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적임자" 평가받은 여가부 장관, 이건 아니다

신지혜 2022. 9. 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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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부적절 발언.. 김현숙 장관, 현실 똑바로 봐야

[신지혜 기자]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여성가족위 전체회의에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관련 질의에 답변하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지난 9월 16일 진행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여성가족부 폐지의 적임자"라고 평했다. 신당역 화장실에서 살해된 여성 역무원이 스토킹 피해로 살해까지 당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 열린 회의였다.

용혜인 의원은 20대 스토킹 피해자 중 성별이 여성인 이가 86%인 현실을 지적하며, 김현숙 장관에게 '여성 대상 범죄의 구조적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김 장관은 여기에 "다양한 이유가 있다"며, 구조적 성차별을 끝내 인정하지 않는 듯한 답변만을 이어갔다. 여성 대상 범죄 발생의 구조를 개선해 범죄를 예방하는 것은 여성가족부의 일이 아니라는 취지로 선을 그은 셈이다.

이날 김 장관은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도 서울교통공사가 불법촬영 등 범죄 발생 사실을 여성가족부에 알리지 않은 탓에 손 쓸 수 있는 게 없었다는 등의 답변을 해 논란을 키웠다. 무능함을 드러내는 답변을 이어가자, 용 의원이 '여성가족부 폐지 여론에 힘을 실으려는 게 아니냐'란 취지로 지적한 것이었다.

신당역 사건과 관련해 열린 지난 20일 여가위 전체회의에서도, 김 장관은 책임을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관련 기사: "신당역 피해자, 자신 더 보호했다면"... 여가부장관 발언 논란). 이날도 "여가부 장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한 발언"(민주당 홍정민 의원), "본질이 아니라 장관 말이 화두가 되면서, 젠더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같은 당 유정주 의원)는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해당 보도가 나간 후 여가부가 "장관은 '피해자가 자신을 더 보호했다면'이 아니라 사건 초기에 여가부 지원을 더 받았다면 이런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는 취지였다"라고 해명했지만, 그가 최근까지 보인 행보를 봤을 때 쉽게 고개를 끄덕이긴 어렵다. 
  
의원들의 날선 비판... "폐지 적임자", "부적절한 발언", "갈등에 기름 부어"  

김 장관은 사실 초기 인사청문회부터 논란에 휩싸였던 인물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나섰으니 어쩌면 논란은 불가피했을지도 모른다. 청문회 자료 부실 지적을 받았고, 박근혜 정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재직 때의 논란 역시 제대로 해명하지 않았다. 결국 인사청문회 보고서 채택 없이 정부 의지로만 임명됐고,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다. 취임 후엔 장관 스스로 논란을 더 키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인하대 성폭력 살인 사건에 대해 '학생 안전 문제'일 뿐이라고 일축했다가 '여성에 대한 폭력 사건'이라고 정정했고,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여성 혐오 범죄'가 아니라며 선을 그어 민심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렇다. 범죄 피해를 여성이 압도적으로 경험하고는 있지만, 여기에 성차별과 같은 구조적 원인은 없고 개별적 범죄일 뿐이라는 것이다.
 
 19일 오전 종로구 서울정부청사앞에서 진보당, 녹색당, 불꽃페미액션, 전국여성연대 회원들이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니라고 발언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 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올해 사법처리된 20대 스토킹 피해자 1285명 중 1113명이 여성이다. 스토킹 피해자와 성폭력 피해자의 절대다수가 여성인 한국사회에서, 이번 사건을 여성과 남성의 문제로, 젠더폭력으로 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볼 수 있냐’며 ‘신당역 살인사건은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차별과 성폭력이 중첩되고 집약된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라고 주장했다.
ⓒ 권우성
   
불법촬영이나 스토킹 범죄 등은 차별적 성인식에 기반을 두고 발생하는 범죄다. 다수 가해자가 남성, 80% 넘는 피해자가 여성임이 이를 방증한다. 즉 여성을 소유물이나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차별적 인식에서 비롯되는 범죄란 의미다. 그렇다면, 범죄 예방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답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그런데 김 장관의 발언을 해석하자면, 범죄 예방은 여성가족부의 과제가 아니며 오히려 여성이 피해를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피해자 지원'에만 힘쓰겠다는 것이 아닌가. 신당역 스토킹 살인 현장에서 젠더 기반 폭력 예방에 대해 사실상 여성가족부의 책임 방기를 선언, 논란을 자초한 셈이라고 본다.

여성 폭력 예방은 어디가고... '경제 영역에서의 성차별'만 강조하는 장관

김 장관은 원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정치에 입문한 것이 아니다. 그는 2012년 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했다. 당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간사로도 활동하며, 과거엔 여러 분야에서 성차별 시정을 위한 법안을 발의했다. 성인지 예산을 강화하는 법안이나 지역구 여성 후보 공천 비율 30% 의무화하는 법안 등이 대표적이다.

한편 김 장관은 아직 교수이던 지난해 4월 <조선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에서의 30대 기업 성별임금격차가 20년 전과 다름없기에 '페미니스트 정부'가 아니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여기서 문 정부를 "가짜 페미니즘 정권"이라고 비판하며, "진정한 양성평등 실현을 시대의 화두로 삼는 위정자가 필요하다"고 썼다.

통상 성차별적 인식이 노동 시장에 영향을 미칠 때 채용 성차별, 직장 내 성희롱, 성별임금격차나 유리천장 등의 문제가 생긴다. 김 장관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양성평등'의 핵심 지표로 성별임금격차를 강조했을 것이다. 또 칼럼에서 문재인 정부가 제 역할을 못했다고 비판한 것을 보면, 김 장관 또한 정부의 역할이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고 볼 수 있다.

성별임금격차 해소에 대한 의지는 있어 보이지만, 내용은 조금 허술하다. 지난 9월 6일, 여성가족부는 양성평등주간에 2021년 성별임금격차 실태 조사를 발표했다(이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따라 3년에 한 번씩 실시해야 하는 여성폭력실태조사를 별도 발표 없이 홈페이지에 자료만 게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성별임금격차 주요 원인으로는 '여성의 경력단절'만 강조해, 육아하는 여성만 정책 대상으로 삼는 등 현 정부의 지엽적인 인식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였다. 

여성 대상 폭력의 구조적 원인 직시해야
  
김 장관의 성평등 인식이 협소하다는 것은 젠더 기반 폭력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원인은 인정하면서도, 젠더 기반 폭력의 구조적 원인은 애써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별임금격차는 그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더 벌어진다. 성별임금격차가 가장 적은 20대에는 경제적 성차별보다 젠더 기반 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더 크다. 젠더 기반 폭력을 경험하는 연령대도 더 낮아지고 있다. 온라인 그루밍 범죄나 디지털 성착취 범죄로 피해 보는 10대가 늘고 있다. 20대 이하 여성들은 성별임금격차 등 경제적 차별을 경험하기도 전에 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된 것이 현실이다.

김 장관의 직책은 박근혜 정부의 고용복지수석비서관에서 현 정부의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달라졌다. 성별임금격차 해소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차별 해소를 위해 폭력과 범죄에도 구조적 원인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여 본인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
 
 2022페미니스트 주권자행동 회원들이 지난 3월11일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여성 의제가 실종되고 차별과 혐오, 증오선동으로 얼룩진 제20대 대선정국을 규탄하며 윤석열 정부가 성평등 사회 실현 책무를 다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김 장관 발언이 논란이 된 이후, 많은 이들이 기자회견에 모여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에 있어 젠더 기반 폭력의 구조적 원인을 외면하는 김 장관 사퇴를 촉구했다.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권인숙 위원장은 대정부질문에서 '경질'을 언급하기도 했다.

최근 김 장관은 이전 정부에서부터 추진했던 다양한 가족을 인정하는 법 개정도 막아서 또 한번 논란이 됐다. 성평등을 향한 시민의 요구에 귀 닫는 여성가족부 장관이 있다는 게 놀랍다. 그런 장관을 거부하는 시민 또한 많아질 것이다. 김 장관은 시대 변화에 역행하고 본인의 책임을 외면하는 장관을 바라는 시민은 없다는 것을 명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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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 신지혜는 기본소득당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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