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수리 시작 뒤... 현장 지켜볼까, 그냥 믿고 맡길까
연재 <베이비부머의 집수리>는 오래된 집을 수리하며 느낀 점을 정리한 기록이다. 노후를 위해 집을 수선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생각과 시행착오들이, 베이비부머 등 고령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감이 되고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 <기자말>
[이혁진 기자]
드디어 6월 24일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됐다. 공사가 당초 계획보다 근 한 달이 늦어진 것이다(관련 기사: 46년 된 집 수리한다니 95세 아버지가 보인 반응 https://omn.kr/29vtf ).
총책임자에 가까운 '설비업자 김씨'는 1톤 짜리 대형 작업 차량을 몰고 아침 7시 20분쯤 나타났다. 조금 후엔 작업 인부 2명도 도착했다. 김씨는 전날 각종 공사도구를 집 앞마당에 이미 풀어놓았다.
그는 오늘부터 2~3일간 철거공사를 할 예정이라 말했다. 공사일정표에도 있다. 그러나 그는 "하다 보면 늦거나 빠를 수 있어 일정표는 참고만 할 뿐"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일정표대로 공사가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처음엔 일정표조차 작성해 주지 않았다.
그러나 공사를 하는 나로선 일정표가 기본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계획 없는 실행은 공중누각에 불과하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전체 공사 기간이 정해진 만큼, 계약서와는 별도로 개략적인 일정표라도 달라고 해 결국 받을 수 있었다.
▲ 누수로 곰팡이가 심한 방, 벽지를 뜯어보니 심각하다. |
ⓒ 이혁진 |
▲ 화장실 천장의 누수로 타일이 떨어진 모습 |
ⓒ 이혁진 |
몇 겹의 도배지는 마치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 고리처럼 선명했다. 46년간 우리 집 방 벽지는 예전의 도배지에 다시 벽지를 붙이는 겹도배의 역사였다. 지금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도배공사는 작업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기존 벽지를 뜯어내지 않고 바로 겹도배를 한다고 한다.
철거하는 작업자들은 그야말로 사정없이 뜯어내고 부수는데, 관록이 묻어났다. 빠루(쇠막대기로 일본식 외래어)와 망치로 천장을 두들길 때마다, 잔해들이 소음과 먼지를 만들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 방 천장을 이동식 비계를 이용해 철거하고 있다. |
ⓒ 이혁진 |
또한 철거 작업에도 순서가 있어, 조공들은 그때그때 필요한 연장을 준비하고 이를 철거 반장 격인 김씨에게 잽싸게 건네면서 그와 손발을 맞추고 있었다. 필요한 위치로 자유롭게 이동하여 작업할 수 있는 비계(현장에선 비계라 부름)를 옮기는 것도 조공의 역할이다.
40년 경력의 한 조공은 "철거를 해보면 이 집의 현재 상태를 가늠할 수 있고, 그 다음 리모델링의 작업 범위도 금세 알 수 있다"며 철거 작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실제로도 그랬다. 철거를 하면서 그 상황과 변수에 따라 애초 예상했던 공사가 바뀔 수 있고 자재와 공사비도 달라질 수 있다. 이는 수술을 하려 들어가봐야만 환부의 상태와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 거실 벽 합판을 뜯어낸 모습, 합판이 오래돼 지지대 기능이 약해 새 합판을 설치했다. |
ⓒ 이혁진 |
▲ 거실 합판이 오래돼 지지대기능이 약해 새 합판을 설치하고 있다. 합판위에 도배를 하게 된다. |
ⓒ 이혁진 |
이날 작업자들은 방 3개와 거실 내부를 거의 뜯어냈다. 다음날엔 주방과 화장실도 철거했다. 특히 화장실은 전면개조 하기에 그 작업량과 폐기물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욕조는 그 원래 기능을 이미 잃고 각종 물건을 담는 박스로 활용되고 있었다.
이전 기사에도 이야기했지만 우리 집 화장실은 그동안 다용도 창고로 쓰이는 곳이기도 했어서, 남들에게는 웬만하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은밀한 공간이었다. 여름에는 비가 새고 겨울에는 추워서, 이래저래 이용하기에도 불편 자체였다. 화장실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가 그 어떤 부분보다 컸던 이유다.
▲ 주방을 철거하는 모습 |
ⓒ 이혁진 |
▲ 화장실 철거로 나온 폐기물 |
ⓒ 이혁진 |
조공들은 아이스크림을 기다렸다는 듯 먹었다. 이들이 쉬는 동안 궁금한 것을 여러 가지 묻고 싶었지만 못했다. 김씨는 다른 인부들에게 일을 재촉하는 듯했다. 인부들이 쉬는 것 자체가 반갑지 않은 눈치다.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김씨에게 직접 묻거나 아니면 김씨가 없을 때 따로 인부들에게 물어야 한다 걸.
철거공들은 연이틀 오후 5시 넘어 작업을 끝냈다. 김씨는 인부들이 보통 4시까지만 작업하는데, 자기가 공사를 늦게까지 시켰다고 귀띔 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공사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끝내면 그만큼 인건비를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인 듯했다. 조공들은 불만이 있어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 내가 집수리 현장을 지키고 보는 데 대해 김씨와 조공들의 반응은 서로 약간 다른 것 같았다. 내 뜻을 말하거나 바람을 이야기하면 설비업자 김씨는 조공들에 비해 더 날카롭고 예민한 태도를 보였다.
이러한 반응 뒤에는 집주인이라도 곁에서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것이 싫다는 속내가 숨어있었다. 그렇다고 '업자가 다 알아서 잘 해주겠거니' 믿는 것은 얼마나 순진한 일인가.
나는 눈치를 보거나 말거나, 일단 수리를 맡긴 집주인으로서 직접 작업과 공사 현장을 관찰하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마땅히 해야 할 의무이자 권리라 생각했다(이 신념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집주인인 내가 작업 현장을 지키는 것에 대해, 리모델링 전문가인 친구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그는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각자 조금씩 양보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업자의 기술력을 믿고 맡긴 이상 수리도 맡겨줘야지, (집주인이) 일일이 간섭하면 자존심이 상할 것이 분명하다. 공사를 원만하게 이끌려면 서로 솔직한 대화를 나누되, 상대를 인정하며 어느 정도 타협을 감수해야 한다."
고개가 끄떡여졌다. 어느 날엔가는 철거를 지켜보는 작업 현장에서 나는 잠시 만감이 교차하기도 했다.
리모델링을 통해 나오는 집이 반드시 지금보다 낫고 안전한 집이라고 보장할 수도 없으면서 괜한 과욕을 부리는 건 아닌지, 철거란 오래된 집의 숙명이라지만 무언가 부수고 고치는 것만이 능사인지 등 여러 상념이 고개를 들어서다.
어쨌든 오래된 집이 철거되고 그 안을 들여다보며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아가는 시간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생소한 상황이었지만 동시에 살아있는 공부이기도 했다. 그러나 왠지 몸은 무겁고 피곤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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