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전시인데 미생물 실험실처럼 보이는 이유
[김형순 기자]
▲ 아니카 이' 개인전이 열리는 리움 미술관 M2 전시장 입구에 붙은 전시 제목 |
ⓒ 김형순 |
전시 제목은 선불교 '간화선(看話禪)'에서 온 것이다. 이 개념에 대해 작가는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사색을 위한 도구로 천천히 음미하는 것, 단번에 완전히 파헤치거나 소화하기보다 평생을 두고 반추하는 것이죠. 그래야 겹겹이 쌓인 의미가 드러나죠"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평생의 화두를 두고 묻는다'는 뜻이다.
그녀는 '코로나19'를 예고하듯,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향, 해조류, 박테리아와 미생물 세균 배양 등을 예술화했다. 미술에 AI와 첨단기술은 물론 생물학도 도입했다. 이번에 리움 전시는 미술관이 아니라 미생물 실험실처럼 보이는 이유다.
백남준은 1984년 6월 <조선일보> 정중헌 기자와 인터뷰에서 '유전자 생물학'이 미래에는 미술의 주류가 될 거라고 예견했다는데, 50년 만에 이런 예술이 돌출했다.
▲ '아니카 이(Anicka Yi)' 작가 앞 모습. 사진: 이재안 |
ⓒ 리움미술관 |
어머니가 생의학 회사에 다녔고 자매들도 향수 애호가였다. 그래선가, 작가는 향과 냄새를 근간으로 작업해왔다. 이날 기자와 작가와 대담에서 "후각을 감각에서 최우선에 두느냐?"고 물으니 "그런 우위는 없다며, 다만 더 다층적인 감각의 조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그녀는 2008년 맨해튼 '카날(Canal)'에서 첫 그룹전을, 2011년 첫 개인전을, 2015년에는 오노 요코, 백남준, 존 케이지 등 미국의 전설적 전위미술가 아지트였던 뉴욕 '키친 갤러리(The Kitchen)'에서 이색전시를 열었다. 미국 내 아시아 여성 1백 명의 땀과 향 샘플을 추출해 획기적인 페미니즘 성향의 전시를 열었다.
2016년에는 놀랍게도 그녀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 2년마다 주는 '휴고 보스상(Hugo Boss Prize)'을 받았다. 그의 예술은 총체 감각의 생물-정치(biopolitics for the senses)라는 호평도 들었다.
그런 그녀를 <뉴욕 타임스>도 주목했다. 2017년에는 휘트니비엔날레 전시에, 201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본 전시에 초대받았다.
▲ 아니카 이 I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단채널 비디오 16:04 영상 스틸 2024 |
ⓒ 리움미술관 |
작가는 기후변화나 급변하는 신기술 등으로 우리가 변동성이 많은 불확정한 사회를 살아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러면서 우리를 낯선 세계로 이끌고 그녀의 작품은 이런 첨단기술이 도입되니 작업이 다학제적이다. 과학자, 건축가 그리고 공감각을 활용하는 조향사 '바르나베 피용(B. Fillion)' 등과도 협업했다.
모 매체와 인터뷰에서 그녀는 우리가 아직 미개척 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생존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면서, '사이아노(cyano)' 박테리아는 바다에서 산소를 만들고 더 나아가 우리 인간을 태어나게 한 존재라고 말한다. 하긴 박테리아는 사람에게 병도 주지만 약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 아니카 이 I 해초 주머니(Kelp Pods)가 달린 '방산충(Radiolaria)' 연작 '포개어진 허파' 광섬유, LED, 실리콘, 아크릴, 에폭시, 알루미늄, 스테인레스 스틸, 강철, 황동, 모터 및 마이크로컨트롤러 118.1×74.3×74.3cm 2023~2024 |
ⓒ 김형순 |
그녀의 전시는 선사시대 인류가 아시아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다는 가설과 조류와 균류의 이동이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가설 등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폭넓은 인류학적 관점에서 현대 미술의 영역을 확장하고 진화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유기체와 기계의 소통을 연결하는 '기계의 생물화' 개념을 작품에 도입한다. 마치 백남준이 60년대 '기계의 인간화'를 추구했듯 말이다.
최근 선보인 '방산충'(2023) 연작인 '포개어진 허파'는 5억 년 전 고생대 '캄브리아(Cambria)' 첫 번째 시기에서 등장한 화석과 해양성 플랑크톤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천장에 매달린 이 연작은 파도가 물결치듯 전시장 분위기를 주도한다. 섬세한 광섬유 표면에 따라 빛이 파동을 일으키면서 내부 기계장치를 작동시킨다.
▲ 아니카 이 I '튀긴 꽃(Tempura Fried Flowers)' 연작: '생물오손' 조각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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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카 이 I '절단' 폼, 석고, 페인트, 꽃 튀김, 유리, 튜브 245×120×140cm 20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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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카 이 I '공생적인 빵', PVC 돔, 프로젝터, 단채널 비디오, 글리세린 비누, 레진, 반죽, 분말 안료, 플라스틱, 마일러, 비즈, 템페라 물감, 셀로판. 가변 크기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소장 2014 아니카 이 |
ⓒ 리움미술관 |
▲ 아니카 이 I '또 다른 너' 아크릴, LED, MDF, 거울, 양방향 거울, 박테리아, 아가 배지. 200×200×35cm 2024 |
ⓒ 김형순 |
재료에서 독창성은 그녀의 가장 큰 특징이다. 여기서도 LED, 접착제와 섞어 압착한 목재합판(MDF), 양방향 거울, 박테리아, 미생물 배양물 등이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고대 해양시대의 친족 관계에 대한 작가의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미생물과 분자생물학 등을 합한 '합성생물학'을 통해 작가는 고대와 현재 사이의 연결점을 찾으려 한다. 너와 나의 경계가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 아니카 이 I '산호 가지는 달빛을 길어 올린다' 단채널 비디오 16:04 영상 스틸 2024 |
ⓒ 김형순 |
우리가 불교의 이런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기 쉽지 않다. 작가 나름 스튜디오에서 공동 연구와 협력으로 여러 모의실험(시뮬레이션)으로 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물리적 현실과 고차원 사상을 연결한다.
이 영상은 우리의 경험이 '시간-공간-인간' 3차원에 묶여 있지만, 이에 더해 양자역학과 특수 상대성이론을 결합한 5차원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을 도입했다. 인식을 더 높여야 우리가 더 강력한 에너지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
실험실 같은 이번 전시는 리움과 '중국 현대미술센터(UCCA)' 공동 주최로 2025년 3월에 '베이징'에서 다시 열린다. 한국 측에서는 '이지나(Gina Lee)', 중국 측에서는 '피터 엘리(Peter Eleey)'가 참여한다. 동시에 '아이디어 뮤지엄 프로젝트'로 <에어로센 서울>도 열리고, '그라운드갤러리'에서는 <아트 스펙터클>전도 열린다.
덧붙이는 글 | [1] 리움미술관 홈페이지 https://www.leeumhoam.org/leeum [2]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 2024년 10월 30일 오후 3시에 리움 강당에서 '김응빈(미생물학자)' 를 모시고 강연 2번째 <보이지 않게 거대하게 얽혀 있는 존재 공생자 미생물> 열린다. 내용은 지구의 역사와 미래를 함께하는 공생자로서 미생물의 신비한 세계를 살펴보고 미생물이 인간과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 보는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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