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CF계에 예기치 않은 사건이 벌어졌다. 당초 톱스타 A양이 출연 예정이었던 음료 광고 촬영 당일, 배우가 돌연 펑크를 내며 현장은 발칵 뒤집혔다. 이미 세트와 보조 출연자까지 완비된 상황에서 광고주가 택한 선택은 ‘신인 대타’ 김지원이었다. 아이돌 그룹 빅뱅과 함께 휴대폰 광고로 얼굴을 알리긴 했지만, 본격적인 데뷔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 하나 없던 무명이었다.



하지만 그 대타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복고풍 교복, 디스코, 세련된 원피스를 넘나드는 콘셉트 속에서 김지원은 ‘오란씨걸’로 완벽히 변신했고, 광고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하늘에서 별을 따다, 달을 따다던 CM송처럼, ‘대타’ 김지원은 단숨에 연예계의 별이 됐다. 그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지만, 이 작은 광고는 김지원의 배우 인생에 커다란 문을 열어준 것이다.
상속자들
악역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그녀


김지원이라는 이름을 연기자로 처음 각인시킨 작품은 2013년 김은숙 작가의 SBS 드라마 <상속자들>이었다. 주인공 김탄(이민호)과 차은상(박신혜) 커플을 집요하게 흔드는 유라헬 역. 화려한 외모와 도도한 표정, 발음마저 싸늘했던 캐릭터를 김지원은 설득력 있게 그려내며 ‘신예 악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단순한 질투녀가 아니라, 가진 것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함이 스며든 유라헬은 그 시절 김지원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얼굴이었다. 오란씨걸의 풋풋함은 잠시 접어둔 채, 연기력 하나로 대중의 눈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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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
서브커플도 주인공처럼 만든 마법


2016년, KBS2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주연뿐 아니라 서브커플의 인기까지 폭발시킨 드라마였다. 김지원이 맡은 윤명주는 군의관이자 장군의 딸로, 특전사 부사관 서대영(진구)과의 금지된 사랑을 그려냈다. 계급과 신분, 사명감 사이에서 오가는 감정을 김지원은 절제된 연기 안에 섬세히 담아냈다. 카리스마와 애틋함, 강인함과 유약함이 교차하는 캐릭터는 그에게 단단한 존재감을 안겨줬다. 윤명주는 단지 ‘예쁜 여자’가 아닌, 드라마를 이끌 수 있는 감정의 중심으로 평가받았고, 김지원 역시 탄탄한 연기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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쌈, 마이웨이
청춘의 대변인 ‘최애라’의 탄생


김지원이 주연배우로 확실히 도약한 작품은 2017년 KBS2 드라마 <쌈, 마이웨이>였다. 평범한 청춘들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이 드라마에서 그는 외유내강 ‘최애라’로 분했다. 평범한 백화점 인포메이션 직원이지만, 아나운서라는 꿈을 향해 매일 도전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특히 남자 주인공 박서준과의 티키타카, 그리고 ‘애교 폭탄’ 애드리브는 지금도 회자될 정도. 김지원은 이 작품에서 내성적인 본인과는 정반대인 외향적인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 내며, 연기의 스펙트럼을 한껏 넓혔다. 배우로서의 가능성은 ‘최애라’와 함께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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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날 추앙해요”, 고요한 울림의 주인공


2022년, 김지원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한 해였다. JTBC <나의 해방일지>에서 그는 감정에 갇힌 채 살아가는 염미정을 연기했다. 말보다 마음이 앞서는 인물, 고단한 삶 속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사랑을 건네는 인물이었다. “날 추앙해요”라는 대사는 밈이 되어 퍼졌고, 김지원의 절제된 감정 연기는 평단과 시청자의 극찬을 받았다. 단순한 로맨스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이를 그린 이 작품에서 그는 말 그대로 ‘해방’의 주인공이었다. 내면을 꾹꾹 눌러 담은 연기로 김지원은 자신의 커리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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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의 여왕
이제는 진짜 여왕


2024년,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김지원은 재벌가의 장녀 ‘홍해인’으로 돌아왔다. 처음 데뷔했을 무렵에 연기한 <상속자들>의 우라헬과 닮은 듯 다른 캐릭터지만, 이를 소화하는 배우는 이제 전혀 다른 무게를 지닌다. 김수현과 함께 만들어낸 부부의 파열음과 재회, 갈등과 사랑은 드라마의 감정선을 이끄는 핵심 축이었다. 과거엔 ‘서브 커플’이나 ‘보조 감정선’에 머물렀다면, 이번엔 주인공 그 자체였다. 김지원은 단단한 연기력과 화제성을 모두 입증하며, 이름 앞에 ‘주연배우’라는 수식어를 확고히 새겼다. 톱스타의 빈자리를 채우며 시작된 그의 여정은, 이제 한 시대의 얼굴이 되는 중이다.
나우무비 에디터 김무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