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토마토 안 쓴다…'흑백요리사' 채소 요리의 비법

이수민 2024. 9. 2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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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맞대결을 펼친 남정석(왼쪽)·임희원 셰프. 사진 넷플릭스 캡처


최근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의 흥행이 심상치 않다. 재야의 고수인 ‘흑수저’ 셰프들과 대한민국 스타 ‘백수저’ 셰프들의 맞대결을 그린 이 프로그램은 지난 25일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흑백요리사’ 방영 이후 지난 26일 식당 예약 플랫폼 캐치테이블에서의 파인다이닝 예약 증가율은 전주 대비 150% 올랐다.

흑백요리사엔 국내 채소 요리의 일인자로 불리는 남정석 셰프가 백수저로 출연한다. 흑수저로는 ‘셀럽들의 셰프’(임희원씨)가 ‘베지테리언 사시미’를 선보이면서 대중의 관심을 모았다. 채소를 주무기로 꺼낸 두 셰프를 만나봤다.


‘팜 투 테이블’이 모토...시작은 꽁치 김치찌개


서울 옥수동 '로컬릿' 오너셰프 남정석씨. 사진 남씨 제공

남정석씨는 자신을 ‘제철 채소 요리사’라고 소개했다. 2018년 도시농부 직거래 장터 ‘마르쉐’에 동참하면서 지역 채소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남씨는 “대형마트 토마토는 유통하는 데만 며칠씩 걸리기 때문에 당도·식감이 무르익지 않은 상태에서 딸 수밖에 없다”며 “정말 맛있는 토마토는 농장에서 제일 잘 익었을 때 딴 토마토”라고 말했다.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팜 투 테이블(Farm-to-table)이 그의 모토다. 트럭에 농산물을 실어 먼 곳으로 나르지 않아도 되고, 신선도 유지를 위한 비닐 포장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농부에게 직접 채소를 어떻게 길렀고, 어떻게 먹어야 맛있는지 물어볼 수 있단 것도 장점이다. 남씨는 “일회용품과 탄소 배출을 하지 않으면서도 확인된 식재료로 요리한단 자부심이 있다”고 말했다.

강릉 포남동 자신의 텃밭에서 직접 채소를 키우는 남씨(왼쪽)와 그의 시그니처 메뉴 채소테린. 사진 남씨 제공


24년 차 요리사 남씨가 처음부터 ‘지속가능한 요리’란 철학을 그릇에 담은 건 아니었다. 1997년 대학 시절 자신이 끓인 꽁치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친구들을 보며 ‘내가 요리에 소질이 있나?’ 처음 생각했다. 남씨는 군 복무 후 외식조리학과로 진로를 정했고, 신라호텔 주방장 출신 최수근 교수 밑에서 요리를 배웠다. 경력을 쌓아 호텔 주방장, 대기업 사내 식당 총괄 셰프 등을 역임했다.

채소 요리로 인정을 받은 건 2022~2023년 ‘서울미식 100선’에서 2년 연속 베스트 채식 레스토랑 상을 받으면서다. 서울 옥수동 ‘로컬릿’ 창업 3년 만이다.

남씨가 '흑백요리사'에서 '도화새우 캬라멜레'를 만들 때 썼던 케일 반죽(왼쪽)과 파스타. 사진 남씨 제공


남씨에게 제철 채소는 때를 기다리게 하는 설렘이다. 남씨는 “제철에 나오는 작물은 물, 바람, 햇빛, 땅의 기운을 있는 그대로 흡수해서 나온 것이다. 그런 건강한 재료를 보물찾기하듯 찾아 먹는 게 사계절의 재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표고버섯과 전복은 한끗 차이...단순함의 변주


지난 25일 서울 한남동 '부토'에서 만난 임희원 셰프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수민 기자

임희원씨가 채식 요리를 선 보인 배경에는 유행 따라 흥망성쇠가 갈리는 국내 요식업계에 대한 회의감이 있었다. 임씨는 “고기면 고기, 마라면 마라,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요식업계에) 있다”며 “똑같은 육수와 소스로 간판만 바꿔 가게를 내면 뭐하나. 유행은 순식간”이라고 짚었다.

임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한정식당에서 하루 1600~1800개의 그릇을 닦으면서 어깨너머로 한식을 배웠다. 요리 전문 대학으로 가 양식을 접했을 땐 혼자 4000~5000㎞씩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전국에서 파스타 식재료를 구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맛을 찾는 것, 그의 19년 요리 인생의 숙제였다.

홍콩 ‘모모제인’이란 한식 퓨전 레스토랑에서 2015년부터 3년간 헤드 셰프로 일한 임씨는 여러 권역의 음식을 조합해 500여개의 레시피를 개발했다. 임씨는 “그 당시 수입의 80% 이상은 먹는 데 썼던 것 같다”며 “세계 각지의 현지 음식을 먹어보고 ‘우리 나라와 어울리나’ 늘 고민했다”고 말했다.

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가운데)과 임희원(왼쪽) 셰프. 사진 임희원 셰프 제공


2018년 귀국한 후 임씨의 눈에 들어온 건 사찰 음식이다. 7년간 백양사 정관스님을 따라다니면서 사찰음식을 배웠다. 수행하는 사람이 소화하는 데 기운을 뺏기지 않도록 만든 음식이기 때문에 재료도, 조리법도 일반 음식과는 180도 달랐다. 임씨가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베지테리언 사시미’도 그때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조청·간장·참기름을 졸여 표고버섯을 존득존득하게 해서 마치 전복을 먹는 것과 같은 식감을 만들어냈다. 사찰 음식 중 하나인 ‘표고조청조림’과 비슷하다.

임씨는 “결국 지속가능한 요리는 다양한 영감을 어떻게 현재에 접목하느냐, 거기에 있는 것 같다”라며 “한 가지 확실한 건, 채소 하나로도 단순함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임씨가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베지테리언 사시미'(왼쪽)과 현재 레스토랑에서 팔고 있는 같은 메뉴. 시즌마다 구성이 조금씩 바뀐다. 사진 임씨 제공

이수민 기자 lee.sumi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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