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때문 아닙니다, 요즘 후쿠오카에 청년들이 모이는 이유
[임병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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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쿠오카 타워에서 바라본 후쿠하마 해변의 신도시 |
| ⓒ 임병식 |
니혼게이자신문(日本經濟新聞)에서 경제부 기자로 활동한 스기모토는 오랜 기간 손정의와 소프트뱅크를 지켜봤다. 그는 손정의를 다룬 책이 여러 권 있음에도 굳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대부분 가난한 조선인으로 태어나 사업가로 성공하기까지 입지전적인 이야기에 그쳤지만 자신은 '도대체 손정의는 어떤 사람인가?'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스기모토가 규정한 손정의는 다층적이다. 상식을 벗어난 경영자, 배포가 큰 벼락부자, 차별과 편견을 딛고 성공한 재일 한국인 사업가. 스기모토는 "이 모든 호칭에 어울리는 사람이 손정의다. 그는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경영자다.
그는 혼자 힘으로 천재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지 않았다. 소프트뱅크는 손정의를 둘러싸고 그를 돕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들어낸 거대한 군상극이다. 한 사람의 천재 이야기가 아닌 비즈니스란 영혼을 바친 경쟁과 협력의 스토리다"고 설명했다. 당대 10조엔, 일본 최대 부를 일군 그가 어떤 가치관과 판단기준을 갖고 행동했는지, 또 어떤 생각이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아보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이런 서문을 접하면 혹하게 된다. 두 차례 반복해 읽는 동안 손정의라는 인물에 푹 빠졌다. 책을 읽고 난 뒤 그가 활동했던 후쿠오카를 찾는 것은 당연했다.
손정의의 자취를 좇은 8월 첫 주, 일본 열도는 영상 40도를 넘는 가마솥 더위로 펄펄 끓었다. 그럼에도 호기심에 지칠 줄 몰랐다. 1957년 손정의가 태어난 곳은 후쿠오카에서 30여km 떨어진 사가현 JR도스(鳥栖) 역 부근이다. 국철 소유 땅을 무단 점유한 까닭에 번지가 없었다. 그가 태어날 당시 일대는 돼지 축분으로 악취가 진동하는 판자촌이었다. 한반도 도래인 흔적이 있는 청동기 유적지 요시노가리와도 멀지 않다. 모든 재일 한국인 3세가 그랬듯 손정의 또한 조센징이라는 차별과 편견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파친코로 부를 일군 부친 덕분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뒤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손정의는 의지가 강했다. 그는 스물한살 되는 1978년 8월, 방학을 이용해 도쿄에서 사사키 다다시(佐佐木正)를 만나 인생의 전환점을 마련했다.
그는 전자제품 강국 일본을 일으킨 중심 인물이었다. 샤프 전무로 재직하던 사사키는 생면부지 대학생이 보낸 사업 제안에 응했다. 손정의는 10여 곳에 전자번역기 실용화 사업을 제안한 끝에 사사키와 만났다. 샤프와 카시오 사이 20년 전자계산기 전쟁을 승리로 이끈 사사키는 전자번역기의 시장성에 주목했다. 덜컥 1억6000만 엔을 개발비로 지원했다. 이 돈은 오늘날 소프트뱅크 그룹의 종자돈이 됐다.
스물한살에 대기업을 상대로 비즈니스를 제안한 손정의도 대견스럽지만 어린 학생에게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사사키의 안목도 놀랍다.
저자는 손정의가 사사키를 평생 은인으로 모시게 된 사연을 감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버클리대학을 졸업한 손정의는 1981년 고향 후쿠오카에서 사업가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이후 천재적 판단과 굽힐 줄 모르는 집념으로 손정의는 유통업에서 시작한 소프트뱅크를 출판, 인터넷, 브로드밴드 인프라, 휴대전화, IoT 기업으로 키웠다. 책에서 여러 차례 언급하는 '300년 기업'은 손정의가 지향하는 기업관을 집약한다. 눈앞의 단기 이익에 집착하지 않고 시류에 관계없이 지속가능한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것이다.
"나는 세상을 바꿀 대단한 발명을 하지 않았다. 다만 패러다임 시프트의 방향성과 그 시기를 읽는 능력을 지녔다. 눈앞의 2~3년 돈벌이에는 관심 없다. 10년, 20년 후에 꽃피울 사업을 씨앗 단계에서 구분하고 키우는데 관심 있다. 또 리스크를 감수할 능력도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
손정의는 플랫폼 사업의 중요성에 일찍 눈을 떴다. 컴퓨터 운영체제를 개발한 마이크로소프트, 검색 엔진을 개발한 구글, 인터넷 유통을 장악한 아마존이 대표적 플랫폼 기업이다. 손정의는 2016년 저소비 전력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영국 암(ARM) 인수에서 정점을 찍었다. 손정의는 이 분야 독점기업인 암을 3조3000억 엔에 인수함으로써 반도체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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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트업 산실 fgn(Fukuoka growth next)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fgn(fukuoka growth next). fgn은 스타트업 지원 기관을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를 만드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도쿄 등 대도시에서도 창업을 계획하는 이들이 찾는다. |
| ⓒ 임병식 |
Fgn은 단순한 창업지원 공간을 넘어 스타트업 생태계 허브로 자리 잡았다. 입주기업에게는 파격적인 지원이 뒤따른다. 월 15만 엔 수준의 저렴한 사무실 임대비에다 체계적인 맞춤형 프로그램, 강력한 행정지원 등이다. 특히 사업계획서 한 장으로 비자를 발급하는 '스타트업 비자'는 파격적이다. 일반적이라면 체류 요건으로 현지 사무소, 상근 직원 2명 이상, 자본금 또는 출자액 500만 엔 이상을 갖춰야 한다.
스타트업이 몰려 있는 까닭에 fgn 인근은 젊은이들로 활기찼다. 일본인은 조용하다는 고정관념도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마침 찾은 때가 오후였는데 주변 음식점은 젊은이들로 줄을 이었다.
현재 fgn에는 148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지금까지 458억 엔(약 415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치란 라면과 하카타 인형으로만 알았던 후쿠오카는 제2의 손정의를 꿈꾸는 젊은 도시로 거듭나고 있었다. 일본 정부는 2022년 '스타트업 육성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27년까지 스타트업 10만 개 이상, 유니콘 기업 100개 이상, 투자 규모 10조엔 달성이란 구체적 목표를 제시했다. 잃어버린 30년에서 벗어나 스타트업 창업 도시로 거듭나는 노력이 지방 후쿠오카에서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스타트업 혁신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2010년 36살 나이로 취임한 다카시마 소이치로 후쿠오카 시장이다. 그는 "지방으로부터 창업 혁명을 일으키자"며 혁신과 변화를 유인했다. 그도 손정의 키즈다. 후쿠오카는 15~29세 청년 인구비율이 일본에서 가장 높은 19.5%다. 단지 재일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친밀감을 느꼈던 손정의와 소프트뱅크의 그늘은 생각보다 넓다.
fgn에서 가까운 모모치 해변에는 소프트뱅크가 운영하는 프로야구단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홈구장 PAY PAY DOM이 있다. 이곳에서 만난 미야사키씨(28) 일행은 손정의를 닮고 싶고 그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우리 지방도시도 대기업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스타트업을 통해 성장모델을 만드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임병식 국립군산대학교 특임교수(전 국회 부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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