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아시아의 단검"...주한미군사령관 발언의 진짜 의미
[김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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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월 21일(현지시간)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상원 군사위원회에 출석해 발언하고 있다. |
| ⓒ 주한미군 |
그는 태평양의 경쟁 구도를 이해하기 위해 지도를 오른쪽으로 90도 회전시켜 한반도를 정중앙에 두고 중국의 동해안에서 태평양 쪽을 보는 시각을 상상해 보라고 제안했다. 중국은 바다를 마주하고 있지만, 그 앞에는 한반도가 정면에 서 있다. 한국은 아시아 정중앙에 있어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가까운 곳에 자기 중심부를 직접 타격하고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옆에 두고 있는 셈이기에 한국을 전략적 요충지로 의식하고 있다.
한국이 외로이 있는 건 아니다. 일본도 우리 뒤에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이 칼이라면, 일본은 중국이 태평양을 향해 군사적·지정학적 야심을 펼치는 것을 막아 세우는 '방패', 최후 저지선이다. 또 중국 남동쪽에는 필리핀이 있다. 필리핀은 남쪽 태평양을 압박하고 있다. 만약 필리핀에 미국의 최신 미사일 시스템인 타이폰처럼 강력한 전략 무기가 배치된다면, 중국은 태평양으로의 접근과 기동이 막힌다. 중국 관점에서는 남동쪽 진출로마저 막히는 것이다.
한국, 일본,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세 나라의 국방 시스템은 지정학적으로 촘촘하게 얽혀 있다. 중국의 팽창을 사방에서 억제하는 강력한 '전략적 삼각 구도'다. 전 세계 무역량의 42~48%가 이 삼각 구도를 통과한다. 세 국가의 결속과 군사적 연대를 중국이 돌파하기 어렵다. 치명적이고 단단한 방어망이다. 동아시아의 '킬 웹(Kill Web)'이라 할 수 있다.
'킬 웹'은 현대 전장에 등장한 복합적이고 다차원적인 방어 체계를 의미한다. 과거 단선적인 '킬 체인(Kill Chain)'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킬 웹은 여러 동맹국과 파트너가 여러 곳에 거점을 두고, 상호 보완적으로 얽혀 있는 살아 움직이는 그물망이다. 커다라면서도 기민한 그물망은 적의 군사적 도발 의지를 꺾는다. 전쟁하고자 하는 의지를 꺾는 힘이자, 결국 인도·태평양 지역이 누군가의 독점 없이, 자유롭고 개방된 상황을 유지하는 힘이다.
요컨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있어 한국은 전략적 의미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크다. 한국은 방어적 목적의 동맹국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브런슨 사령관은 미국의 패권 유지와 군사적 억제력을 완성하는 중심, 대체 불가능한 중추가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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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8월 27일 경기도 여주시 연양동 남한강에서 열린 한미연합 제병협동 도하훈련에서 주한미군 스트라이커 장갑차와 한국군 K200 장갑차가 부교 도하를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이러한 영구적인 육상 거점과 강력한 지상군의 존재는 해군과 공군 중심의 태평양 안보를 생각하면 특이한 점이고, 실질적 힘을 지닌다. 이 지상군 때문에 태평양 너머 본국이 있는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에 눈에 보이고 현실적인 억제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아울러 한국은 미군의 지속적인 발전, 실험을 함께하는 동맹이다. 현대전은 인공지능(AI)과 드론 등 기술이 중요하다. 미군이 그 기조를 무시할 리 없다. 적극적인 현대화 흐름 속에서 한국의 기술력은 동맹에 도움이 된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한국 내에 드론 생산 파운드리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양국이 연합하여 무인 전투 기계를 대량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전자기펄스(EMP) 등 적의 전파 교란이나 통신망 파괴로 인해 기존 아날로그 통신이 마비되는 상황에 해결책을 궁리했고, 현재 만들고 있다. 미국은 삼성과 협력하여 독자적이고 강력한 클라우드 통신 인프라를 건설하고 있다.
주한미군이라고 해서 미군이 모든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은 미국의 좋은 파트너이자, 혁신적 무기체계와 정보통신망을 미군과 함께 만들 수 있는 동료다. 첨단 기술을 제외하고도 한국은 전체적으로 산업 역량이 높은 편이다. 그러니 장비가 많은 미군에게 한국은 전력을 회복할 수 있는 든든한 '군수 지원처'이기도 하다.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태평양 전역에서 전투가 벌어질 때를 가정해 보자. 만약 태평양 전투에서 무기나 장비가 망가진다면 이를 복구해야 한다. 이때 어디에서 하냐에 따라 시간이 많이 차이 난다. 이를 미국 본토로 가져가 수리한다면, 최대 180일 동안 전력이 비어 버린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도 한국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금도 육해공 전 영역의 군사 장비를 현지에서 즉각적으로 유지, 보수, 정비(MRO)하는 체계의 구축을 도모하고 있다.
미국과 미군에 한국이 얼마나 중요한지 조목조목 설명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미국의 방위 전략의 중심이자 '닻'이기 때문이다. 이 닻의 개념은 브런슨 사령관이 한 말이다. 브런슨의 '단검론'이 우발적으로 생각나는 대로 말한 립 서비스에 불과할까? 아니다. 그가 말한 개념들은 2025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과 2026년 국가국방전략(NDS)이 지향하는 거시적 패러다임의 일부다. 그 패러다임을 인도·태평양이라는 실제 전장에서 구현했을 뿐이다. 각 문서는 네 가지를 강조한다.
▲ 제1도련선(중국이 스스로 설정한 해상 방어망)에 맞서 요새화된 포위망 ▲ 킬 웹을 통한 동맹 자산의 전술적 융합 ▲ 방위 책임의 주도적 전가 ▲ 방산 역량의 역내 통합. 이 네 개의 톱니바퀴가 잘 맞물릴 때, 미국은 대중국 억제와 '힘을 통한 평화'를 완성할 수 있다 믿고 있다.
'단검론', 한국이 불편한 이유
아무리 친한 동맹이고, 같이 하는 일이 많다고 해도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브런슨 사령관이 칭찬을 많이 한 건 사실이지만, '단검' 발언뿐 아니라 인터뷰의 전체 내용은 한국인으로서 불편할 수 있다. 국군의 역할이 좌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한국은 주한미군과 한미 동맹의 작전 범위를 '북한 위협 억제'로 한정했다. 그러나 미국 전략에 따르면, 향후 대만 해협 등 한반도 역외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했을 때 주한미군과 한국의 자산이 대중국전에 동원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렇게 끌려 들어가는 건 막아야 한다.
미국은 중국을 자국 패권과 규칙 기반 국제 질서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는 최대의 경쟁국으로 규정한다. 그러나 한국은 중국을 대놓고 적대하기는 힘들다. 중국 시장에서 철수하면 우리가 얻는 손해는 막대하다.
중국은 가까운 국가다. 중요한 경제 파트너이자 한반도의 평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국가다. 이러한 상황에서 브런슨 사령관의 구상이 현실이 되면, 한국으로서는 곤란할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 간 신뢰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려는 한국의 고도화된 외교적 줄타기, '헤징(위험 회피)' 전략이 무너질 것이다.
그러니 중국의 핵심 이익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미국과 협력해야 한다. 한국이 두드러지게 나서면 중국이 한국이 치명적인 '단검' 역할을 하지 못하게 먼저 나설 수도 있다. 경제적, 외교적, 군사적 압박을 가한다면 우리가 피해를 봐야 한다. 중국의 향후 행보를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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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년 11월 17월 주한미군사령부는 미 국방부 산하 국가지리정보국(NGA)과 주한미군 정보참모부(J2)가 합작하여 제작한 '뒤집힌 동북아시아 지도'를 공식 홈페이지에 올렸다. |
| ⓒ 주한미군 |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메이지 정부 주역들도 이전부터 대륙 진출을 위해 한반도 정복을 꿈꿔왔다. '일본을 위협할 수 있는 한반도를 먼저 쳐서 일본의 것으로 삼자'는 논리로 한반도 지배를 합리화하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을 일으켜 결국 한반도를 삼켰다.
물론 구한말 조선의 상황과 지금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다르다. 과거에는 국력이 극히 미약해 군사적 방어 능력도 전무했고, 열강들의 외교적 지원도 없었다. 지금 한국은 브런슨 사령관이 말한 대로 군사적, 산업적, 경제적으로 높은 수준의 능력을 갖추고 있고 전략적 위상이 높다. 특히 동아시아의 구도에서 그렇다.
미중 간의 전략적 패권 경쟁은 우리 마음대로 제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들의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 홀로 존재할 수도 없다. 고래 등 사이에 끼어있고, 나갈 수는 없다. 중요한 건 미국이 마음대로 휘두르는 단검이 되면 안 된다는 거다. 휘둘리는 동안 깎여나가는 건 칼날이다. 미국이 아무리 칭찬하더라도, 중국이 아무리 위협적이라도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명심할 진실이다.
미중 간의 경쟁 속, 대한민국은 '세력균형에 영향을 미치는 저울추'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선택과 행보가 다 그걸 의식해야 한다. 구한말에는 맥없이 가볍게 휘둘렸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리는 묵직하고 중요한 존재가 되었다.
때론 조용히, 때로는 거칠게 일어나는 미중 갈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휘둘리지 않는 건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우리의 생존과 이익이 걸린 만큼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위 기사의 전문은 피렌체의식탁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http://www.firenzedt.com/news/articleView.html?idxno=33025 필자 김동기는 서울대 법대, 코넬 로스쿨(석사)을 졸업하고 변호사로서 국제업무를 했다. 한국아이티벤처 미국지사장, 대우증권 사외이사로 금융 분야에도 관여했다. 국제관계를 다층적으로 바라보는 베스트셀러 <지정학의 힘>, 달러의 역사를 통해 화폐제도의 국제적 역학을 분석한<달러의 힘>을 저술해 대중에게 거시적인 통찰을 제공해 왔다. 최근작인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무엇을 원하는가>에서는 미·중·북 삼각 외교 속에서 전개되는 한반도 지정학의 새로운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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