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오르면 내 용돈은?"…경제교육, 어디까지 왔나[필수! 금융교육]⑤
IMF·카드사태 거치며 교육의 중요성↑
금융 과목은 내년에야 학교에 첫 도입
경제·금융교육 확대는 반복되는 화두다. 1990년대 이후 1997년 외환위기, 2003년 신용카드 발급 남발에 따른 카드사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경제·금융교육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2019년 파생결합상품(DLF)·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와 지난해 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HSCEI) 주가연계증권(ELS) 사태 등을 겪으며 경제·금융교육이 더욱 확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경제교육은 그동안 사회 교과목에 어느 정도 반영돼 있었지만 금융교육은 2010년 즈음에야 교과목에서 첫선을 보였다. 내년부터는 금융교육이 더 강화된다.
경제위기, 돈에 대한 관념 바꿔…“여러분, 부자 되세요”
국가 경제를 큰 어려움에 빠뜨렸던 1997년 외환위기와 수백만 명을 신용불량의 늪에 빠뜨린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경제·금융교육의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외환위기 때 많은 사람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국가 부도 사태가 났는지를 궁금해했다. 경제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고, 신문사와 방송사도 경제 관련 지면과 방송시간을 늘렸다. 경제신문사는 발행부수를 대폭 늘렸으며 지면도 종합일간지와 비슷한 40면 발행체제로 갔다.
특히 배우 김정은이 “여러분, 부자 되세요”라고 외쳤던 2001년 BC카드 광고는 ‘돈’에 대한 관념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에 ‘돈’에 대한 관념은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하지만 고상하지는 않다.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아니다. 돈보다 사회적 지위, 명예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그로 인한 대규모 실업사태 등으로 돈과 재테크의 중요성이 국민들에게 강하게 각인됐다.
카드대란 때는 신용카드 남발에 따라 2003년 신용불량자가 372만명에 달했고, 10대 청소년 상당수도 신용불량자로 전락했다. 그해 4월 국내 최초 민간 주도형 교육 협의체 ‘청소년금융교육협의회’가 출범한 이유다.
고승범 청교협회장은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을 준 카드대란을 계기로 많은 사람이 고민했고 그 원인을 어렸을 때부터 금융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지목했다”며 “그때는 ‘돈’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조차 금기시되던 시대였고, 금융교육을 위해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신용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청소년을 대상으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금융교육이 중요하다는 공감대가 사회 각계각층에서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내년에야 교육과정에 금융 과목이 처음으로 도입
이후 2009년 개정 교육과정에선 우리나라 교육과정 사상 처음으로 금융 수업이 등장했다. 경제 과목의 가장 마지막 단원으로 ‘경제생활과 금융’이 추가된 것이다. 다만 고등학교 1학년 과목 중 ‘사회’와 ‘생활경제’ 과목이 폐지됐다가 되살아나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내년부터는 2022년 개정 교육과정 도입에 따라 고등학교 경제·금융 과목이 총 3개로 세분화된다. 기존 ‘경제’ 과목은 사회과 진로선택 과목으로 분류되고, 사회과 융합선택 과목으로 ‘금융과 경제생활’이 신설된다. 금융 과목이 국내 교육과정에 도입되는 첫 사례다. 교양 과목으로는 ‘인간과 경제활동’을 추가 개설한다. 금융과 경제생활 과목에선 예산을 세우고 저축을 하며 신용과 위험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배운다. 인간과 경제활동 과목은 합리적 의사결정, 기업가정신, 지속 가능한 발전 등 수업내용을 통해 학생들의 경제적 흥미를 높이고 실생활과 연계해 경험해 볼 수 있는 학습 방법을 제시한다.
경제·금융 전문가 “학교교육, 과거보다 활발”
그렇다면 우리나라 경제·금융교육은 어느 정도 수준일까? 지난 7월23~25일 서울 동대문구 글로벌협력단지에서 열린 ‘2024년 경제교육 콘퍼런스’에서 관련 전문가들은 “경제·금융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 이번 콘퍼런스에는 김윤상 기획재정부 2차관, 박재완 경제교육협회장, 조동철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경제·사회 분야 교사 100여명 등이 참석해 지난 40년간의 경제·금융교육을 돌아봤다.
콘퍼런스 첫날 ‘경제교육, 지난 40년사 진단’을 주제로 발표한 김재근 대구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교육과정 내) 경제·금융 관련 과목이 3개나 된다. 고교학점제를 본격 시작하면 학생의 선택권이 늘어나고 수업의 다양성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과거 경제·금융교육은 정부 정책 이해에 초점이 맞춰졌지만, 경제·금융교육에 대한 수요가 생기며 금융사 등이 (교육주체로) 등장해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회장도 이날 축사에서 “초기 경제·금융교육은 정부가 주도했고 그 대상도 주로 공직자였다”면서 “최근 민간이 교육에 대거 참여하며 교육주체와 대상이 모두 다변화했고, 콘텐츠도 양적은 물론 질적으로도 개선됐다”고 전했다.
“갈 길 멀다”…교사 관심 저조·비수도권 공백
하지만 아직은 만족하기 이르다는 분석도 이어졌다. 경제·금융에 대한 일선 교사들의 낮은 관심도가 걸림돌이라는 지적이다. 콘퍼런스 패널토론에 참여한 박찬정 고림중 사회교과 교사는 “경제·금융에 관심을 가지는 교사가 희귀하다는 것이 현장의 어려움”이라며 “연수나 인센티브 등이 적극적으로 지원된다면 (선생님들이) 같이 고민하고 재밌는 수업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현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박형준 서울대 사회교육과 교수도 “새 교육과정 적용으로 내년부터 금융 과목을 별도로 가르치지만 교사가 대학에서 금융을 제대로 배운 적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며 “교사는 공무원연금이나 사학연금을 받기 때문에 투자에 큰 관심이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경협이 지난 8월 공개한 ‘기업가정신 및 경제교육 교원 인식’ 조사를 보면 교사 10명 중 6명꼴로 본인의 경제 지식수준을 낮게 평가했다. 본인에게 기업가정신이 적다고 생각하는 비중도 60.4%로 경제 지식수준이 낮다고 생각하는 비중과 비슷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한경협이 한국교육정책연구소에 의뢰해 전국 초·중·고등학교 교사 128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다.
학교 수업이 이론 위주로 이뤄져 학생들의 흥미를 돋우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콘퍼런스 마지막날 ‘한국 경제교육의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발표한 김경모 경상국립대 사범대학장은 “실제 수업 모습을 보면 개념과 원리 중심이다. 아직까지 일방적인 강의 비중이 높다”며 “경제·금융교육으로 소위 작은 경제학자를 양성하려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경제적 문제해결 역량을 키우고자 한다면 프로그램기반학습(PBL) 등을 적극 도입해 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PBL이란 학생들이 개별·협동학습을 토대로 해결안을 마련하는 학습자 중심의 교수학습 방법을 말한다.
김 학장은 이어 “PBL을 잘 활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수업) 주제가 기업가정신”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특정 성공한 기업 총수의 일대기를 보자는 것은 아니다”며 “일반적인 기업가가 당면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 모의토론 등으로 경험할 기회를 수업에서 제공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업가정신 교육에선 학생의 주체성이 중요하다. 학생 주도형 수업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청소년뿐 아니라 전 국민의 경제·금융교육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1월 발주한 연구용역인 ‘경제교육, 지난 40년 진단 및 향후대응’ 보고서는 “경제교육은 지난 40여년간 외연적 성장을 달성했지만 경제적 약자나 금융소비자 피해 등은 늘어만 가고 있다”며 한계점을 밝혔다.
이에 지역경제교육센터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센터는 직장인, 은퇴자, 장애인, 다문화가정, 북한이탈주민 등 다양한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경제교육을 실시하는 배움터로, 기재부는 전국 각 시도에서 총 16곳의 센터를 운영한다. 김태환 춘천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는 “만들어진 지 20년이 지난 지역경제교육센터를 내실화하기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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