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히지 않는 늑대 '늑구'...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
[글쓴이 :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대전 오월드에서 8일 탈출한 수컷 늑대 '늑구'의 행방이 확인되지 않은 채 수색이 수일째 이어지고 있다. 소방과 경찰, 군 특공대까지 투입된 대규모 수색이 이어지고 있지만, 늑구는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앞선 보도가 탈출이라는 긴박한 상황을 전했다면(관련 기사 : 땅 파고 나온 늑대에 시민들이 남긴 말...분명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이번 사건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와 우리가 마주한 생태적 과제를 함께 살펴볼 시점이다.
늑구 탈출은 동물의 생태적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관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늑구는 울타리를 넘은 것이 아니라 사육장 바닥을 파고 탈출했다. 늑대는 본래 굴을 파고 은신처를 만드는 습성을 지닌 종이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했다면 지하 차단 구조 등 추가적인 안전 장치가 필요했다.
사육 환경은 이에 충분히 대비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시 중심으로 설계된 공간이 동물의 본능적 행동까지 반영하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동물을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관리 가능한 '전시 대상'으로 취급해 온 동물원 운영 방식의 한계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
|
| ▲ 22년 오월드 늑대의 모습 - 주변에 굴을 판 흔적이 보인다. |
| ⓒ 이경호 |
늑대의 번식 시기가 일반적으로 1월에서 3월 사이에 집중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암컷 개체를 활용한 유인 방식이 실제로 효과적인 방식이었는지도 의문이다. 번식기가 아닌 시기에는 성별에 따른 유인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해당 시도가 생태적 특성에 기반한 전략은 아니었을 것이다. 긴박한 상황에서 나온 궁여지책일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동물의 행동 특성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같은 상황은 시민들의 불안을 키웠지만, 늑대의 생태를 고려하면 과도한 공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늑대는 일반적으로 인간을 적극적으로 공격하기보다 회피하는 성향이 강하며, 주로 야간이나 이른 새벽 시간대에 활동하는 경향을 보인다. 보통 5~10마리 규모의 무리 생활을 하는 사회적 종이기 때문에,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남겨진 늑구는 지금 포악한 사냥꾼이 아니라 극도의 불안과 고립감을 느끼는 '길 잃은 이방인'에 가깝다.
넓은 영역을 이동하며 무리 생활을 하는 늑대와 같은 종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는 방식 자체가 적절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시민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다. 단순한 탈출 사고를 넘어, 전시 중심 동물원의 존재 방식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늑대와 같은 최상위 포식자는 생태계에서 개체 수를 조절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핵심 종이다. 실제로 늑대가 사라진 산야에서는 멧돼지와 고라니가 급증하며 농가 피해와 생태계 교란이 심화되고 있다. 늑구의 탈출을 보며 우리가 느껴야 할 것은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우리 생태계에서 비어있는 이 핵심 고리가 우리 곁에 잠시 돌아왔을 때 우리가 얼마나 준비되지 않았는가에 대한 자성이다.
이러한 늑대의 생태적 역할은 해외 사례에서 더욱 분명하게 확인된다.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는 1920년대 늑대가 사라진 이후 사슴 개체 수가 급증하며 식생이 훼손되고 하천 주변 생태계까지 영향을 받았다. 이후 1995년 늑대 14마리를 다시 방사하면서 변화가 나타났다. 늑대는 사슴의 개체 수와 이동을 조절했고, 그 결과 강가의 나무가 다시 자라나기 시작했다.
식생이 회복되자 비버와 조류, 어류가 돌아왔고, 나무뿌리가 토양을 붙잡으면서 강줄기의 흐름까지 안정되는 변화가 이어졌다. 이른바 '영양 단계의 연쇄 반응'으로 불리는 이 과정은, 최상위 포식자의 존재가 생태계 전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처럼 늑대는 단순한 '위험 동물'이 아니라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중요한 구성원이다. 그럼에도 탈출한 개체에 대해 곧바로 제거가 논의되는 대응 방식은 여전히 많은 과제를 남긴다. 다만 이번 사건에서는 변화의 조짐도 나타났다. 초기에는 사살 가능성이 거론됐지만, 시민들 사이에서 생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빠르게 확산되면서 현재는 사살을 제외한 대응으로 방향이 전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퓨마 뽀롱이 사건에서 탈출 4시간 만에 사살됐던 경험을 기억하는 시민들이 이번에는 다른 선택을 요구한 것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탈출 사고를 넘어 동물원 운영 방식과 야생동물에 대한 인식을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만 실제 공존을 위해서는 인명 안전과 생태 보존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아직 늑구는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전과 다른 선택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늑구가 파헤친 사육장의 구멍은 더 이상 시설의 결함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야생과 단절해온 높은 벽에 낸 '공존의 틈'이다. 늑구를 무사히 생포해 생태적 대안의 공간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은 우리 사회가 진정한 '생명 공동체'로 거듭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늑구의 탈출을 '공포의 사건'이 아닌, 잃어버린 생태계의 설계자와 화해하는 '공생의 기회'로 삼아야 할 때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올레 서명숙이 정한 비문 "쉿, 여왕님 깨실라"
- 광주·부산·대구를 서울처럼...균형 발전의 '게임체인저' 등장
- 이 대통령의 이스라엘 비판이 옳은 이유
- '나라 망신'이라는 말에 담긴 야구팬의 속마음...이거였네
- 7년 신은 3만 원짜리 운동화, 그래도 못 버리겠어요
- 서울대 의대가 뒤늦게 졸업장 준 이유, 어느 의대생의 위대한 생애
- 슈퍼주니어 보러 11년 만에 시골 농장 다시 찾은 홍콩 청년
- [오마이포토2026] 강득구, 정청래 면전서 "'4무 공천' 약속, 안호영에게도 적용돼야"
- 무공천 연대? '한동훈 변수' 불편한 국힘... 부산 북갑 요동
- 아흔이 넘은 자식은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