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의 반도체 ‘K종자 산업’을 아십니까 [스페셜리포트]
장면1. 밥 짓는 냄새가 다르다. 구수한 팝콘 향이 나는 밥, 주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시드피아 ‘골든퀸’이다. 오랜 기간 일본 품종이 장악했던 프리미엄 쌀 시장에 30년 육종 외길을 걸어온 조유현 시드피아 대표가 반기를 들며 일궈낸 성과다. 시드피아 주력 품종인 진상벼, 골든퀸 2호·3호, 수향미(골든퀸 3호 브랜드명) 등은 없어서 못 팔 정도다. 대기업도 알아봤다. CJ제일제당은 햇반용 쌀로 시드피아 품종을 선택해 공동 연구를 진행 중이다. 천지향1세, 동행벼 등이 그 결과물이다. 시드피아 위상은 숫자로 증명된다. 지난해 기준 시드피아 종자로 생산되는 벼만 12만여t이다. 농가 수매가로 따져도 2000억원을 훌쩍 넘는 규모다. 덕분에 시드피아 영업이익률 역시 50%가 넘는다. 잘 만든 종자 하나가 농촌에 매년 수천억원 소득을 안겨주는 ‘황금알’이 된 셈이다.
장면2.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딸기 시장 90%는 ‘장희(아키히메)’ ‘육보(레드펄)’ 등 일본 품종이 장악했다. 일본이 로열티를 요구하자 국내 연구진은 ‘종자 독립’을 목표로 밤낮없는 연구에 매진했다. 그 첫 결실이 2005년 충남농업기술원 딸기연구소가 개발한 ‘설향’이다. 설향은 일본 품종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이 많아 빠르게 시장을 대체했다. 현재 국내 시장 내 일본 품종 점유율은 5% 미만으로 떨어졌다. 이어 단단한 과육으로 수출에 적합한 ‘매향’ ‘금실’, 대과종인 ‘킹스베리’ 등이 연이어 개발되며 ‘K딸기’ 수출 신화를 썼다. 2024년 기준 한국 딸기 전 세계 수출 규모는 6753만달러(약 971억원)를 기록했다. 5년 전보다 47%나 급증해 한국 농산물 수출 1위 품목으로 등극했다. 과거 외국산 품종에 의존해 로열티를 지불하던 한국 농업이 독자적인 종자 기술력을 바탕으로 해외 시장에서 로열티 이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종자 강국’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한국의 현주소는
종자는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다. 농업의 시작이자 끝이며 식량 안보와 직결된 국가 전략 물자다. 반도체가 전자 산업 성능을 좌우하듯 종자는 농산물 수확량, 맛, 병해충 저항성 등 핵심 품질을 결정한다. 기후 위기와 국제 분쟁으로 식량 수급 불안이 심해지며 우수한 종자를 보유한 국가는 자원을 확보한 것과 같은 지위를 누린다.
세계 종자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600억~800억달러(약 80조~100조원)로 추산되며 연평균 6~7% 성장세를 보인다. 2030년에는 1000억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시장 규모로 따지면 글로벌 제약이나 방산 시장에 버금간다. 바이엘(Bayer), 코르테바(Corteva), 신젠타(Syngenta)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M&A(인수합병)를 통해 몸집을 불리며 세계 시장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한국 종자 산업도 꾸준히 성장해왔다. 흥농종묘, 중앙종묘 등이 국내 산업을 이끌 때도 있었다. 그러다 전환기를 맞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외국 자본이 공습해 주요 기업이 몬산토, 신젠타 등 글로벌 기업에 M&A되며 수많은 토종 유전자원이 해외로 넘어갔다.
딸기 종자 ‘설향’을 개발한 김태일 우리종묘 딸기연구소장(전 논산딸기시험장장)은 “외환위기 후 국내 기업 사이에서 K종자 중요성에 눈을 떴다”며 “이후 LG, NH농협 등 대기업, 아시아종묘와 같은 중소기업이 해외 거대 기업 사이에서 그나마 종자 주권을 지켜내며 육종 기술력과 유통망을 방어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종자·육묘 시장 규모는 2024년 기준 9700억원대다. 한국 종자 산업 세계 시장점유율은 약 1.4% 수준으로 꾸준히 점유율을 높여가는 분위기다. 채소 종자 분야, 특히 고추·무·배추를 비롯해 딸기·쌀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 육종 기술력을 보유했다. 최근 기능성 종자와 디지털 육종 기술을 앞세워 글로벌 틈새시장을 공략하며 ‘K시드(Seed)’ 위상을 높이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47호·설합본호(2026.02.11~02.2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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