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니+싸울아비+허수아비+전략='고수아비'

조회 32025. 1. 24. 수정

'샤이닝 고라니', 타이베이 게임쇼 2025 인디 게임 하우스에 들어선 한국인이라면 아마 바로 눈에 띌 이름일 거다. 실제로 현장 방문 전, 인디 게임 하우스 부스를 살펴보던 중에 바로 "내가 생각하는 그 고라니 맞겠지?"하고 반신반의해서 가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부스에 가자마자 각종 병맛 스타일의 고라니들을 보면서 군복무 시절의 추억(?)이 소록소록 돋는다.

팀 이름만큼이나 그들의 게임 이름도 특이했다. '고수아비', 이름만 들어서는 어떤 게임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허수아비에 고수를 붙인 건가, 그렇다면 허수아비로 무슨 게임을 할까 등등. 개성적인 팀 이름까지 더해지니 더욱 혼파망 그 자체다.

처음 시작할 때 타이틀 화면도 심상치 않다. 고라니와 허수아비. 무슨 조합인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렇게 됐다. 깊이 생각하면 지는 거다. 보통 게임이면 시작하자마자 고이다 못해 썩어서 해골만 남은 썩은물과 매칭을 시켜주진 않으니 말이다.

카드 이름도 처음엔 싸울아비, 허수아비 등 무난하지만 짝수아비에 양가죽 입은 양수아비, 소머리를 한 소수아비 그리고 갑자기 군복을 입고 튀어나오는 정찰병 고라니까지.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 소재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거기다가 튜토리얼에서 결국 패하게 되는 썩은물은 고라니가 당근죽으로 만들었다는 뭔가 뇌절을 넘어선 전개까지, 시연하다가 헛웃음이 나오기는 오랜만이었다.

▲ 아니 이 해골물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뭐 좀 알려주고 해야지
▲ 그런 비열한 고인물은 고라니가 당근죽으로 만들어버렸으니 안심하라구
물론 그것이 '고수아비'의 전부는 아니었다. 단순히 그렇게 개그성 밈만 남발하는 게임이었다면 한 번 웃고 말지, 이렇게 길게 풀어쓸 필요는 없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뇌를 자극하는 말초적인 이름들과 밈적인 그림 뒤에는, 치밀한 수 싸움이 숨어있는 것이 '고수아비'였다.

'고수아비'의 핵심은 예상 외로 고라니가 아닌 싸울아비 그리고 허수아비다. 싸울아비 카드 10장과 각종 허수아비 카드 8장을 들고서 한 턴에 세 장씩 총 9턴 동안 네 개 구역에 카드를 잘 배치해서 더 높은 점수를 따내면 이기는 게임이기 때문이다.

▲ 이제야 좀 본격적인 싸움이 되겠....카드 이름에 신경 쓰면 지는 거다
▲ ......
▲ 야잇 효과는 굉장히 정석적인데 뭔가 심상치 않은 걸
점수 계산은 각 구역별로 싸울아비의 수를 비교, 싸울아비 카드가 많은 쪽이 그 구역의 중앙의 점수를 가져가는 식이다. 구역 싸움에서 진 쪽도 각 허수아비 카드의 발동 조건을 맞췄으면 그에 맞는 추가 점수는 획득할 수 있다. 또한 턴이 다 끝난 최종 국면 혹은 적이 정찰병 카드를 쓰기 전까지는 무슨 카드를 냈는지 알 방법이 없다. 정찰병 카드를 써도 적 병사 카드가 0인지 홀수인지 짝수인지 정도만 알 수 있지, 카드 구성까지는 세세하게 파악하진 못했다.

즉 싸울아비 카드의 수가 승리 조건인 만큼, 나머지 허수아비 카드는 이를 전략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트릭카드였다. 즉 상대가 어떤 허수아비 카드를 낼 건지 카운팅을 하고 이를 역이용해서 점수 차를 최소한으로 좁히고 내주거나, 상대의 상대 카드를 카운팅해서 크게 한 곳에서 점수를 먹는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치열한 수싸움을 하기 위해서는 아귀가 딱딱 맞는 허수아비 카드 구성이 중요한데, '고수아비'는 그 부분에서 치밀한 설계를 보여줬다. 이름이 좀 웃기긴 하지만, 그만큼 그 효과가 머리에 남는 효과도 있었다. 짝수아비하면 딱 봐도 뭐가 짝수여야만 점수를 획득할 수 있고, 홀수아비는 그 반대니 말이다. 이외에도 상대보다 병사 카드가 더 많으면 1점을 얻는 다수아비, 오히려 상대보다 적어야 1점을 얻는 하수아비, 아군과 적군 병사 카드 합이 3 이하여야 점수를 1 얻는 실수아비 등 허수아비 카드의 종류도 다양했다.

▲ 6점 구역을 오히려 내주고 4점, 5점 구역에서 허수아비 카드로 점수를 부풀려서 승리
▲ ...문득 중국어나 영어 번역은 어떻게 되어있을까 제대로 보고 오지 않은 게 후회되는 걸
카드 게임에서 사용하는 카드가 많다는 말은 곧 알아야 하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고수아비'는 설명을 처음 들을 때 굉장히 까다로운 느낌이 들었다. TCG나 보드 게임을 좀 해봤다면 카운팅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어떤 카드가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수아비'는 또다른 한 수, 즉 '고라니'로 대변되는 용병을 투입했다.

각 플레이어는 처음 시작할 때 7개의 금화와 두 명의 용병 카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각 턴에 한 번만 금화를 소모해서 용병을 활용할 수 있다. 금화가 보충이 안 되는 만큼, 전략적인 순간에 용병을 활용해서 전황을 파악하는 것이 승리를 위한 초석인 셈이었다. 혹은 금화를 추가로 투입해서 랜덤하게 등장하는 세 명의 용병 중 하나를 고용, 반전을 노리는 수도 있었다.

용병도 카드를 보는 것뿐만 아니라 중앙의 점수를 높여서 승리시 추가 보상을 얻게 하는 기우제 제사장, 적 병사 수가 5명 있으면 하나를 제거할 수 있는 선동가 등 점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종류도 있었다. 일부 조건이 발동하지 않아서 금화를 버린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역으로 그 조건이 안 맞은 걸로 상대의 수를 읽는 묘미가 '고수아비'의 또다른 묘미인 셈이다.

▲ 선동가가 실패 = 병사 카드 5장 미만이라는 뜻이니 이를 고려해서 카드를 배치하게 된다
이러한 유형의 게임을 접해본 유저라면 이렇게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잘 짜인 규칙 위에서 벌어지는 수 싸움의 재미를 충분히 알 것이다. 그렇지만 룰을 이해하기 전까지는 너무 딱딱하고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고수아비'는 꽤나 고무적이다. 척 봤을 때 규칙이 복잡해보였지만 병맛 센스인 제목과 카드 설명만 보고 현장에 직접 와서 그 매력에 푹 빠질 계기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말장난 같이 만든 이름들도 설명을 읽다 보면 나름의 논리를 갖췄기 때문에 효과를 외우기도 쉽다. 물론 우리나라 밈에 맞춘 만큼, 외국어로 번역하기 엄청 까다로웠다는 개발자의 고백이 이해가 간다. 외국인들에게는 고라니가 왜 나오는지부터 이해시키기가 어렵지 않을까.

다만 아직 미완성인 상황에서도 카드 수와 종류를 카운팅하며 차근차근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머리싸움의 맛은 충분히 먹힐 만했다. 어느 정도 말이 되는 수준의 넌센스(?)라면 아마 이런 머리싸움을 좋아하는 해외 유저들도 웃으며 가볍게 한 판할 수 있는 게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고수아비'는 올해 3월 28일 출시 예정이며, 자세한 정보는 스팀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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