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시간 혼자 남는 아이들... 요즘 초등 교실에서 참 아픈 장면

김대성 2026. 4. 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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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다는 이유로 포기당한 경계선 지능 학생, 더 늦기 전에 제대로 도와야 한다

[김대성 기자]

 교실
ⓒ 연합=OGQ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난 지 스무 해가 넘었다. 그 시간 동안 교실에는 늘 비슷한 아이들이 있었다. 크게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은 채 조용히 앉아 있지만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 설명을 몇 번이나 반복해도 이해의 문턱 앞에서 멈춰 서는 아이들, 쉬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 무리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혼자 남는 아이들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아이들을 "좀 느린 아이", "노력이 부족한 아이", "공부에 관심이 없는 아이"라고 불러왔다. 그러나 이제는 분명히 말해야 한다. 그 이름들은 틀렸다.

그 아이들은 '경계선 지능'에 놓인 아이들이다. 지적장애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일반적인 교육과정을 따라가기에는 분명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 특수교육의 문턱 밖에 있으면서도 일반교육 안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말 그대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 지원과 방치의 경계에 서 있는 아이들이다. 문제는 이 아이들이 오랫동안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다. 존재했지만 이름 붙여지지 않았고, 어려움을 겪었지만 체계적으로 발견되지 않았으며, 교실 안에 있었지만 제도는 그 곁까지 오지 못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초등학교 경계선 지능 학생 실태 분석 및 지원 방안 연구(2024년)'는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을 놓치고 있었는지 보여준다. 조사 결과 초등학생 가운데 4.6%가 경계선 지능으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위험군으로 판정되었다. 더 주목해야 할 것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격차가 구조적으로 커진다는 사실이다. 경계선 지능 위험군 학생 가운데 기초학력 미도달 비율은 매우 높았고, 초등학교 1학년과 6학년 사이의 차이는 충격적일 만큼 컸다. 이것은 단지 공부를 못하는 아이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기에 발견하고 도와주지 못하면 학습 결손이 해마다 쌓이고, 그 격차가 결국 아이의 자존감과 삶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경고다.

현장에서 더 아프게 보이는 것, 학습보다 '관계'
 현장에서 더 아프게 보이는 것은 학습보다 관계의 문제다. 경계선 지능 학생들은 소외되고, 때로는 학교폭력의 표적이 되거나 의도치 않게 관계의 주변부로 밀려난다.(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현장에서 더 아프게 보이는 것은 학습보다 관계의 문제다. 경계선 지능 학생들은 단순히 이해 속도가 느린 것이 아니다. 이들은 추상적 개념이나 언어의 뉘앙스, 상황의 맥락을 읽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또래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오가는 비언어적 신호와 암묵적 규칙을 놓치기 쉽고, 그 결과 '눈치 없는 아이', '분위기 못 읽는 아이'라는 낙인을 뒤집어쓴다. 학교에서는 소외되고, 때로는 학교폭력의 표적이 되거나 의도치 않게 관계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상태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좀 더 노력해봐라", "왜 그것도 못하니"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렇게 아이는 서서히 자신을 "나는 원래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기 시작한다. 학습의 실패보다 더 깊은 상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생긴다.

이 아이들을 제대로 돕지 못한 책임을 교사 개인이나 부모 개인에게만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치는 교사라도, 아무리 애써 돌보는 부모라도 경계선 지능에 대한 이해와 방법이 없다면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다가가기 어렵다. 교사 양성과정에서도, 현직 연수에서도, 학부모 교육에서도 이 아이들에 대한 체계적인 준비는 충분하지 않았다.

결국 이것은 개인의 무관심이 아니라 공교육 시스템이 만들어낸 구조적 공백에 가깝다. 아이가 지원받지 못한 것은 누구 한 사람의 선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도움의 구조가 촘촘하게 설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계선 지능 학생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를 끌어올리는 교육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교육이다. 이해를 강요하기보다 반복과 경험을 통해 접근해야 하고, 추상적 설명보다 구체적 활동과 단계적 학습이 더 효과적이다. 중요한 것은 다른 아이들의 속도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이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과 순서에 맞춰 배움의 경로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겉으로는 변화가 더뎌 보여도 아이는 자기만의 속도로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사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조급함이 아니라 기다림이고, 재촉이 아니라 꾸준한 지지다. 아이의 가능성을 끝까지 믿고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이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교육이다.

사회성 역시 저절로 자라기를 기대할 일이 아니다. 인사하기, 대화 이어가기, 상황에 맞게 반응하기, 관계 속에서 적절한 거리를 배우는 일까지 모두 훈련과 경험의 영역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관계의 수가 아니라 관계의 질이다. 친구가 많지 않아도 괜찮다. 아이가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한두 사람과의 관계, 그 안에서 경험하는 작은 성공이 훨씬 더 중요하다. 먼저 인사를 건네봤다, 짝꿍과 짧게라도 말을 주고받았다, 모둠활동에서 한 번쯤 자기 역할을 해냈다. 이런 사소해 보이는 순간들이야말로 무너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출발점이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 전환이 필요하다
 경계선 지능. ai생성 이미지.
ⓒ 김대성
다행히 교육부도 그동안 방치되어 온 경계선 지능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2024년 '경계선지능인 지원 방안'을 마련하며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기 시작했다. 늦었지만 필요한 출발이다. 그러나 출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전히 법적 근거는 약하고, 정책은 지역에 따라 편차가 크며, 지원은 단편적이다.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조기 발견과 개별 지원, 교원 전문성 강화, 부모 교육, 진로와 자립 지원이 하나의 체계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학교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고, 가정만의 헌신으로도 감당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학교, 가정이 함께 연결되는 거버넌스가 필요하며, 그 중심에는 국가의 책임이 분명히 놓여야 한다. 경계선 지능은 개인이나 가정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사적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떠안아야 할 공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오랫동안 빠름을 기준으로 아이들을 평가해 왔다. 빨리 이해하고, 빨리 성취하고, 빨리 결과를 내는 아이를 유능하다고 불렀다. 하지만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자랄 필요는 없다. 느리지만 꾸준한 아이가 있고, 더디지만 깊이 배우는 아이가 있다. 성실하게 반복하는 힘, 쉽게 포기하지 않는 힘, 사람을 향한 따뜻함은 시험 점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능력이다. 문제는 그런 가능성이 피어나기도 전에 아이의 자존감이 먼저 무너진다는 데 있다.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 아이는 느린가"가 아니라 "이 아이는 어떤 방식으로 배우는가"를 물어야 한다. 교육의 역할은 가장 빠른 아이만을 위해 길을 넓히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속도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걸음으로 끝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길을 함께 내는 데 있다. 교실 한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그 아이들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존재로 남지 않도록, 우리가 먼저 시선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이제는 정말 그래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별의별 교육연구소장이자 상인천초등학교 교감입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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