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렉터의 모델이 된 연쇄살인마,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진실
[이준목 기자]
테드 번디는 1970년대 미국 전역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최악의 연쇄살인마로 꼽힌다. 그는 평생에 걸쳐 무려 100여 명 이상의 사람을 살해한 사이코스패스로 추정되며, 그의 행적은 훗날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연쇄살인마 캐릭터 '한니발 렉터'의 모티브가 됐다.
23일 방송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에서는 '영화 <양들의 침묵>의 모티브가 된 연쇄살인마, 테드 번디' 편을 조명했다.
1974년 워싱턴주 시애틀의 대학가 인근에서 젊은 여대생들이 잇달아 의문의 연쇄 실종을 당하는 사건이 속출한다. 피해자들은 자신의 집에서 습격을 당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장에는 의문의 혈흔들이 남았다. 하지만 당시 과학수사 기술이나 CCTV가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적 한계로 미국 경찰은 실종자를 찾지도 용의자를 특정하지도 못하여 수사에 난항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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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은세계사 테드번디 |
| ⓒ TVN |
심지어 범인은 대낮에 사람들이 운집한 곳에서도 대담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워싱턴주의 사마미시 호수에서는 주말 피크닉을 즐기기 위하여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범인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만 불과 3시간 사이에 재니스 오트와 데니스 내스런드라는 두 명의 여성을 납치하여 잇달아 살해했다.
경찰은 탐문수사 결과, 당시 '테드'라는 이름을 지닌 남성이 팔에 깁스를 하고 뛰어난 말솜씨로 여성들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청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경찰은 워싱턴 전역에 수배령을 내린 끝에, 그해 8월 9일 엘리자베스 클로퍼라는 여성으로부터 결정적인 제보를 받게 된다.
범인의 정체는 '테드 번디', 놀랍게도 그는 범행 과정에서 자신의 실명을 사용했다. 제보자인 엘리자베스는 바로 번디의 애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여성들의 연쇄실종사건이 벌어진 날짜와 시간마다 번디가 자신과 함께 있지 않았다는 사실과 수상한 도구들을 발견하고 그가 범인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경찰은 번디를 초기에 체포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당시만 해도 번디는 그 어떤 전과기록도 없었고 워싱턴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엘리트였다. 정치캠프와 범죄예방자문위원회에서 근무한 경력까지 갖춘 전도유망한 청년이기도 했다. 강력범죄 전과자 위주로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은 번디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지 않았고 이는 두고두고 치명적 실책이 된다.
위기의식을 느낀 번디는 수사망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워싱턴주에서 멀리 떨어진 유타주로 활동무대를 옮겼다.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는 연방 각 주 간에 수사 연계나 정보 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만에 유타주에서 또 다른 여성 연쇄 실종 사건들이 속출한다.
1974년 10월 18일, 유타주 솔트레이크시티에서는 멜리사 스미스라는 17세 여대생이 실종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하필 멜리사는 현지 경찰서장의 딸이었기에 사건의 파장은 더 커졌다. 유타주 전체의 경찰력은 물론이고, FBI(미 연방 수사국)까지 개입하며 대대적인 수사에 돌입했다. 하지만 실종 9일 만인 10월 27일, 멜리사는 끝내 시신으로 발견된다.
생존자의 등장
11월 8일, 테드 번디의 얼굴을 정확히 아는 최초의 목격자이자 생존자가 등장한다. 번디는 이번에는 경찰로 위장하고 캐롤 다론치라는 여성을 차로 유인하여 납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캐롤은 완강하게 저항하여 조수석 문을 열고 극적으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캐롤은 곧바로 경찰서를 찾아가 자신이 겪은 상황과 범인의 모습을 증언했다.
그러자 번디는 이번엔 콜로라도주로 다시 이동하면서도 범죄행각을 멈추지 않았다. 원래 사이코패스 성향이 강했던 번디는 범죄를 거듭하면서 점점 강해지는 살인충동을 스스로도 억제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번디는 콜로라도에서도 다수의 여성들을 납치하며 잔혹하게 살해했다. 피해자 중 간호사 캐린 캠벨의 시신만 잔혹하게 훼손된 채로 발견되었으나, 또다른 희생자인 줄리 커닝햄과 데니스 올리버슨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번디에게 살해된 것으로만 추정될뿐 시신의 행방은 묘연하다.
1975년 8월 16일 새벽, 지극히 우연한 사건으로 테드 번디는 경찰에 덜미를 잡힌다. 번디는 유타주 일대 고속도로에서 야간에 전조등을 끈 채 주행하다가 수상하게 여긴 교통경찰에게 적발됐다. 경찰은 번디의 차량 내부 조수석이 뜯어져 있고 수상한 물건들이 실려있는데 의심을 품었다. 이러한 번디의 차량 내부 모습은 생존자인 캐롤 다론치가 증언한 내용과 일치했다.
경찰은 캐롤의 증언과 확보된 증거들을 바탕으로 마침내 번디를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캐롤은 여러 용의자 중에서 번디의 인상착의를 알아보고 정확히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번디는 캐롤에 대한 납치미수 혐의만 인정되어 유타주에서 재판받고 15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FBI에 번디의 지문이 등록되면서 앞으로 번디가 어느 곳에서 범죄를 저질러도 신원조회가 가능해졌다.
범인인 번디의 체포로 미궁에 빠져있던 여성 연쇄 실종수사도 급물살을 타게 된다. 궁지에 몰린 번디는 콜로라도주 재판을 앞두고 무죄를 주장하며 본인이 직접 변호를 맡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번디의 또 다른 계략이었다.
1977년 6월 7일, 번디는 재판 준비를 하는 척하다가 법원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다. 경찰은 추격 끝에 6일 만에 번디를 다시 체포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번디는 1977년 12월 30일, 이번에는 교도소 독방 천장에 구멍을 뚫고 두 번째 탈옥에 성공한다. 당시 번디는 좁은 천장을 통과하기 위하여 체중을 무려 14kg이나 감량했다고 한다.
미국 전역을 횡단하는 장기 도주 생활 중에도 번디의 살인 폭주는 멈추지 않았다. 1978명 1월 15일, 플로리다주로 도주한 번디는 이번엔 여학생 기숙사 '치 오메가'에 잠입하여 자던 여대생들을 잇달아 공격하며 두 명을 살해하고 두 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이후에는 저향력이 더 약한 아동으로 표적을 변경하여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납치 후 성폭행 뒤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하기도 했다.
2차 탈옥 46일 만인 1978년 2월 15일, 도난차량을 타고 이동하던 테드 번디가 다시 현지 경찰에 체포된다. 도주기간에도 살인과 폭행 등 중범죄를 저지른 번디는 그해 6월 25일 플로리다주의 공개 재판에 서게 된다. 번디의 재판은 미국 전역과 해외 9개국에 생중계됐다.
번디는 법정에 정장을 입고 나타나 스스로를 변호했다. 번디는 뻔뻔한 미소를 지으며 범행을 부인했고, 자신을 '테드 번디'라는 제 3자처럼 칭하며 증인을 직접 심문하기도 했다. 전국 생중계를 통하여 번디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오히려 살인마 번디를 옹호하는 이상 팬덤까지 등장했다. 겉보기에 멀쩡한 외모에 청산유수 같은 말솜씨를 지닌 번디에게 반하여 팬레터를 보내는 여성 팬들도 적지 않았다고.
번디의 극성팬 중 한 명이던 캐럴 분은 결국 번디와 수감 중에 결혼하여 그의 아내가 됐다. 캐럴은 번디와 범죄예방자문위원회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였다. 놀랍게도 번디는 재판 생방송 중에 자신을 위하여 증언석에 선 캐럴에게 공개청혼을 했고 두 사람은 법적 부부가 됐다. 번디는 수감 중 면회 시간을 이용하여 캐럴과 관계를 가졌고 딸까지 낳았다. 전문가들은 번디가 진심으로 아내와 딸을 사랑한 게 아니라, 무죄를 받기 위한 본인의 이미지 메이킹에 이용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번디의 범행을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가 된 것은 치흔이었다. 수사팀이 번디의 치아 표본을 뜬 후 희생자들의 시신에 남은 흔적과 비교한 결과, 번디의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이로써 번디는 플로리다에서 저지른 3건의 살인사건에 진범임이 인정되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자 번디는 이번에는 또다른 꼼수를 썼다. 번디는 돌연 자신의 수많은 살인 범행을 스스로 자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범행을 선택적으로 인정하거나 번복하는 방식을 거듭하며 수사에 혼란을 줬다. 번디가 인정한 살인만 30건이 넘었지만 "피해자 숫자를 다 말하지 않겠다" "기억나지 않은 피해자도 있다"며 끊임없이 말을 바꿨고, 정확한 시신 유기 장소는 끝내 밝히지 않았다. 이는 사형 집행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한 시간 끌기였다.
1989년 1월 24일, 플로리다주에서 마침내 세기의 살인마였던 테드 번디의 사형이 집행됐다. 교도소 앞에서는 피해자의 유가족, 시민 등 2000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하여 번디의 사형집행을 지켜봤다.
테드 번디가 남긴 영향력은 이후 미국 사회의 범죄수사 시스템을 혁신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탈옥을 막기 위한 교도소 보안 강화, 강력범죄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구축은 이후 다시 전 세계 범죄 수사기관에 전파되어 강력범죄 대처 능력이 향상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수사팀은 실제로 테드 번디가 살해한 여성이 약 100여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확한 숫자와 신원, 시신의 위치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번디는 이제 형장의 먼지로 사라졌지만,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를 강력범죄를 근절해야 하는 책임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몫으로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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