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말라죽는 건 처음"…벌겋게 물든 산에 경북 비상, 무슨일 [르포]
지난 10일 오후 경북 고령군 다산면 월성리. 도로 양옆으로 솟아있는 산과 언덕마다 벌겋게 물든 나무가 빼곡했다. 심한 곳은 산의 초록색 부분보다 붉은 부분이 더 많아 보였다. ‘소나무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하 재선충병)이 빠르게 번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로 말라죽은 모습 처음”
특히 고령군 다산면은 다른 지역보다 재선충병 확산이 심각해 경북 안동·포항·성주, 대구 달성군, 경남 밀양 등 6개 시·군과 함께 산림청이 정한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특별방제구역은 재선충병 집단발생지에서 주변 산림으로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해 집중 관리하는 구역을 말한다. 고령군 다산면에서만 축구장 1524개에 달하는 규모인 1088.3㏊가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됐다.
고령군 다산면에서 자동차정비업체를 운영하는 김모(48)씨는 “주변 야산 소나무가 올해처럼 많이 말라 죽는 모습은 처음 본다”며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더는 고사목이 번지지 않도록 산림당국이 대응을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재선충병은 매년 증가세를 보인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이 산림청에서 받은 ‘2020∼2024년 소나무재선충병 발생 현황’에 따르면, 재선충병은 2020년 40만6362그루, 2021년 30만7919그루, 2022년 37만8079그루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해 106만5967그루로 급증했다. 올해는 현재까지 89만9017그루를 기록했다.
기후변화로 급증하는 재선충병
국내 재선충병은 1988년 10월 부산 금정산에서 처음 발견됐다. 길이 1㎜가량인 재선충은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몸속에 기생하는데, 이들 매개충이 나무를 갉아먹을 때 생긴 상처를 통해 침투한다. 감염된 소나무는 6일이 지나면 잎이 아래로 처지고, 20일 뒤엔 잎이 시든다. 30일이 되면 잎이 빠르게 붉은색으로 변하면서 말라 죽기 시작한다. 수분·양분 흐름에 이상이 생겨서인데 고사율 100%다.
경북은 전국에서 재선충병 확산이 가장 심각한 곳이다. 올해 현재까지 발생한 재선충병 감염목 89만9017그루 중 40% 이상이 경북에서 발생했다. 10일 경북도에 따르면 지역 재선충 감염목은 약 40만 그루로, 감염 우려목까지 합치면 총 피해 소나무가 74만 그루에 이른다. 현재 경북 22개 시·군 가운데 19개 시·군에서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울릉에서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영양과 울진은 청정지역으로 돌아갔다.
이처럼 재선충병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은 기후변화로 매개충 증식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방제 작업이 재선충병 확산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극심했던 2020~2023년 사이 재선충병 방제사업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환경파괴 우려 민원으로 항공방제가 전면 금지돼 있다는 점도 재선충병 확산에 한몫하고 있다.
산림당국은 기존 재선충병 대응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재선충병 집단발생지 수목을 모두 벤 뒤 후 다른 나무를 심고 있다. 재선충병 확산세가 특히 심각한 경북 안동을 비롯한 전국 15곳에서 올 하반기 시범적으로 실시한다.
소나무→활엽수 수종 전환 추진
수종 전환은 산림소유주가 고사목 제거에 동의하면 지역산림조합 등이 소나무를 산 뒤 베어내 팔고, 산림청이 참나무나 동백나무 등을 심어 새로 숲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대부분 소나무로만 이뤄져 있는 국내 산림은 재선충병 확산이나 산불 등에 취약한데, 상록활엽수종으로 수종 전환을 하면 재선충병 확산을 막고 산불 피해도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경북도 관계자는 “급격하게 증가하는 재선충병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이 경북”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미래 기후 조건에 맞는 수종으로 바꿔야 한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관리 가능한 수준 이하로 재선충 피해를 낮추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고령=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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