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대한 계약서·영상 삭제 권리 필요”…아이 공개에 필요한 ‘과정’ [영상 속 아이들③]

장수정 2024. 10. 14.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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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라인’ 통한 ‘체계적인 노력’ 필요성
촬영 과정은 물론 출연 ‘이후’ 위한 논의도 필요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상 15세 미만 출연자의 촬영 시간을 준수하였습니다’

일반인 아이들이 등장하는 채널A 예능프로그램 ‘요즘 육아 금쪽같은 내새끼’에서는 관찰 카메라를 통해 포착한 금쪽이의 일상을 공개할 때 해당 문구를 안내한다.

ⓒ'금쪽같은 내 새끼' 영상 캡처

대중문화예술산업 발전법은 관련 사업자, 대중문화예술인 등에 관한 사항을 정함으로써, 건전한 대중문화를 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다.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보호하기 위한 사항도 포함됐다. 촬영 시간을 비롯해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 선택권 등 어린 출연자들의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내용이 다수 담겼다.

그러나 예능프로그램에 단발성으로 출연하는 출연자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해당 내용은 어디까지나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을 위한 법인 것. 그러나 방송 관계자들은 “아동·청소년들의 출연에 대해선 특히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쓴다”고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예능이 그럴 것이다. 아이에게 뭔가를 억지로 시킨다거나,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서 “그들이 주인공인데, 최대한 배려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스태프들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카메라를 숨기는 등 최대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섬세한’ 배려도 이어진다고 말한다. 실제로 육아에 도전하는 아빠들의 이야기를 담는 장수 육아 예능 KBS2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는 스태프들이 귀여운 텐트 안에서 촬영하고, 또 소통하는 등 어린 출연자들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제작진의 ‘배려’를 넘어, 정확한 ‘가이드 라인’을 통해 아동 또는 청소년들의 권리를 보호하려는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서정은 대표는 우선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예능프로그램들에 대해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출연자가 솔루션을 통해 ‘현재’ 개선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지만,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관련 연구도 전무한 상황이다. 그때의 경험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 성장한 이후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100년, 200년의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물론, 빠듯한 제작비에 그것까지 챙길 순 없을 것”이라고 아동·청소년 출연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구멍을 최소화하기 위해선 ‘진짜 전문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아동을 등장시키는 것은 사실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그들이 ‘좋다’고 표현하더라도, 그것이 진짜 좋은지는 알 수 없다. 어른의 언어로 묻고, 또 어른의 입장에서 그들의 대답을 듣는 것이 아닌가. 대부분은 부모가 결정을 대신하는 형태일 것이다. 그런데 그림이나 표현, 몸짓 등 아이의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전문가’가 있어야 그들의 의사를 ‘정말로’ 파악할 수 있다. 기획 단계에서 아동인권 전문가의 검토가 필요하고, 이후 모든 과정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국립창원대 유아교육과 동풀잎 교수 또한 “유아기부터 미디어에 대한 노출과 참여에 대한 동의 및 의사를 존중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면서 “최근 많은 유아들의 유튜브 이용 참여가 늘면서 방송 참여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들을 이야기 하고 이에 대한 동의를 얻어야 하며, 연령에 따른 출연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방송에 참여하고 있을 때에도 어린이들이 철회를 요청하면 언제든지 참여를 하지 않는 권리 또한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당사자의 의도를 원활하게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이를 계약서에 기록, ‘과정상의 세밀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촬영에 임하는 시간부터 아이들의 출연료에 관한 문제까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한 아주 방대한 분량의 계약서가 필요하다”면서 “선진국이 왜 선진국이냐면 절차적 권리가 잘 돼 있다. 결과물로서의 권리도 중요하지만, ‘과정’이 중요하다. 절차에서의 권리가 보장이 돼야 최소한의 선들이 지켜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 출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문제라는 의견이 있었다. 동 교수는 “어린이가 방송 참여에 대한 상업적 활용에 대한 법적 보호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이슈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는 법을 통해 어린이 미디어 노출에 대한 어린이의 수익을 법적으로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고, 서 대표는 “성인 될 때까지 아이 재산으로 신탁하는 것 또한 필요한 일”이라고 제안했다.

방송 출연은 물론, 출연 ‘이후’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최근 편집 영상 등이 SNS 또는 유튜브를 통해 공유되고 있는데, 이것이 남길 여파 또한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 방송은 물론, 일반인 부모들이 ‘기록’을 위해 SNS를 통해 아이의 사진이나 영상을 남기는 것 또한 예외는 아니라고 말했다.

동 교수는 “최근 영국 등은 SNS 등을 통해 어린이 인플루언서의 수익을 부모가 관리하면서 나타나는 문제점이나 유아 스스로가 자신의 콘텐츠를 업로드하면서 생기는 아이들의 정보와 데이터, 그리고 성인이 됐을 때의 파장 등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보고서나 연구 등이 발표되고 있는데, 우리도 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크면서 영상 속 당사자는 잊고 싶을 수 있다. 소위 ‘짤’로 나의 모습이 돌아다니는 게 아무렇지 않을까. 아무리 귀엽다고 하더라도 다른 문제”라고 설명한 서 대표는 “현재 관련 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제재할 만한 장치들이 없다. 기술력도 부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딥페이크가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요즘, 무방비하게 퍼지는 영상이 ‘악용’이 될 여지 또한 완전히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독일처럼 개인정보 보호법을 통해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 또한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독일에서는 부모가 자녀의 사진이나 영상을 온라인에 게시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규제하고 있으며, 자녀가 나이가 들면서 게시물 삭제를 요구할 권리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비슷한 시도로 지난 2023년,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지우개 서비스’를 도입했다. 지우개는 지켜야 할 우리들의 개인정보를 뜻하며, 아동·청소년 시기에 작성한 게시물 중 개인정보가 포함돼있는 게시물을 삭제되도록 하거나 다른 사람이 검색하지 못하도록 도와주는 서비스다. 하지만 3자가 올린 게시물은 삭제할 수 없다는 한계를 보완하고, 관련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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