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우영우'들은 여전히 편견과 싸우고 있다

최서정 2024. 12. 30. 15:0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0대 장애인 활동 지원사 이야기] 비상계엄령? 자폐인에겐 일상이 비상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서정 기자]

지난 19일 장지용씨를 만나러 지하철에 올랐다. 이윽고 일상 속 장애 차별 표현을 탐색하는, 자기 검열의 시간을 가진다. 종종 쓰고 듣던 '결정 장애'.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오래 고민하는 상황에서 농담하듯 쓰는 표현에도 차별이 숨어 있었다. 바로 '장애인은 부족하고 열등하다'는 편견과 시각이다.

순간 '비하하려는 의도는아닐 텐데'라는 생각도 스쳤지만,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니 곧바로 납득이 됐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불안감이 스쳐 고개를 들었다. 지하철 환승역을 지나친 것이다. 아무리 서둘러도 30분 지각은 확실했다. 얼른 전화를 걸어 장씨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그는 당황하는 나를 차분히 달래며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환승역을 알려줬다.
▲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장지용 씨 지난 19일 한 카페에서 카메라를 보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최서정
"1번 출구로 나오세요!" 오후 2시 30분 인천 주안역 앞 횡단보도에서 녹색 모자를 쓴 청년이 손을 번쩍 들어 자신임을 알렸다. 장지용씨(1989년생). 현재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일하며, 브런치와 <에이블뉴스> 등에 글을 쓰는 작가다. 그는 스스로를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라고 소개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란? 자폐의 공식 진단명. 사회성 발달장애의 대표적 유형으로, 타인과의 상호작용 능력에 결함이 있거나 제한적이고 반복된 행동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스펙트럼'이라는 말 그대로 자폐인의 증상은 종류와 강도가 매우 다양하다.

우리의 삶 자체가 힘들다

장씨의 안내를 따라 역 근처 조용한 카페로 들어갔다. 마주 앉은 그는 언뜻 비장애인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남달랐다. 의사소통 능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 이번 비상계엄 사태와 같은 사회 문제에도 주관이 뚜렷했다.

"제가 손이 많이 가죠?"

내가 노트북 충전기 연결을 부탁하며 한마디 건네자, 그는 말없이 책상 아래로 몸을 숙여 묵묵히 요청을 들어주었다.

그를 만난 이유는 '12·3 비상계엄 사태'로 불거진 장애인 정보 접근권 문제에 대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딱 그날의 어려움 정도만 알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의 삶 자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특히 그의 한마디는 나를 번뜩이게 했다.

"발달장애인들은 이번 계엄령 사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여러모로 힘든 현실을 살아가요. 숱한 차별과 모욕 속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그 순간, 삶의 일부가 아닌 그의 삶 전체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다.

장씨의 삶과 '그래도'

장씨가 인터뷰 내내 반복해서 강조한 말은 "그래도"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혹독한 교육을 받아 그래도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하면서도, "대부분의 중증 자폐인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는 대학에서 사진영상미디어를 전공하고 혼자 해외여행을 다닐 만큼 자립 역량이 뛰어났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폐인은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일상을 살아가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대부분) 봉사 활동 시간에 만나는 수준"이라며 자폐인과 그 가족이 겪는 어려운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비상계엄 사태 역시 중증도가 높은 경우 계엄령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 소동이 있었는지조차 모른 채 지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자신 같이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은 자폐인도 겨우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결국 장씨의 사례로만 전체 자폐인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또한 그래서도 안 됐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명에서 '스펙트럼'이란 단어가 의미하듯, 자폐인은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씨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르듯 말이다.

자폐인 당사자가 짊어온 '장애의 무게'

그렇다면 장씨의 삶은 다른 자폐인들에 비해 순탄했을까. 결코 쉽지 않았다.
▲ 워크투게더(장애인고용포털) 캡처화면 (29일 기준) 장애인 고용 전문포털인 '워크투게더'의 채용정보로 모집직종, 근무조건, 지원자격 등이 나와있다.
ⓒ 최서정
지난 23일부터 새로 출근한 회사만 벌써 15번째 직장이었다. 대부분 계약 만료나 해고 등 원치 않은 이유로 퇴사해야 했고, 정규직으로 채용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직업의 선택 폭도 좁았다. 장애인고용포털 'Work Together'에 올라오는 일자리 대부분은 단순직 위주였다.

"면접 때마다 장애 수준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고, 장애 상태를 꼬치꼬치 물을 때면 정말 힘들었어요."

그래서 그는 "법적으로는 중증이나 실질적으로 경증"이라는 문구를 이력서에 추가하기 시작했다. 채용 과정에서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작용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 장지용씨 이력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장지용씨는 이력서에서 자신의 장애 정도를 "법적으로는 중증이나 전문의 소견으로 일상·사회생활에서는 실질적으로 경증"으로 표현한다.
ⓒ 장지용 본인제공
그럼에도 여전히 면접에서 "출근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들어야 했다. 이어진 그의 말이 너무나 타당해 절로 맞장구가 쳐졌다.

"거기(면접장)까지 갔다면 이미 출근할 준비가 된 거죠!"

다만 병역 의무에서는 아예 거절당했다. 해군 입대를 희망했지만 2008년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전시근로역(당시 제2국민역) 판정을 받으면서 면제됐다.

신체검사결과, 정신과에서 '이상'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상'이었다. 사실상 군대를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것이다. 자신을 '군대에서 거절당한 사람'이라 표현했다.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면
▲ 장지용씨 징병신체검사결과 통보서 2008년 징병신체검사결과에서 현역은 가지 않는 대신 전시에만 소집되는 '제2국민역(전시근로역)' 병역 처분을 받았다. 이후 2012년 민방위까지 면제받았다.
ⓒ 장지용씨 본인제공
장씨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비자폐인과 닮은 점도 많았다. 취업의 어려움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좋아하는 야구 이야기를 할 때면 눈을 반짝이는 모습이 그랬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실히 말하고 억울한 상황에서는 분노하는 그를 보며, 순간순간 그의 장애를 잊어버릴 정도였다.

물론 다른 점도 분명했다. 장씨는 단어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한 일화를 들려줬다. 이전 직장에서 점심 메뉴로 나온 곰탕을 보고 동료들에게 "곰탕에는 곰(동물)이 들어간 거죠?"라고 물은 것이다. 얼핏 기발한 발상처럼 느껴져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지만, 이내 비장애인과 어울리기까지 겪었을 수많은 노력과 시행착오가 떠올라 웃음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장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조금이나마 자폐인의 삶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삶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 온, 그리고 앞으로도 그래야 하는 사람.

그동안 여러 대형 언론사와 굵직굵직한 인터뷰를 해온 그가, 시민기자인 나를 만나준 이유도 그래서가 아니었을까. 말과 글을 통해 자신이 가진 장애의 특징과 삶의 방식을 공유하며,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폐인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도록 노력해 온 셈이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속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우영우의 우당탕탕 매력에 빠졌던 것처럼.

여기엔 물론 배우 박은빈의 연기력도 큰 몫을 차지했지만, 자폐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왜곡과 오해를 제대로 짚어낸 점이 흥행 이유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는 서툴지언정 자폐인 역시 직장을 다니고, 사랑하고, 결국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었다.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 회 우영우의 대사)

장씨도 현실에서 '우리 곁의 우영우'로 남아 가치 있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와 현실의 차이는 분명했다. 우영우는 대형 로펌의 정규직 변호사가 되는 해피엔딩을 맞았지만, 장씨는 여전히 사회적 편견과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해피엔딩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장애인들이 그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함께 해야 가능하다. 내가 그와 마주 앉아 열심히 귀를 기울였던 이유도, 장애인이 겪어온 삶의 무게를 이곳 <오마이뉴스>에 나누는 이유도 바로 그래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에 대한 흔한 오해, '공감하지 못한다고?'
흔히 자폐인은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고 오해받지만, 그들 역시 타인의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유튜버 Dr. 토마토에 따르면, 오히려 자폐인들은 비장애인에 비해 감정 능력이 훨씬 민감하다. 즉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좌절하거나 슬퍼하기도 한다. 대신 자신의 감정을 세심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질 뿐이라고 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의 일부는 제가 진행하는 관악FM 라디오에도 방송될 수 있습니다. *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 장지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https://brunch.co.kr/@alvis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