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되면 혼자 비행기 탈 수 있어요?" 휠체어 탄 제자에게 이제야 답 합니다

박혜현 2026. 4. 2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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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권리보장법 국회 통과, 특수교사가 현장에서 느끼는 벅찬 희망

[박혜현 기자]

 휠체어를 타는 제자 지훈이가 어느날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어느 날 아침, 초등학교 특수학급의 교실 풍경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휠체어를 타는 제자 지훈이(가명)의 서툰 운동화 끈을 다시 묶어주며 하루를 시작했다. 지훈이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혼자 비행기 타고 여행 갈 수 있어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의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그저 웃어주었지만, 마음 한구석은 무거웠다. 아이가 마주할 교실 밖 세상은 여전히 휠체어 앞에 놓인 가파른 계단처럼 차가웠고, 세상은 그 모든 불편함을 아이의 '장애' 탓으로 돌릴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이 아이의 물음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20여 년간의 외침과 수많은 이들의 기다림 끝에 '장애인권리보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이다. 특수학급 교실에서 매일 아이들과 부대끼고, 강연자로서 세상에 인식 개선의 메시지를 던져온 나에게 이번 소식은 단순한 법안 통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장애를 바라보던 낡은 시선을 거두고, 새로운 약속을 시작했다는 엄숙한 선언이다.

'나'의 손상이 아닌 '우리'의 장벽을 보다

이 법안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바로 '사회적 모델(Social Model)'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관점은 철저히 '의료적 모델'에 기반해 있었다. 장애를 개인의 신체적 손상, 즉 '비정상적이어서 고쳐야 할 문제'로 정의하는 시각이다. 이 안에서 장애인은 재활의 주체이자 치료의 대상일 뿐이었다.

휠체어 이용자인 내가 강연을 위해 KTX 역에 도착했을 때를 떠올려 본다. 기차를 타기 위해 마주하는 가파른 계단 앞에서, 의료적 모델은 '계단을 오르지 못하는 나의 다리'를 문제 삼는다. 내가 스스로 재활을 통해 일어서거나, 누군가의 시혜적인 도움을 받아 이 상황을 '극복'해야만 기차에 오를 수 있다. 문제는 개인의 신체에 갇히고, 해결의 책임 역시 개인의 몫이 된다.

반면 이번 법안이 지향하는 사회적 모델은 전혀 다른 답을 내놓는다. 문제는 나의 다리가 아니라 '휠체어가 올라갈 수 없는 계단' 그 자체라는 것이다. 장애는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개인이 사회적 환경과 부딪힐 때 발생하는 '장벽(Barrier)'의 결과물이다. 사회적 모델은 시선을 장애인의 신체에서 그가 살아가는 환경과 제도로 옮기게 한다. 이제 국가는 "장애를 극복하라"고 말하는 대신, "사회의 문턱을 깎겠다"고 응답해야 한다.

특수교육의 종착역은 '당당한 시민'이어야 한다
 23일 국회에서 열린 4월 임시국회 7차 본회의 모습.
ⓒ 연합뉴스
특수교사인 나는 매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숟가락을 드는 법,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는 법을 수천 번 반복하며 가르친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나갔을 때 마주할 세상이 여전히 '의료적 모델'에 머물러 있다면, 나의 교육은 반쪽짜리 희망에 불과하다. 아이들이 아무리 교실에서 당당하게 자라나도, 사회가 여전히 '계단'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의 날개는 세상 밖으로 나가자마자 꺾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법안의 통과는 훗날 성인이 된 내 제자들이 지역사회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도 중심을 잡게 해줄 든든한 방파제와 같다. 이제 아이들은 누군가의 선의를 구걸하며 "도와달라"고 고개 숙이지 않아도 된다. 대신 "나의 정당한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손에 쥐게 되었다. 교육의 최종 목적지가 장애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웃이 되는 것임을 국가가 보증해 준 셈이다.

박수 소리에 감춰진 벽을 허무는 '시민의 동행'

강연자로서 무대에 설 때마다 쏟아지는 뜨거운 박수 소리는 때로 내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 갈채의 기저에는 장애를 극복해야 할 결함이나 개인의 불행으로 규정하는 '동정의 시선'이 짙게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일방적인 박수를 멈추고 서로의 눈을 맞추는 '동등한 악수'를 나누어야 한다. 장애인이 우리 곁에서 사라진 것은 그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사회가 그들의 존재를 지워버린 채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이 명백한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시혜적 인식을 넘어선 진정한 인식 개선의 출발점이다.

물론 법안 통과가 곧바로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지는 않는다. 법전 속의 문구가 지훈이의 등굣길을 당장 평탄하게 만들어주지도 않는다. 선언적인 권리가 삶의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교한 행정과 실효성 있는 예산 배정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시설 밖으로 나온 이들이 지역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 구체적인 지원 체계가 어떻게 구현될지, 우리는 감시의 눈을 부릅떠야 한다.

2026년 4월 23일은 유토피아에 도착한 날이 아니라, 비로소 제대로 된 항해를 시작한 날이다. 이제 나는 등교하는 지훈이의 손을 잡고 어제보다 훨씬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약속할 수 있다.

"지훈아, 세상이 너를 맞이하기 위해 이제야 문턱을 깎기 시작했어. 너는 네 모습 그대로, 네 휠체어와 함께 당당히 세상이라는 비행기에 오르면 된단다."

우리가 허물어뜨린 문턱의 높이는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포용의 넓이가 될 것이다. 장애가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 길 위에서, 지훈이와 나는 비로소 같은 보폭으로 나란히 걸을 수 있다. 나는 오늘도 서울행 기차를 기다린다. 내가 마주할 무대는 이제 아슬아슬한 계단 끝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숙한 합의가 빚어낸 '차별 없는 평원'이다. 그 너른 들판 위에서 우리는 장애라는 구분 짓기를 멈추고, 각자의 속도대로 삶을 향유하는 이웃이 되어 기쁘게 조우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장애가 더 이상 개인의 극복 대상이 아닌 사회적 다양성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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