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재활용 쓰레기통의 불편한 진실
[이동근]
약은 우리의 생명을 보호하고 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약을 만들 때 엄청난 탄소가 배출된다는 생각을 해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약을 사용함으로써 탄소를 배출시키고, 기후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열사병 등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본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제약산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 해외 발표자료에 따르면, 제약산업은 반도체나 자동차 제조업과 유사하거나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고 한다.
언뜻 생각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약이 탄소를 배출하고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다니... 제약산업이 탄소배출을 부추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의약품 원료의 대부분은 석유제품에서 얻는다. 생산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전기와 물을 사용하는 것도 탄소배출의 주요 원인이다. 그리고 포장과정이나 냉장을 포함한 유통단계에서도 탄소를 배출시킨다.
하지만 제약산업은 탄소배출 절감이나 기후위기 책임에서 약간 비껴나 있다. 제철산업이나 석유산업처럼 환경단체의 감시를 받는 분야도 아니고, 식품이나 자동차 제조업처럼 소비자가 아니라 병원이나 약국에게 선택된다. 효과적인 약을 생산하고, 병원이나 약국에 적절한 마케팅을 하면 탄소배출과 무관하게 많은 매출과 이익을 달성할 수 있다. 최근 다른 산업들은 탄소배출 절감을 위해 여러 노력들을 벌이지만 제약기업들의 관련 움직임은 턱없이 부족하다. 과연 지금처럼 계속 약을 생산하고 사용하는 것이 사람들의 건강에 이로운 일일까?
▲ 그린처방전에서 만든 폐기물 실태조사 표지 |
ⓒ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
제약회사가 생산하는 플라스틱 약병은 대부분 흰색이며 HDPE 소재이기 때문에 적절하게 분리 배출되면, 고품질의 재생원료를 생산할 수 있다. 하지만 재활용을 어렵게 하는 요인(플라스틱 분류 표기 미기재, 스티커 라벨 제거 어려움, 방부제 분리 어려움, 입구에 알루미늄 포일 제거 어려움)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전체 조사한 132개 회사 중 라벨 제거가 어려운 약병을 생산하는 회사가 48%에 달했다. 플라스틱 소재를 명확하게 기입하지 않는 회사도 28개에 달했고, 뚜껑에 방부제가 빠지지 않게 만든 기업도 39개, 입구에 알루미늄 포일이 붙어서 재활용이 어려운 기업도 8개나 되었다. 병에 붙은 라벨이 쉽게 제거되면서 실리카겔이 분리가능한 약병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약병을 생산하는 기업이 훨씬 많았다.
한국은 포장재 플라스틱에 대한 관리규정이 유럽이나 캐나다에 비해 느슨한 편이다.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를 생산하더라도 벌금 규정이 약하며, 애초에 이를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도 미진하다. 현 정부는 작년 말부터 규제하기로 되어 있던 비닐봉지나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의 규제정책도 무기한 유예하였다.
공원에 가면 카페에서 포장하거나 식당에서 배달받은 일회용제품이 여전히 넘쳐난다. 이런 상황에서 제약사가 생산하는 포장재의 규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 약 |
ⓒ 픽사베이 |
물론 일반 시민들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불필요한 약을 구매하지 않는 일이다. 한국인은 전 세계에서 약을 가장 많이 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 평균 3개 이상의 약을 처방받아 먹고 있으며 65세 이상으로 제한하면 평균 5개가 넘는 약을 복용한다고 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아파서 더 많은 약을 먹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효능의 약을 중복 복용하거나 효과도 불분명한 약을 복용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약들의 사용을 줄이기 위해 불필요한 약을 처방받지 않거나 건강보험공단에서 시범운영하는 다제약물관리사업에 참여한다면, 약값을 절약하고, 부작용 등 약물안전사고도 예방할 수 있으며, 덤으로 약병 폐기물도 줄이고 약으로 인한 탄소배출도 줄일 수 있다. 올해 여름은 유난히 덥고 길었다. 이제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무더운 여름이 더 덥고 더 길어지지 않도록 제약회사를 포함해 우리 모두가 함께 힘써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 홈페이지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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