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인데 미생물 실험실처럼 보이는 이유

김형순 2024. 10. 8.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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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테리아 등 독창적 재료로 전세계 강타한 '아니카 이' 전, 12월 29일까지

[김형순 기자]

 아니카 이' 개인전이 열리는 리움 미술관 M2 전시장 입구에 붙은 전시 제목
ⓒ 김형순
'아니카 이(Anicka Lee)'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2살 때 미국 이민 간 디아스포라 작가다. 이번에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M2 전시장에서 12월 29일까지 개인전이 열린다. 제목은 <또 다른 진화가 있다. 그러나 이에는>이다. 2024년 신작과 구작 등 33점이 소개된다.

전시 제목은 선불교 '간화선(看話禪)'에서 온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해 작가는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색을 위한 도구로 천천히 음미하는 것, 단번에 완전히 파헤치거나 소화하기보다 평생을 두고 반추하는 것이죠. 그래야 겹겹이 쌓인 의미가 드러나죠"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평생의 화두를 두고 묻는다'는 뜻이다.

그녀는 '코로나19'를 예고하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향, 해조류, 박테리아와 미생물 세균 배양 등을 예술화했다. 미술에 AI와 첨단기술은 물론 생물학도 도입했다. 이번에 리움 전시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생물 실험실처럼 보이는 이유다.

백남준은 1984년 6월 <조선일보> 정중헌 기자와 인터뷰에서 '유전자 생물학'이 미래에는 미술의 주류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는데, 50년 만에 이런 예술이 돌출했다.

변방에서 미술계의 '혜성'으로 등장
 '아니카 이(Anicka Yi)' 작가 앞 모습. 사진: 이재안
ⓒ 리움미술관
아니카는 미술전공자가 아닌 이 분야에선 아웃사이더였다. 뉴욕에서 영화이론을 공부하다가, 런던에서, 프리랜서로 광고문구, 다시 뉴욕에서 잡지 '페이스(The Face)'에서 패션 디자이너도 했다, 미술계에 들어선 건 30대 중반이다.

어머니가 생의학 회사에 다녔고 자매들도 향수 애호가였다. 그래선가, 작가는 향과 냄새를 근간으로 작업해왔다. 이날 기자와 작가와 대담에서 "후각을 감각에서 최우선에 두느냐?"고 물으니 "그런 우위는 없다며, 다만 더 다층적인 감각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2008년 맨해튼 '카날(Canal)'에서 첫 그룹전을, 2011년 첫 개인전을, 2015년에는 오노 요코, 백남준, 존 케이지 등 미국의 전설적 전위미술가 아지트였던 뉴욕 '키친 갤러리(The Kitchen)'에서 이색전시를 열었다. 미국 내 아시아 여성 1백 명의 땀과 향 샘플을 추출해 획기적인 페미니즘 성향의 전시를 열었다.

2016년에는 놀랍게도 그녀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2년마다 주는 '휴고 보스상(Hugo Boss Prize)'을 받았다. 그의 예술은 총체 감각의 생물-정치(biopolitics for the senses)라는 호평도 들었다.

그런 그녀를 <뉴욕 타임스>도 주목했다. 2017년에는 휘트니비엔날레 전시에, 201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받았다.

'코로나19' 예고하듯 박테리아로 작업
 아니카 이 I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단채널 비디오 16:04 영상 스틸 2024
ⓒ 리움미술관
그녀는 유기체인 해조류, 그리고 곰팡이 등 관심을 두는 것은 미생물의 생멸을 예방하고 환경 질서를 되찾는 길을 찾으려는 것인가. 그런 면에서 작가는 자연 생태계와 환경 위기 등에 관심이 많다. 사실 지구 차원에서 우리는 미래세대의 것을 빌려 쓰고 있는데 이런 점을 기성세대가 간과하는 것 같다.

작가는 기후변화나 급변하는 신기술 등으로 우리가 변동성이 많은 불확정한 사회를 살아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우리를 낯선 세계로 이끌고 그녀의 작품은 이런 첨단기술이 도입되니 작업이 다학제적이다. 과학자, 건축가 그리고 공감각을 활용하는 조향사 '바르나베 피용(B. Fillion)' 등과도 협업했다.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가 아직 미개척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생존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서, '사이아노(cyano)' 박테리아는 바다에서 산소를 만들고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을 태어나게 한 존재라고 말한다. 하긴 박테리아는 사람에게 병도 주지만 약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의 작품에 자주 나오는 박테리아는 그녀의 페미니즘도 연상시킨다. 중세에 그랬듯이, 종종 아직도 남성 중심 한국 사회는 일부 여성을 마치 균류처럼 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여성은 어느 시대나 박테리아 처지가 되기가 십상이다. 그녀의 작품 속에는 이렇듯 은근히 인류학, 철학, 이주, 기후변화 등의 주제가 녹아 있다.
 아니카 이 I 해초 주머니(Kelp Pods)가 달린 '방산충(Radiolaria)' 연작 '포개어진 허파' 광섬유, LED, 실리콘, 아크릴, 에폭시, 알루미늄, 스테인레스 스틸, 강철, 황동, 모터 및 마이크로컨트롤러 118.1×74.3×74.3cm 2023~2024
ⓒ 김형순
아니카 작가 하면 많은 이들은 우선 '해초 주머니'가 달린 방산충' 설치를 떠올린다. 거대한 애벌레를 연상시키는 이 작업은 해저 진흙 진액 속에 가라앉은 섬세한 미생물 화석으로 만든 것이다. 작가는 이렇듯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시각화하는 것도 현대 미술의 한 기능으로 본다.

그녀의 전시는 선사시대 인류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가설과 조류와 균류의 이동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 등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폭넓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진화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유기체와 기계의 소통을 연결하는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작품에 도입한다. 마치 백남준이 60년대 '기계의 인간화'를 추구했듯 말이다.

최근 선보인 '방산충'(2023) 연작인 '포개어진 허파'는 5억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Cambria)' 첫 번째 시기에서 등장한 화석과 해양성 플랑크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이 연작은 파도가 물결치듯 전시장 분위기를 주도한다. 섬세한 광섬유 표면에 따라 빛이 파동을 일으키면서 내부 기계장치를 작동시킨다.

'방산충'은 섬세하게 짜인 광섬유 표면에 따라 유령과 같은 하얀 색을 연출한다. 이 작업의 기원은 해저 진흙 진액 속에 가라앉은 미생물 화석에서 시작된 것이다. 작가는 이 작은 해골이 마음을 어지럽게도 하나 실로 아름답게 보인다고 말한다.
 아니카 이 I '튀긴 꽃(Tempura Fried Flowers)' 연작: '생물오손' 조각 2024
ⓒ 김형순
작가는 2000년대부터 '튀긴 꽃' 연작을 다양하게 선보여왔다. 이 연작은 기존의 개념을 뒤집고 남성 중심의 관음적 미의식을 전복시킨다. 그 기름진 외형과 시큼한 냄새는 우리가 상상하는 꽃의 일반적인 아름다움과는 충돌한다. 소비와 부패의 시대를 사는 우리의 분에 넘치는 욕망을 공격하는 것 같다.
 아니카 이 I '절단' 폼, 석고, 페인트, 꽃 튀김, 유리, 튜브 245×120×140cm 2024
ⓒ 김형순
위 2024년 작 '생물오손 조각'이나 '절단'이나 다 이 연작이다. 형광 박테리아는 발광 해양생물로부터 분리되어 있던 유전자가 발현되어 이 세상 색이 아닌 색을 낸다. 이런 작품은 거부감과 함께 묘한 호기심도 유발한다.
'공생적인 빵',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
 아니카 이 I '공생적인 빵', PVC 돔, 프로젝터, 단채널 비디오, 글리세린 비누, 레진, 반죽, 분말 안료, 플라스틱, 마일러, 비즈, 템페라 물감, 셀로판. 가변 크기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소장 2014 아니카 이
ⓒ 리움미술관
10년 전 작품인 '공생적인 빵(2015)'도 전시된다. 정말 큰 식빵 같다. 대형 공기주입기구에 두텁게 바른 빵 반죽은 소화 과정을 은유한다. 안쪽에서 부드럽게 빛나는 비누 조각에는 박테리아 모습이 투시된다.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미생물가 숨어 있다. 미생물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한다.
과연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 가는 것인가? 그녀는 이렇게 생물학, 기술철학, 환경 정의 등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우리를 엉뚱하고 낯선 상상계로 이끈다. 화학 물질과 생물체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생화학적 현상으로 보여준다.
 아니카 이 I '또 다른 너' 아크릴, LED, MDF, 거울, 양방향 거울, 박테리아, 아가 배지. 200×200×35cm 2024
ⓒ 김형순
이번엔 미국 컬럼비아대와 이화여대 미생물학 연구실과 협력한 신작인 '또 다른 너'를 보자. 끝없는 거울 환영(Infinity Mirror) 속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한다. 그렇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다.

재료에서 독창성은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서도 LED, 접착제와 섞어 압착한 목재합판(MDF), 양방향 거울, 박테리아, 미생물 배양물 등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고대 해양시대의 친족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미생물과 분자생물학 등을 합한 '합성생물학'을 통해 작가는 고대와 현재 사이의 연결점을 찾으려 한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사후의 삶, '공 개념'으로 극복?
 아니카 이 I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단채널 비디오 16:04 영상 스틸 2024
ⓒ 김형순
끝으로 시적 제목이 붙은 작품 '산호의 가지마다 달빛이 비친다(Each Branch of Coral Holds Up the Light of the Moon)'를 보자. "작가 사후에도 그의 작업이 계속 이어질 수 있을까?"라는 실존적 질문을 던진 작품이다. 여기에 AI, 알고리즘, 첨단기술과 함께 불교의 '공(空 Emptiness)' 개념을 빌려 만든 영상이다.

우리가 불교의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가 나름 스튜디오에서 공동 연구와 협력으로 여러 모의실험(시뮬레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물리적 현실과 고차원 사상을 연결한다.

이 영상은 우리의 경험이 '시간-공간-인간' 3차원에 묶여 있지만, 이에 더해 양자역학과 특수 상대성이론을 결합한 5차원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을 도입했다. 인식을 더 높여야 우리가 더 강력한 에너지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실험실 같은 이번 전시는 리움과 '중국 현대미술센터(UCCA)' 공동 주최로 2025년 3월에 '베이징'에서 다시 열린다. 한국 측에서는 '이지나(Gina Lee)', 중국 측에서는 '피터 엘리(Peter Eleey)'가 참여한다. 동시에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젝트'로 <에어로센 서울>도 열리고, '그라운드갤러리'에서는 <아트 스펙터클>전도 열린다.

덧붙이는 글 | [1]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leeumhoam.org/leeum [2]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2024년 10월 30일 오후 3시에 리움 강당에서 '김응빈(미생물학자)' 를 모시고 강연 2번째 <보이지 않게 거대하게 얽혀 있는 존재 공생자 미생물> 열린다. 내용은 지구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하는 공생자로서 미생물의 신비한 세계를 살펴보고 미생물이 인간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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