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넘긴 기아‧르노 임단협, 장기화 수순
기아, 차량 평생할인‧일반직 성과연동 임금제 논란으로 단협 타결 무산
노조 집행부, 추석 연휴 전 타결 무산되며 강성화 불가피
기아와 르노코리아가 추석 연휴가 지나도록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서 노사 간 줄다리기 장기화가 불가피해졌다. 두 회사 모두 1차 잠정합의안이 부결된 채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어서면서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신임을 얻기 위해 ‘시간’보다는 ‘결과물’에 초점을 맞추고 강경한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르노코리아는 지난 13일부터 노조의 전면 파업으로 가동을 멈춘 이후 추석 연휴 및 단협상 휴일인 이날까지 생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르노코리아 노사는 지난 3일 기본급 7만3000원 인상과 그랑 콜레오스 신차 출시에 따른 격려금 300만원 지급 등을 담은 잠정 합의안을 마련했으나, 6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되면서 최종 타결은 무산됐다.
이후 사측은 노조에 추가 교섭을 요청했으나 노조는 응하지 않고 10일부터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12일까지 사흘간 주‧야간 각 2시간씩만 조업하는 방식의 부분파업으로 사측을 압박하던 노조는 13일부터는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사측은 전면 파업 첫날 파업 참가자들의 사업장 출입을 통제하고 근로를 신청한 임직원들을 생산라인에 재배치하는 방식의 ‘부분생산체제(부분직장폐쇄)’로 대응했으나, 정상 가동에는 한참 못 미치는 소량 생산에 그쳤다.
이런 상황은 정상 근무일인 20일 이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노사는 아직 교섭 재개와 관련된 일정을 잡지 못한 상태라 노조의 파업과 사측의 부분직장폐쇄는 한동안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완성차 업체 중 임단협을 마무리하지 못한 또 다른 사업장인 기아도 추석 연휴 이후 노사 갈등이 불가피해 보인다.
기아 노사는 지난 10일 기본급 월 11만2000원 인상(호봉승급 포함), 일시금(성과금‧격려금 등) 500%+1800만원, 무상주 57주 지급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잠정합의안을 마련했으나 12일 조합원 찬반투표에서 부결됐다.
임금협상 합의안(임협)은 투표 참여자의 53.7% 찬성으로 가결됐지만, 단체협약(단협) 합의안은 51.2%가 반대하면서 노사는 다시 교섭 테이블에 앉게 됐다.
단협 반대표가 유효표 절반을 1.2% 넘었을 뿐이지만, 이 숫자를 찬성으로 되돌리기 위해 사측과 노조 집행부가 걸어야 할 길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찬반투표에서 평생사원증(차량 평생할인) 복원 무산에 불만을 품은 장기근속자들과 성과 연동 임금체계 도입에 반대하는 일반직(사무‧연구직) 근로자들이 부결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조 집행부는 평생사원증 복원과 일반직 성과연동 임금체계 도입 철회를 요구할 것으로 보이지만, 둘 다 사측으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라 2차 잠정합의안 도출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 노조 집행부는 잠정합의안 부결 직후 “조합원의 뜻을 겸허히 받아 단체협약이 부결된 만큼, 철저히 분석해 부족한 부분은 채워가겠다”면서 “조합원의 엄중한 부결의 의미를 되새기며 새로운 투쟁을 준비함에 단 하나도 소홀함이 없이 총력 투쟁하겠다”고 밝혀, 향후 새 요구안을 내놓고 파업 등 강경 대응으로 관철에 나설 가능성을 암시했다.
기아와 르노코리아 모두 심리적 마지노선인 추석 연휴를 넘긴 현 상황이 교섭에 큰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추석 연휴는 노사 교섭의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는데, 지출이 많은 시기에 거액의 일시금과 기본급 인상 소급분 등 거액의 목돈을 손에 쥐길 원하는 조합원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이 시기를 넘기게 되면 어차피 조기 타결이 물 건너간 셈이라 노조가 시간에 구애받을 이유가 사라진다”고 말했다.
추석 연휴 이전에는 노조 집행부가 사측과 잠정합의안을 마련해놓고 ‘추석 전 타결’을 명분으로 조합원들을 설득할 여지가 있었지만, 이제 그 명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기아와 르노코리아 노조 집행부 모두 1차 잠정합의안 부결로 조합원들의 신임을 잃었다는 점에서 더욱 강경한 모습으로 교섭에 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합원들이 납득할 만한 새로운 합의안을 마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사측을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교섭이 장기화되고 파업 등으로 생산 차질이 이어질 경우 두 회사 모두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 기아는 쏘렌토‧스포티지‧카니발 등 RV(레저용 차량) 하이브리드 모델들이 큰 인기를 끌면서 대기 수요가 수개월씩 쌓여 있는 상태다. 신차로 내놓은 소형 전기차 EV3의 초반 기세도 이어가야 한다.
르노코리아의 경우 4년 만에 내놓은 신차이자, 오로라 프로젝트의 첫 모델인 그랑 콜레오스의 인도가 본격화되는 시점에 파업이라는 악재를 맞게 됐다.
그랑 콜레오스는 지난달 공개 이후 호평이 잇따르면서 사전계약을 포함한 누적 계약대수가 1만7000대에 달했으며, 이달부터 차량 인도가 본격화될 예정이었다. 회사측은 초반 신차효과 극대화를 위해 이달에만 4000여대를 출고할 방침이었으나, 노조 파업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르노코리아 관계자는 “그랑 콜레오스를 선택해 준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조 파업기간 부분생산체제를 운영하고, 추석 연휴에도 일부 인원이 출근해 그랑 콜레오스의 원활한 고객 인도를 위한 후속 작업을 진행했다”면서 “임단협을 조속히 마무리하고 모든 임직원이 신차 생산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조와의 협상 테이블을 계속 열어둘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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