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빈 손으로 끝난 윤·한 회동…'81분 대화' 결과물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마주 앉았지만, 결과는 빈손이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81분간 만났지만, 사실상 각자 다른 소리를 냈다.
한 대표는 그간 주장한 대로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주장했으나, 윤 대통령의 극적인 호응은 없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대통령실 인적쇄신 ▶대외활동 중단 ▶각종 의혹 해소 등 한 대표의 ‘3대 요구안’에는 어떤 식으로든 언급하지 않았다. 이날 대통령실은 회동에 대해 “서면 브리핑이 없다”고만 하고 공식적으로 침묵했고, 국민의힘에선 “대통령의 반응을 저희가 말씀드리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여권에선 “입장 차이마저 확인할 수 없는 최악의 회동 결과”란 탄식이 나왔다.
이날 회동에 대한 유일한 브리핑은 회동에 배석하지 않은 박정하 국민의힘 대표 비서실장이 한 대표의 구술을 전하는 형태로 진행했다. 박 실장은 이날 저녁 국회 본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대표는 오늘 회동에서 나빠지고 있는 민심과 여론 상황, 이에 따른 과감한 변화와 쇄신 필요성을 말했다”며 “김건희 여사 이슈 해소와 관련해 대통령실 인적 쇄신과 대외활동 중단, 의혹사항 설명 및 해소 그리고 특별감찰관 임명 진행 필요성, 여야의정(여당ㆍ야당ㆍ의료계ㆍ정부)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박 실장은 “한 대표는 우리 정부의 개혁정책,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지지하고 당이 적극 지원할 것이라는 점을 말했다”며 “개혁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는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덧붙였다”고 했다. 이어 “고물가ㆍ고금리 등 민생 정책에 있어서 당ㆍ정ㆍ대 협력 강화 필요성에 대해서도 말했다”고 전했다. 매주 일요일 오후 개최되던 비공개 고위 당ㆍ정ㆍ대 협의는 의정갈등 관련 여권 내 이견이 노출된 8월 말 이후 두 달가량 멈춰선 상태다.
한 대표 발언에 대한 윤 대통령의 반응과 관련해서 박 실장은 “(한 대표로부터) 전달받은 바 없다”며 “대통령실에 취재해 달라”고만 했다. 한 대표의 평가에 대해서도 “특별히 말한 것 없다”고 했다. “분위기가 좋았다. 산책도 하고 격의 없이 대화 나눈 것으로 안다. (야당의) 헌정 유린을 막아내고 정부를 성공시키기 위해 당정이 하나가 되자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는 대통령실 관계자와의 전언과는 온도차가 컸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한 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의혹 규명을 위한 특별감찰관 임명 필요성도 강조했다고 한다. 그간 국민의힘은 특별감찰관 임명을 더불어민주당의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 문제와 연계해왔는데. 이와 상관없이 특별감찰관만 임명하자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윤 대통령 반응도 뜨뜻미지근했던 것으로 보인다. 앞서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최고위 회의에서 “8년 전 북한인권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미루고 있는 민주당은 조속히 이사를 추천하여 재단 출범에 협조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회동은 당초 예정시간보다 24분 늦은 오후 4시54분에 시작해 81분간 진행됐다. 두 사람은 차담에 앞서 대통령실 야외 잔디 마당인 파인그라스에서 10여분 간 산책했다. 윤 대통령은 “나토(NATOㆍ북대서양조약기구)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를 하고, 영국 외교부 장관이 방문(했다)”며 면담이 늦어진 배경을 설명했다.
‘경찰의 날’을 맞아 윤 대통령은 올해의 경찰 영웅으로 현양(顯揚)된 고(故) 이재현 경장 등을 언급하며 “경찰 영웅은 몇십년이 지나도 잊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는 말도 했다. 산책엔 두 사람을 비롯해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등 일부 대통령실 참모도 함께했다.
산책 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파인그라스 내부로 이동해 면담에 돌입했다. 이때 윤 대통령은 한 대표 등을 감싸듯이 안고 두드려줬다고 대통령실 관계자가 전했다. 두 사람의 개별 면담은 7월 30일 이후 83일 만이다. 대통령실이 공개한 회동 사진에 따르면 기다란 테이블 한쪽 편에 윤 대통령이, 맞은 편엔 한 대표와 정 비서실장이 앉았다.
윤 대통령 앞엔 펜이나 메모지는 없었고, 한 대표 옆엔 그가 가져온 빨간색 파일이 놓였다. 빨간 파일 안에는 한 대표가 윤 대통령에게 요구할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자리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대표 자리엔 제로콜라가 놓였는데 이는 평소 제로콜라를 마시는 한 대표를 위해 윤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고 한다.
김기정·박태인 기자 kim.ki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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