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책 본다”며 망신 주기, 목숨 끊은 학생…대법 “정서 학대”

학교 자습시간에 장르소설의 일종인 ‘라이트 노벨’을 봤다는 이유로 공개적으로 꾸짖고 체벌해 학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게 한 중학교 교사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교사 A씨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4일 밝혔다.

경북 포항의 한 중학교에서 도덕 교사로 근무하던 A씨는 2019년 3월 3학년 수업 중 학생들에게 독서 등 자율학습을 지시했다. 그러던 중 A씨는 B군이 읽던 책을 보고는 “이거 야한 책 아이가”라며 공개적으로 질책했다.

B군은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책 아닙니다”라고 해명했지만, A씨는 B군을 교실 앞으로 불러 수업이 끝날 때까지 20분간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학급의 다른 친구에게 B군이 읽던 책을 주고는 “야한 거 나오는지 체크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해당 책은 청소년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가벼운 대중소설로 신체 노출 삽화가 일부 있으나 성적인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수업이 끝난 뒤 B군은 홀로 교실에 있다가 A씨 탓에 따돌림을 받게 됐다는 글을 도덕 교과서에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10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B군이 같은 반 교우들 앞에서 느꼈을 수치심이나 좌절감이 극심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2심은 A씨 행동이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하면서도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 감형했다. 재판부는 “B군이 가장 좋아하는 선생님으로 A씨를 꼽았을 만큼 이 사건 이전까지 두 사람이 우호적 관계에 있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는 평소 학생들을 학대한 적이 없고, B군을 괴롭힐 의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A씨가 불복해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원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훈육 또는 지도 목적으로 한 행위더라도 학생의 정신건강이나 복지를 해치거나 그러한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다면 정서적 학대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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