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그룹] 역귀성 추석, 아내에겐 계획이 따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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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민족 대명절인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분주해진다. 마트와 전통 시장에는 추석 차례상에 올릴 제수 음식과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조상을 모시거나 떨어져 사는 부모 형제와 친척을 만나기 위한 준비에 바쁘다.
추석이 되면 으레 고향을 찾아 조상의 산소에 성묘하고, 부모 형제·친척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게 전통적인 풍습이다. 우리네 명절은 바삐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한 박자 쉬어가는 쉼표 같은 역할을 해 왔다.
부모님 생시의 추석 풍경과 불편함
나도 과거에 부모님이 생존해 계실 때는 남해 본가에 내려갈 채비에 바빴다. 본가에서는 부모님이 오매불망 보고 싶은 자식들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신다. 그런 부모님의 심정을 잘 알기에 명절이 되면 귀성길에 오르는 것을 당연시했다.
추석 전날, 아내와 함께 아들딸을 데리고 본가로 내려가서 추석맞이 차례 음식을 준비한다. 추석날 아침에는 가족들과 같이 차례를 지내고 나서 친척들과 모여 성묘를 간다. 성묘를 마치고 오면 친척들과 어울려 음식을 나누어 먹고, 이런저런 이야기꽃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이런 게 부모님 생시에 우리 가족이 보낸 추석날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의 추석이 꼭 즐거운 것만은 아니었다. 아내는 본가에서 보내는 추석을 즐겁기보다 불편해 하는 경우가 많았다. 추석 음식을 장만하고 차려주며, 어머니 기분을 맞춰드리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내의 기분을 살피며 부모님의 심기가 상하지 않도록 중간에서 마음을 졸여야 했다.
또 본가와 처가를 방문할 때, 집으로 돌아올 때의 교통 체증으로 힘들었다. 명절이 다가오면 양가를 방문할 계획을 세우고 양가 가족들을 만나는 것이 즐거운 일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아들딸과 함께하는 추석, 준비도 즐거워
이제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었다. 양가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고향에는 본가마저 없어졌다. 우리 가족의 추석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추석이라고 고향에 내려가지도 않는다.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산소는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 기일에 찾아뵙는다. 형님과 누나도 부모님 기일에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고향 마을을 둘러보면서 친척들을 만난다.
▲ 필자의 부부가 역귀성하기 위해 예매한 서울 수서행 열차 승차권. |
ⓒ 곽규현 |
▲ 텃밭에서 자라고 있는 농작물, 우리 부부는 작물을 수확하여 서울의 아들딸에게 가져간다. |
ⓒ 곽규현 |
일부는 택배로도 부치고 일부는 직접 가져 가기도 한다. 이런 게 부모 마음 아닐까. 예전에 우리 부모님 마음도 이랬을 것이다. 아무튼 아들딸에게 이것저것 푸짐하게 가져가고 싶은 것은 우리 부부가 같은 마음이라 즐겁기만 하다.
추석에 대한 기대와 설렘, 앞으로도 이랬으면
아들딸은 우리 부부가 서울에 가면 추석을 어떻게 보낼지 계획을 세우고 있다. 지난 설에는 아들딸과 함께 청와대를 구경하며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 지난 설에 역귀성하면서 아내가 집에서 만들어 간 잡채 |
ⓒ 곽규현 |
나처럼 고향에 갈 일이 없어, 서울 집에서 추석을 쇠는 서울의 고향 친구들도 만나서 오랜만에 얼굴을 보려고 한다. 아내도 가끔 연락은 하지만 만난 지가 오래된 서울의 자기 외숙모와 외사촌을 찾아보겠다고 한다. 역귀성하여 아들딸과 함께하면서도, 우리 부부가 각자 만나고 싶은 친구나 친척을 찾아본다면 편안하고 의미 있는 알찬 추석이 되리라 기대하며 기다려진다.
나는 아들딸이 결혼하더라도 우리 가족 모두가 지금처럼 스트레스 받지 않는 즐거운 추석 명절이길 바란다. 물론 자녀의 결혼으로 며느리와 사위가 생기면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질 것이다. 아무래도 며느리와 사위는 혈족이 아닌 가족이라 더욱 따뜻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리라 본다.
결혼과 동시에 우리 아들과 딸도 누구네 사위와 며느리가 될 것이다. 결국 사위와 며느리도 아들딸처럼 소중한 가족이 아닐 수 없다. 전통이나 형식에는 구애받고 싶지 않다. 나는 미래의 우리 며느리와 사위도 아들딸처럼 스스럼없이 소통하며 어떤 방식으로든 가족 모두가 행복한 추석 명절이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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