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예산안④] 60년 만에 준예산 사태 가능성에 정부도 ‘긴장’

장정욱 2022. 11. 2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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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정치적 갈등에 예산 처리 ‘막막’
점점 커지는 사상 초유 ‘준예산’ 우려
“만약 모를 가능성, 대비는 할 필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00회 국회(정기회) 제10차 본회의에서 2023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국회가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자칫 사상 최초로 준예산 상황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준예산이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이어지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하면서도 만약의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준예산은 국회가 올해 12월 31일까지 내년도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할 때 정부가 전(前) 회계연도 예산을 기본으로 이듬해에 쓸 국가 재정을 집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국회가 예산안을 확정할 때까지만 사용하는 임시예산으로 보면 된다.


준예산은 올해 예산을 기준으로 내년 예산을 집행하다 보니 지출이 한정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 등 법률에 따라 설치한 기관의 시설 유지비와 운영비 등 당장 필요한 예산만 집행한다. 신규 사업 경우 전년도 예산에서 지출한 내용이 없어 사업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준예산은 헌법규정 외에 준예산 집행에 대한 구체적인 법 규정이 없다. 이 때문에 준예산을 편성하더라도 정상적인 국가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


전문가들은 준예산 상황이 불러올 가장 큰 문제로 민생경제와 서민 지원에 직접적인 타격을 꼽는다. 일차적으로 각종 서민 지원 사업이 끊긴다.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정부 직접고용이 중단되면서 수십만 명에 달하는 대량 실업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사실상 국가 재정기능이 마비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1963년 6대 국회에서 회계연도를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정한 이후 지금까지 정부가 준예산을 편성한 적 없다. 국회가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20번의 예산안을 심의하면서 단 두 차례만 법정 시한 내 예산안을 처리했는데 나머지 18번 모두 준예산 편성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국회가 예산안 처리 기한을 상습적으로 어기다 보니 늘 준예산 편성 우려가 제기돼 왔다. 특히 2012년과 2013년에는 그해 예산안을 처리하지 못해 이듬해인 2013년과 2014년 1월 1일에 각각 통과시키면서 준예산 사태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현재 여야 대립이 상황이 극한으로 치닫다 보니 준예산 우려가 어느 때보다 크다. 진보 정권에서 보수 정권으로 권력을 교체한 후 첫 번째 예산안이다 보니 정책적 견해차를 쉽게 좁히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야당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높이면서 정치적 갈등도 점점 깊어진다.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2023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대한 대통령 시정연설이 진행됐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떠나자 야당 의원들이 피켓을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만약 내달 2일까지 국회가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을 처리하지 않으면 국회법에 따라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 경우 여소야대 정국에서 부결 가능성이 크다. 본회의에서 부결되면 정부는 ‘일사부재의(의회에서 한 번 부결된 안건은 같은 회기 내에 다시 제출할 수 없다)’ 원칙에 따라 예산안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


내년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가 새로 예산을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다. 특히 정부가 새로 마련한 예산안을 국회가 심의할 시간이 사실상 없다. 준예산 편성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정부는 예산 정국이 준예산 편성까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단 한 차례도 전례가 없었고, 준예산 상황이 국가 전반에 미칠 타격을 고려한다면 국회에서 어떤 형태로든 합의에 이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준예산 사태가 빚어지면 사실상 공무원 인건비 등 최소 경비만으로 정부를 꾸려야 하기 때문에 국가사업 전반에 큰 파장이 불가피하다”며 “국회도 이런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그동안 준예산 편성 사태는 막아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가 지금의 갈등 상황을 계속 끌어서 준예산 상황을 실제로 만든다면 정말 큰 국민적 비난에 직면할 게 뻔한데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정부와 여당, 야당이 모두 만족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예산안은 회계연도를 넘기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반면 만약의 상황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60년 동안 한 차례도 없었다는 게 준예산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며 “솔직히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높지 않은 마당에 야당에서 예산을 쉽게 양보하겠나”고 말했다.


그는 “나 또한 준예산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누구도 확신할 수는 없으니 예산 당국에서는 혹시 모를 상황을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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