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의 ‘두 국가론’…누구를 위한 ‘외침’인가 [신율의 정치 읽기]
현재 민주당은 검찰 독재 프레임을 맹렬하게 주장하며, 검찰에 의한 정적(政敵) 죽이기라고 강조한다. ‘법 왜곡죄’ 신설 주장도 이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민주당은 계엄법 개정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계엄령 예방법’이다. 현실화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상황을 가정해 법까지 만들려는 것은 왜일까. 계엄을 자꾸 주장해 현 정권이 독재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 이재명 대표에 대한 사법 리스크가 부당하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 같다.
이런 시도가 먹힐지 모르겠다. 다만 최소한 작금의 정치 상황이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야당에 불리하지만은 않다는 점은 확실하다. 대통령 지지율이 매우 저조하기 때문이다.
추석 연휴 직전인 9월 13일 발표된 한국갤럽 자체 여론조사(9월 10일부터 1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대통령 지지율은 20%까지 떨어졌다. 한국갤럽 조사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28%, 민주당 33%다. 이 정도면 야당은 자신감을 갖고 대통령과 여당을 공격할 수 있다.
이 시점에 일본에서 나온 ‘아오키의 법칙’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아오키 미키오 전 관방장관이 주장한 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내각과 집권당 지지율을 합한 수치가 50% 이하가 되면, 내각이 구심력을 잃고 와해된다고 한다.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 합이 이 정도 되면, 공무원은 복지부동하고, 이렇게 되면 여당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극히 제한된다. 더구나 야당이 의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한국갤럽 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 20%, 국민의힘 지지율이 28%, 합은 48%다. 상황이 이러니, 야당은 여권을 거세게 밀어붙여도 ‘부담’이 없다.
이럴 때 대통령실은 위기감을 가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위기감을 가졌는지 의심스럽다.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이 계속 불거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대통령실이 적극 대응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시도도 별로 없다. 여론을 의식하고 있다면 최소한 제2부속실 정도는 만들어야 하는데, 그런 움직임도 없다. 대통령 생각과 주장을 여당이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한다.
9월 24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 만찬 역시, 대통령의 생각과 행동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특히, 한동훈 대표의 독대 요청을 대통령실이 거부한 것은 대통령실의 상황 인식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상황이 이러니, 국민은 대통령실의 여론에 대한 반응성과 현실 판단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갑자기 여당을 위한 구세주가 나타났다.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다.
임종석 전 실장은 9월 19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2024 한반도 평화 공동사업 추진위원회’가 주최한 9·19 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기조연설을 통해 “통일, 하지 맙시다”라며 “(남북이) 그냥 따로, 함께 살며 서로 존중하고 같이 행복하면 좋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한발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고 돼 있는 헌법 3조를 두고 “영토 조항을 지우든지 개정하자”고 주장했다.
임 전 실장 발언을 두고, 국민의힘은 물론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쇄도한다. 가장 합리적인 비판은 박지원 민주당 의원 발언이다. 박 의원은 “학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으나 현역 정치인의 발언으로는 성급했다”고 했다.
임 전 실장 생각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발언에는 문제가 있다.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지낸 임 전 실장은 2019년 11월 정계 은퇴 선언을 하면서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했다. 그런 인물이 “통일, 하지 맙시다”라고 입장을 180도로 바꿨다. 당연히 이유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던 5년 전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길래 통일을 하지 말자는 것인가. 5년 전에도, 미·중 간 갈등이 있었고, 이런 갈등으로 인해 국제 질서는 이미 신냉전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는 한반도가 평화적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을 받아들여 입장을 바꿨다면, 이는 임 전 실장의 착각이다.
영국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평화를 적극적 의미의 평화와 소극적 의미의 평화로 나눴다. 적극적 의미의 평화란 잠재적이라도 무력 사용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다. 소극적 의미의 평화는 단순히 무력 사용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에 입각해서 보면, 문 정권 당시나 지금이나 적극적 의미에서의 평화가 한반도를 지배한다고 볼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자주 자신의 대북 업적을 과시하는데, 대북 정책과 관련한 업적을 과시하려면, 문재인 정권 당시 북한이 핵을 포기하거나 최소한 핵 개발을 중지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 시절에도 북한은 계속 핵 개발에 매진했다. 상황이 이러니, 지금이나 문 정권 당시나 한반도에 적극적 의미의 평화는 존재한 적이 없었던 셈이다. 또한, 문 정권 시절이나 지금이나 한반도에 무력 분쟁이 없으니 소극적 의미의 평화는 존재한다.
결론적으로 임 전 실장이 통일 운동에 매진하겠다고 말했던 5년 전 상황과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고 볼 수 없다. 그렇기에 임 전 실장 발언은 ‘여러 추측’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적대적 두 개의 국가론’을 들고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 전 실장의 ‘통일 포기’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추측이 난무하는 환경은,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던 대통령과 여당이 다시금 민주당을 공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게 한다. 또한,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 구형이 여론 주목을 한 몸에 받을 수도 없게 됐다. 이 대표에 대한 구형에 여론이 집중돼야 민주당이 정권을 공격하기 좀 더 용이했을 터인데, 임종석 전 실장 출현으로 여론 주목이 흩어지고 보수는 더욱 결집하게 생겼으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일이다.
이런 이유로 민주당 내의 친명들은 임종석 전 실장의 발언 시기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을 테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는 점점 구체화되고, 임종석 전 실장 발언으로 정치권은 새로운 논쟁에 휩싸였다. 여당에 상황 반전의 기회가 될지 지켜볼 일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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