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경 속 하얀 새의 정체... 탐조인들이 말을 잇지 못한 이유

이경호 2026. 3. 1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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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 1급 황새 부부, 4년 연속 자연 번식 성공.... 생태계 회복의 신호, 이제 사람이 응답할 차례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서산 인공둥지에 번식중인 황새의 모습
ⓒ 이경호
충남 서산 천수만의 둥지탑 위에서 몸을 낮춘 채 알을 품고 있는 커다란 흰 새가 망원경에 들어왔다. 지난 13일 이곳을 찾은 대전환경운동연합 탐조 모임 '새나래'와 세종탐조클럽 회원들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둥지 위의 주인공은 한때 한반도에서 사라졌던 새, 황새였다.

황새는 원래 우리나라 논과 습지에서 번식하던 대표적인 텃새였다. 그러나 농약 사용과 서식지 훼손이 이어지면서 개체 수는 빠르게 줄었고, 결국 야생에서 자취를 감췄다. 마지막까지 번식지를 지키던 개체는 사람들에게 '과부황새'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한 마리였다.

이 황새는 1983년 창경원 동물원으로 옮겨졌고, 이후 야생 번식은 완전히 끊겼다. 과부황새는 1994년 동물원에서 죽었고, 그때 사실상 우리나라 텃새 황새의 역사는 막을 내렸다.

40년 만의 귀환, 황새 복원 사업

황새는 현재 국내에서 천연기념물 제199호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으로 지정된 종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개체 수가 약 3000마리 내외에 불과한 희귀한 새로,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역시 멸종위기종 목록에 올려 보호하고 있다.

사라진 황새를 되돌리기 위한 복원 작업은 1990년대 중반부터 시작됐다. 시베리아 지역의 황새를 들여와 번식시키는 인공 증식 사업이 이어졌고, 2015년 6월에는 충남 예산에 예산황새공원이 문을 열었다.

같은 해 9월에는 처음으로 자연 방사가 이루어졌다. 마지막 야생 번식이 사라진 뒤 4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길이 열린 것이다.

이후 방사된 황새 가운데 일부는 야생에서 짝을 찾고 번식을 시작했다. 2023년부터 천수만에서는 황새 부부의 번식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도 1월 말 서산버드랜드가 둥지에 설치한 CCTV를 통해 이 황새 부부가 알을 품는 모습이 확인됐다.

야생 수컷과 인공 증식으로 태어난 암컷이 짝을 이룬 이 개체들은 국내에서 처음 자연 번식에 성공한 사례로 알려져 있다. 이후 같은 장소에서 번식을 이어오며 올해로 4년 연속 번식을 시도하고 있다.

황새는 약 30~50년 정도 사는 장수 조류로 알려져 있으며, 더 오래 산 기록도 있다. 앞으로도 이곳에서 수십 년 동안 번식하는 황새를 만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황새가 돌아왔다는 의미

13일 탐조에 나선 회원들이 망원경으로 확인한 장면도 바로 그 번식의 현장이었다. 둥지 위에 앉아 있던 황새는 움직임 없이 둥지를 지키고 있었다. 망원경으로는 암수를 구분하기 어려웠지만, 둥지 위의 황새는 주변을 경계하며 번식기에 특유의 긴장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황새가 돌아왔다는 사실은 단순히 한 종의 복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황새는 얕은 물과 습지에서 먹이를 찾는 대형 섭금류다. 미꾸라지와 개구리, 곤충 같은 먹이가 풍부한 건강한 습지가 있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 황새의 귀환은 그 지역 생태계가 일정 수준 회복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우리 사회에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있다. 몸집이 작은 존재가 큰 존재를 무리하게 따라가다 낭패를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조금 다르다.

한때 흔했던 황새는 사라지고, 작은 새들은 오히려 더 쉽게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는 그 말을 뒤집어야 할지도 모른다. 개체 수가 적어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황새가, 들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뱁새를 따라다닐 수 있을 만큼 다시 많아지는 날이 와야 하지 않을까.

천수만 둥지 위에서 알을 품고 있던 황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사라졌던 종이 다시 돌아오는 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황새는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 그 신호에 응답해야 할 차례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것이 일상이 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천수만 둥지 위에서 알을 품고 있던 황새는 그 사실을 조용히 말하고 있었다. 이제 그 신호에 응답해야 할 차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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