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동학농민혁명, 해월 최시형의 동학군 총기포령
[이윤영 기자]
|
|
| ▲ 청산 동학농민혁명 기념비 해월 최시형 법헌은 9월 13일(양10.11) 동학 대도소 임원들과 지도자들을 청산 문바윗골에 집결시켰다. 전국 동학도인의 행동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는 5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이곳에 해월 최시형 선생에 의해 동학군 총기포령이 내려진 역사를 기념하여 2022년 성지 조성과 기념탑을 세웠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
|
| ▲ 동학농민혁명 청산기념비 안내문 청산 동학농민혁명 기념비를 세우게 된 동기와 자세한 내용이 수록되어있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전봉준 의병대장은 9월 12일(양10.10) 삼례에서 일본군 침략을 물리치자는 '동학의병창의대회'를 갖고 항일 기포 통문을 날렸다. 삼례 창의 대회는 일본에 즉각 보고되었으며, 일본군이 전략 수정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국왕(천황)은 히로시마 대본영을 통해 일본군에게 동학의병을 모조리 섬멸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
|
| ▲ 문바윗골(동학혁명 청산기포지) 해월 최시형 법헌이 9월 18일(양10.16) “민심은 천심이라, 이는 곧 천명에 따르는 것이니라. 전국의 동학도인들에게 명하노니, 모두 기포하라. 손병희에게 나의 지휘권을 넘기고 동학의병군 대통령에 임명한다”라며 청산총기포령을 내린 문바윗골. 이곳은 2022년 동학성지로 조성되었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
|
| ▲ 청산 동학농민혁명 성지조성 경위 표지석 2022년 6월 1일 이곳에 성지가 조성되었다. 동학농민혁명 해월 최시형 법헌의 전국기포령이 내려진 곳이라는 성지조성 경위가 새겨진 표지석이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해월 최시형 법헌은 동학 대도소 임원들과 북접 지도자들을 9월 13일(양10.11) 청산 문바윗골에 집결시키도록 지시하였다. 전국 동학도인의 행동 방향을 최종 결정하는 회의는 5일간이나 계속되었다. 최 법헌의 지시로 도차주 강시원이 회의를 주도하였다. 회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2. 관군은 일본군 지휘 아래 동학을 진압하러 나섰으며, 민보군까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3. 일본이 궁궐을 점령하고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있다.
4. 현재 남접은 물론 전국의 동학의병들이 이미 무력 기포를 하고 있다.
5. 동학군 총기포는 거부할 수 없는 대세이다.
6. 일본군은 동학군을 향해 총구를 돌린 만큼 이제는 왜놈과의 일전을 피할 수 없다.
7. 충청도 경기도 경상도 등 전국 수십 군데에서 기포를 하였다.
8. 지난 8월 하순경 경상도 예천에서 동학도 11명을 체포하여 하천가에 생매장한 관군과 민보군에 대한 보복을 결의하였다.
9. 관동·상북·용궁·충경·예천·안동·풍기·영천·상주·함창·문경·단양·청풍 등지에서 이원팔, 최맹순 임규호, 성두환 등 대접주와 접주 13명이 중심이 되어 수천 명이 기포하였다.
10. 일본군은 동학군을 초토화하는 데 목표를 둘 것이 분명하며, 친일 관군도 동학군 토벌에 나서고 있다.
11. 수운 대선생님의 신원과 척왜양창의의 대의가 이루어지도록 결단을 내려야 한다.
|
|
| ▲ 동학군 총기포령 기념 재현 행사 지난 2024년 10월 19일 청산 문바윗골에서 천도교중앙총부(교령 윤석산) 주최,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대표 고재국) 주관으로 동학군 총기포령 기념식 및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앞줄 중앙에 윤석산 천도교 교령, 주선원(영채) 동학농민혁명유족회 이사장, 고재국 전국동학농민혁명연대 대표, 염상철 수운 최제우 대신사 출세 200주년 기념 추진위원장, 박징재 천도교 여성회장 등이 포덕천하, 광제창생, 보국안민, 척양척왜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해월 최시형 선생과 동학지도부의 결단의 시간이 오고야 말았다. 9월 18일(양10.16) 회의를 마치며 해월 선생은 청수(淸水, 정화수)를 모시고 깊은 심고(心告, 기원)를 올렸다. 한참 지난 후 선생은 지그시 감은 눈을 뜨고 천천히 일어나 낙마 때 다친 다리를 절면서 감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목에는 반질반질 빛나는 백오염주를 걸친 모습으로 단상에 올랐다. 선생은 하늘을 한참 바라보다가 지팡이를 연이어 세 번 단상에 쿵쿵쿵 울리고선 천지 기운을 모아 세상을 압도하는 모습으로 말했다.
"민심은 천심이라, 이는 곧 천명에 따르는 것이니라. '호랑이가 물려고 들어오면 가만히 앉아 있다 죽을까! 참나무 몽둥이라도 들고 나서서 싸워야지' 전국의 동학도인들에게 명하노니, 모두 기포하라. 손병희에게 나의 지휘권을 넘기고 동학의병군 대통령에 임명한다."
해월 선생은 손병희 통령에게 지시하였다.
"손 통령은 전봉준 대장과 연합하여 항일전쟁을 준비할 것이며, 수운 대선생님의 뜻을 받들어 개 같은 왜적들을 조선에서 몰아내라. 나도 그대들과 함께 척왜항전에 동참하겠다. 지금 이후부터 내 뜻을 거역하는 자들은 내 제자가 아니다."
동학군 총동원령과 작전계획
마침내 해월 최시형 법헌의 총기포령이 내려졌다. 해월 선생은 '기포는 천명'이라 말하고, 손병희 통령에게 작전 계획과 동학의병군 조직에 대해 설명하라고 명했다.
손병희 통령은 의병의 편제와 작전 계획을 말했다.
1. 동학군은 각 지역에서 군 체제를 편성하고 전쟁을 준비한다.
2. 성두환, 박인호 대접주 등은 그 연고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척왜항전을 지속적으로 임해주어야 한다.
3. 모든 접주·대접주들은 전라도와 충청도 외에 경상도·강원도·경기도·황해도 등지로 확전시켜 주시길 바란다.
4. 여타 지역에서는 자발적으로 기포하여 그 지역에 동학 도소를 설치하고 서로 협력하고 연대를 해야한다.
5. 손병희 통령과 북접 주력부대는 이곳 청산에 모여 남접과 연대가 결정되면 논산으로 향할 것이다. 각자 각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세를 규합하고 무장을 강화해야 한다.
손병희 통령은 더욱 구체적인 의병 활동에 대해 설명하였다.
|
|
| ▲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 학술대회 지난 (2024년) 10월 19일 천도교중앙총부(교령 윤석산) 주최, 2차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상임대표 박용규) 주관으로 옥천군 청산면 청산초등학교 강당에서 학술대회가 개최되었다. 연단 앞 윤석산 천도교 교령께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 사회는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이 맡아 진행하였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
|
| ▲ 지난(2024년) 10월 19일 옥천 청산 청산초등학교에서 개최된 해월 최시형의 총기포령과 독립서훈 학술대회 포스터. |
| ⓒ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
해월 선생의 '청산 총기포령'을 하달 받은 손 통령의 작전 계획과 최종 명령이 떨어지자, 전령 십여 명이 요란한 말굽 소리 속에 흙먼지를 일으키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동학군 지도부 회합에는 이미 병력을 대동하고 온 부대들도 있었고, 지도부만 참석한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가능한 한 지형과 교통이 편리한 동학 총본부가 있는 보은 장내리에 집결할 것을 결의하였다.
해월 최시형과 의암 손병희는 그날 밤 문바윗골에서 밤을 지새웠다. 곧 다가올 생사를 알 수 없는 전쟁을 알리는 듯한 칼바람에도 서로의 따뜻한 체온으로 한기를 막아 주면서 스승과 제자는 우의를 돈독히 하였다. 손병희는 앞으로 일어날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생각하면서, 스승의 손을 잡고 숲속에서 들려오는 짐승소리에 몸을 뒤척이며 뜬눈으로 날을 새웠다. 이때 동학의병전쟁에 참여한 전국의 동학의병들의 수는 30만여 명을 넘어섰다.
장차 경성(서울)으로 향할 것이다
이와 같이 해월 선생과 손병희 통령의 움직임에 대해 외무대신 김윤식은 9월 18일에 「면양행견일기」에서 "호남(남접)의 비도가 호서(북접)에 급히 알려 일시에 깃발을 세우고 기계를 만들며, 여러 마을에 전령을 보내 식량과 꼴(말먹이 등 전쟁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도록 하여 장차 경성(京城)으로 향한다고 한다"라고 기록하였다.
|
|
| ▲ 3.1만세독립운동 민족대표 기록화 1919년 3월 1일 민족대표가 서울 종로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반포하였다. 민족대표가 33인이었는데, 이 기록화에는 4명이 빠져있다. 당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면 모진 고문과 사망까지 염려되는 상황이라, 기독교 대표 등은 만주 등으로 탈출하여 살아 남아 끝까지 독립운동을 한다는 취지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는 구전이 있다. 이 민족대표 기록화는 현재 동학혁명기념관에 전시중이다. |
| ⓒ 동학혁명기념관 |
의암 손병희 선생은, 동학농민혁명에서 북접 통령(대통령)이었으며 3·1독립혁명에서 민족대표 33인의 대표 및 3·1독립운동의 영도자를 지낸 분이다. 동학의병군 대통령 손병희에 대한 소문과 영향력은 충청도를 중심으로 경기도와 경상도를 넘어 전국에 퍼질 정도로 대단하였다.
『정감록』 등의 참서에 '조선이 멸하고 새로운 왕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예언이 있다. 어수선한 시절이면 그렇듯이, 당시 세간에는 새로운 지도자 정도령이 바로 손병희라는 소문이 돌았다. 손병희는 가히 영웅의 기상과 성인의 기풍이 서려 있는 미래 지도자로서 부족함이 없었다.
손병희 통령은 동학의병전쟁 좌절 뒤 최시형 법헌에게서 동학 3대 교주의 자리를 물려받은 후에 교단을 수습하였다.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선포하고 교인 3백만 명을 확보하였다. 그리고 북방의 우리나라 옛 영토 지역에 많은 교인과 교역자를 보내 수십 개의 포교소와 학교를 세우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물론 최시형 법헌의 북방 포교인 '중원(중국) 포덕'의 명교를 실현하려고 한 것이라지만, 또 다른 이유로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옛 땅을 회복하려는 깊은 의도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의암 손병희는 1919년 3·1독립운동을 주도한 직후 대한국민의회, 조선민국임시정부, 임시대한공화정부 등의 국내외 임시정부, 국민의회, 공화정부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구속 수감에 모진 고문으로 병이 깊어져 석방된 뒤에 환원(별세)하여 대통령에 취임은 하지 못했다.
덧붙이는 글 | 이윤영 기자는 동학혁명기념관장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보수정치 탈 쓴 파시즘 부역자들의 얼굴, 이젠 퇴출시키자
- 윤석열 탄핵 이후 해야 할 세 가지 일
- "가당치 않은 몽니"...확실하게 권성동 타격한 '동아'
- '서울의 봄' 감독 작심 발언 "정신 나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 한덕수의 딜레마...김건희 특검법, 거부할 수 있을까
- 김상욱 "차기 비대위원장, 친윤 안돼...극우화 우려"
- "윤석열, 내란 실패 후에도 박선영 임명... 뇌물성 인사"
- '그냥 출근하지 마세요' 스페인 정부의 놀라운 결단
- 일본이 자랑하는 '100년 안심 연금'의 실체
- 헌재, 윤석열에게 "계엄 국무회의 회의록 제출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