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드라마 <기리고> 속 숨소리,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한지숙 2026. 6. 1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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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스크린 너머 '음향'의 세계를 다루는 최은아 다이얼로그 에디터

[한지숙 기자]

'다이얼로그 에디터(Dialogue Editor)'. 직역하면 '대화 편집자'이지만, 직함만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이 이름은, 우리가 접하는 영상 콘텐츠 속 인물들의 목소리를 완성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27년차 다이얼로그 에디터인 최은아 기사는 영화 <엑시트>(2019), <모가디슈>(2021), <헌트>(2022) 등 낯익은 영화들에 참여한 베테랑 영화 음향 기사다. 많은 영화의 엔딩 크레디에서 그의 이름을 볼 수 있지만, '다이얼로그 에디터'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다.

"우선 현장에서 녹음해 온 동시녹음 소스(source)를 가지고 아주 미세한 소음까지 깎아내는 클리닝(cleaning) 작업을 해요. 대사 톤이 튀는 대목을 부드럽게 조절하고, 배우의 발음이 씹히거나 뭉개진 부분이 있으면 현장에서 찍은 다른 테이크(take, 녹음본)에서 좀 더 나은 발음을 찾아내 갈아 끼우기도 하죠. 현장 소스를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면, 배우를 스튜디오로 불러 후시녹음을 합니다."

최근 글로벌 흥행에 성공한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도 그가 참여한 작품이다. 화면 뒤에서 인물들의 숨소리부터 대사까지 한 장면 한 장면을 선명하게 들리도록 다듬었다. 장르물이지만 자연스러운 몰입이 가능했던 것은 이처럼 다이얼로그 에디터의 손길이 닿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0일, 최은아 기사의 작업실이 있는 서울 서초구 모노콘에서 그를 만나, 스크린 너머 소리의 세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대사 만지는 재미에 울고 웃죠"
▲ 최은아 다이얼로그 에디터의 작업 모습 지난 5월 20일, 최은아 다이얼로그 에디터가 작업을 하고 있다.
ⓒ 한지숙
최 기사의 작업실 모니터는 오디오 파형들로 가득하다. 최근에는 한 해의 절반을 방대한 분량의 OTT 시리즈 작업에 쏟아붓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에게 영화 작업은 언제나 특별한 애정의 대상이다.

- 최근 참여하신 넷플릭스 시리즈 <기리고>가 좋은 성과를 거뒀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기분이 나쁘진 않죠. (웃음) 사실 일을 마친 후 흥행이 잘 되든 안 되든 저희와 별 상관은 없어요. 오히려 '소리가 후지다'는 후기가 있을까 봐 긴장하는데, 이번엔 그런 얘기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작품이 워낙 재밌어서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 지난 2020년 참여하신 인터뷰집 <영화하는 여자들>이 발간된 이후, 업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영화와 시리즈 모두 OTT 중심으로 흘러가는데, 업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나요?

"정말 많은 게 달라졌어요. 그 인터뷰 때까지만 해도 드라마를 해본 적이 없어서 '우리가 드라마를 하게 될까?' 했거든요. 그런데 불과 1~2년 만에 드라마 일이 들어오더니 이제 1년에 반은 드라마, 나머지 반은 영화 작업을 해요. 드라마는 분량이 정말 많아요. 8부작인 <기리고>만 해도 영화 몇 편 분량과 맞먹어요. 그런데 작업 방식은 영화와 똑같죠. 기한 내에 작업을 마쳐야 해서 초과 근무도 많고 체력적으로 힘들어요."

- 드라마 시리즈에 비해 영화 작업만이 주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영화는 약 2시간 분량이라 보고 또 보며 세세하게 작업해요. 보통 영화 한 편에 한 달 정도 시간을 들이거든요. 그 2시간을 한 달 내내 작업하니까 대사도 꼼꼼하게 여러 번 들어보게 돼요. 그렇게 계속 대사를 들으며 다듬다 보면 처음엔 평범하게 느껴졌던 작품도 정이 들어요. 인물들에게 깊이 감정이입이 돼서 감동 받고 울기도 하죠. 일이 끝날 때쯤엔 '이 영화가 정말 잘됐으면 좋겠다'는 애정이 생겨요."

이토록 영화에 진심인 그이지만, 처음부터 영화 음향의 길을 택했던 것은 아니다.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한 최 기사는 영화에 대한 애정만으로 음향 기사가 됐다. 중학생 때부터 <스크린>, <로드쇼> 등의 영화 잡지를 사느라 용돈을 다 썼고, 늘 영화 음악을 들었다. 대학 졸업 후 2년 간 다른 일을 하다 평생 할 만한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자연스레 방송 아카데미로 향했다.

"라디오 엔지니어 일을 하면 어떨까 싶어 MBC방송아카데미에서 공부했어요. 같은 수업 수강생 중 영화 <투캅스3> 스크립터를 했던 친구가 마침 영화 후반 작업하는 회사에 자리가 났다고 소개해 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됐죠. 영화 일도 해보고 싶었거든요."

그가 영화 음향 기사 일을 시작한 2000년 무렵에는 영화 음향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통로가 넓지 않았다. 업계 대부분이 회사에 들어가 도제식으로 일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등에서 사운드 전공자들이 본격적으로 배출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업계에서 비전공자 찾기는 힘들어요. 후배들이 저보다 아는 게 더 많아서 모르는 건 후배들한테 물어가며 일합니다."

- 비전공자로 시작해 27년 경력을 쌓아오셨습니다. 이렇게 오래 일할 수 있게 한 다이얼로그 에디팅의 매력이 뭔가요?

"영화 음향은 크게 사운드 이펙트, 폴리(Foley), 다이얼로그 에디팅으로 나눠요. 사운드 이펙트가 총소리나 폭발음, 빗소리, 도시 소음 같은 효과음과 배경음을 입히는 작업이라면, 폴리는 폴리 아티스트가 발소리, 먹는 소리, 물건을 만지는 소리 등을 직접 만들어내며 인물의 감정을 조절하는 작업입니다. 이런 사운드 이펙트나 폴리 분야 같은 경우에는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창의력이 필요해요.

그런데 다이얼로그 에디팅은 동시녹음 소스가 주어지면 그걸 가지고 하는 작업이다 보니 꼼꼼함과 성실함이 있어야 하죠. 이 일은 대사 만지는 재미가 있어요. 박찬욱 감독님, 정지우 감독님 같은 분들의 영화를 작업하다 보면 더 그렇죠. 대사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많고요. 무엇보다도 영화가 바뀔 때마다 새롭게 일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그가 '연 1회 독립영화 지원'을 이어가는 이유

다이얼로그 에디터는 동시녹음 소스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최 기사는 오랜 시간 일을 하며 '현장의 소리를 완벽하게 담으려면 감독의 배려, 그리고 감독과의 직접 소통이 필수적'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예전에는 막연히 동시녹음 기사가 마이크를 잘 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오랫동안 이 일을 한 후 내린 결론은, 결국 그 원인이 감독에게 있다는 거예요. 현장에서 감독이 음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동시녹음 기사가 있어도 좋은 소리를 딸 수가 없더라고요. 카메라를 여러 대 두고 동시에 찍느라 마이크가 들어갈 공간이 없다거나, 조명 때문에 화면에 마이크 그림자가 걸려 마이크를 배우 가까이 대지 못하는 상황, 혹은 소음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을 그냥 넘어가 버리면 후반 작업에서 동시녹음 소스를 살리기가 힘들어지죠."

- 예를 든다면요?

"한 감독님은 현장의 생생한 소리를 살리고 싶어해서, 후시녹음을 선호하지 않아요. 동시녹음 상태가 안 좋은데 후시녹음을 하지 않겠다고 해서 저희가 '현장에서 잘못했기에 동시녹음이 이렇게 나온 것'이라고 직언을 한 적도 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고 나니까, 요즘은 소리가 안 좋게 나올 것 같은 신을 찍기 전에 저희한테 먼저 물어봐요. '이런 신을 찍으려고 하는데 어떻게 찍어야 소스를 살릴 수 있겠냐'고요. 중간중간 동시녹음 소스를 보내주며 사전에 확인할 수 있게 하고요.

다른 감독님은 현장에서 대사를 깨끗하게 따기 위해 마이크를 가깝게 대다가 마이크가 카메라 앵글 안으로 들어와도 'CG로 지우면 되니까 그냥 가자'고 해요. 촬영 중간중간 동시 녹음 소스를 보내주시며 괜찮은지 확인하고요. 이런 식으로 계속 소통하는 구조가 갖춰지면 소리가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최 기사가 함께 일하고 있는 후반 작업 회사 '모노콘'은 선 굵은 액션이나 누아르 장르의 대형 영화 작업을 주로 하는 곳이다. 이들은 매해 독립영화를 한 편씩 작업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날 최 기사의 작업실 모니터에 떠 있던 화면도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였다.
▲ 모노콘 사무실 최은아 다이얼로그 에디터가 근무하는 영화 음향 회사 '모노콘'.
ⓒ 한지숙
- 독립영화 작업을 맡아 꾸준히 재능 기부를 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 회사가 상업 영화 시장에서 많은 기회와 과분한 대접을 받는 만큼, 대표에게 1년에 독립영화 한 편은 하자고 말했어요. 그래서 지난해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초대 위원장인 김동호 위원장님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를 작업했고, 그 전에는 나문희 배우님이 출연하신 영화 <소풍>도 했어요. 독립영화의 감독, 배우가 전하는 진솔한 메시지를 들으면 제가 더 큰 위로와 감동을 받아요. 영화관에 대한 인터뷰로 구성된 <미스터김 영화관에 가다>에서 윤가은 감독님이 '대형 멀티플렉스 말고 누구든 걸어가서 볼 수 있는 동네 극장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참 공감이 가더라고요."

27년간 수백 편의 영화 대사를 손질해 온 그에게, 영화는 일이자 낙이다. 기나긴 OTT 시리즈 작업이 마무리되면 사무실 근처 영화관으로 향해 하루에 세 편씩 밀린 영화들을 몰아본다고. 작업실 안에서 종일 영화를 보는 사람이, 다시 극장을 찾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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