 대사 신임장 접수권을 국무위원장에게 이관하고, 최고인민회의 결정 사항 거부권, 정령권(기존엔 명령권만 규정), 국가 표창 수여권 등의 권한을 국무위원장에게 부여하는 내용도 새롭게 헌법에 포함시켰다.
기본 헌법 서문에 명시됐던 ‘김일성주의’와 ‘김정일주의’ 등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업적을 삭제한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대신 김정은 체제의 핵심 통치담론인 ‘인민대중제일주의’가 서문에 명기됐다. 대외정책 원칙으로는 기존 ‘자주·평화·친서’에 이어 ‘국익 수호’가 추가되면서 김정은이 지난 2월 9차 당대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언급한 “국익 수호는 우리 국가 대외 활동의 불변 원칙”이란 내용이 반영된 모양새다.
또 북한 당국이 사회주의의 우월성 선전에 활용해왔던 ‘무상 치료’나 ‘무상 교육’이라는 표현도 ‘세금 없는’, ‘실업을 모르는’ 등의 수식어와 함께 헌법에서 사라졌다. 이밖에 북한은 특별보호 대상에 해외군사작전참전열사 유가족과 사회주의애국공로자, 제대장령·군관 등을 추가하면서 군을 중심으로 수혜 대상을 확대했다. 이 역시 북한군 러시아 파병을 선대 지도자와 차별화된 업적으로 부각하려는 김정은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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