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나는 대만 TSMC가 웃지 못하는 속사정 [김규환의 핸디 차이나]
엔디비이와 차세대 AI 칩 블랙웰 생산 둘러싸고 불협화음
빅테크, 칩 제조비용 상승하자 TSMC 의존도 낮추기 나서
‘독점 체제’로 고객사들보다 더많은 이윤 챙긴다는 비판도
지난 17일 미국 뉴욕증시, 주당 187달러에서 시작한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타이지뎬(臺積電·TSMC)의 주가는 개장 초 3분기에 ‘어닝 서프라이즈’(깜짝 실적)를 달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순식간에 폭등세로 돌아섰다.
200달러를 가볍게 돌파하더니 장중 한때 전날보다 12.83%나 급등한 211달러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단기급등에 부담을 느낀 투자자들이 경계 및 차익매물을 시나브로 내놓으며 전날보다 9.79% 상승한 205.84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이로써 TSMC 시가총액(종가 기준)은 1조 671억 달러(약 1473조원)를 기록했다. 반도체 기업으로는 엔비디아에 이어 두번째로 1조 달러 고지를 밟았고, 글로벌 기업 시총 8위에 올랐다. 삼성전자(2885억 달러)보다 3.5배가량 많다. TSMC의 주가는 올들어 무려 94.94%나 폭등했다.
TSMC는 앞서 콘퍼런스콜(실적 설명회)에서 3분기 매출 235억 400만 달러, 영업이익은 111억 6200만 달러로 각각 집계됐다고 밝혔다. 전년보다 매출 36.5%, 영업이익은 58.2% 각각 증가했다. 웨이저자(魏哲家) TSMC 최고경영자(CEO)는 “인공지능(AI) 수요는 강력하고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AI 수요가 ‘미쳤다’는 말까지 나온다”고 기세등등했다.
TSMC의 시총 1조 달러 돌파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파운드리 업체의 위상을 그대로 반영한다. 과거 파운드리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이 넘겨준 도면대로 칩을 만드는 하청업체 취급을 받았다. 이런 인식도 AI 시대를 맞아 반도체 집적도가 물리적 한계에 다다를 정도로 미세해지면서 크게 달라진 것이다.
초미세 공정과 후공정인 패키징(칩이 외부와 전기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포장하는 마지막 공정)에서 독보적 능력을 갖춘 TSMC를 제외하면 설계도대로 실물 칩을 찍어낼 수 있는 경쟁업체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독주체제를 갖췄다. TSMC가 ‘슈퍼乙’에서 ‘슈퍼甲’으로 올라섰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3나노미터(㎚·10억 분의 1m) 시대’로 진입하며 TSMC의 입지는 더욱 견고해지는 모양새다. 이 초미세공정이 양산에 들어가자 대부분의 빅테크들이 TSMC와의 동맹을 두텁게 하기 위해 안달복달하고 있다. 최대 고객인 애플은 TSMC가 개발한 3나노 공정을 처음 이용해 탄생한 A17 프로 칩을 아이폰15 프로의 두뇌로 채택했다.
지금도 최신 칩인 A18과 M4 등을 TSMC를 통해 공급받고 있다. 챗GPT 등 초거대 AI 서비스의 기반이 되는 서버용 AI 가속기의 공급망 정점에도 TSMC가 버티고 있다. 구글마저 TSMC와 협업을 시작하면서 삼성전자는 오랜 고객을 TSMC에 넘겨줄 위기에 놓여 있다.
TSMC의 독주는 시장점유율 수치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올해 2분기 기준 TSMC의 점유율은 62%로 2위 삼성전자(13%)와의 차이를 50% 가까이 벌렸다. 2년 전인 2022년 2분기 기준 TSMC 56%, 삼성전자 13%였던 때와 격차가 더 벌어졌다.
그러나 폭풍 질주하는 TSMC에도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TSMC가 미국의 수출규정을 어기고 반도체 수출통제 목록에 올라 있는 세계 최대의 통신장비업체 중국 화웨이(華爲)를 위해 인공지능(AI)·스마트폰용 반도체를 만들었는지를 미 정부가 조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미 정보기술(IT) 전문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TSMC 조사는 초기 단계이며 미 상무부가 자료를 확보하고 결론을 내리는 데 얼마나 걸릴지 등은 명확하지 않다. 소식통들은 화웨이가 중개회사를 내세워 주문을 대신 넣는 방식으로 TSMC의 칩을 우회적으로 구매했을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두고 미 상무부가 조사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판국에 TSMC의 반도체가 화웨이 제품 속에 숨어 있는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캐나다 소재의 정보기술(IT) 리서치 업체인 테크인사이츠는 화웨이의 AI 칩셋 '어센드 910B' 제품을 분해한 결과 여기서 TSMC가 제조한 반도체를 발견돼 이를 TSMC 측에 알렸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지난 22일 보도했다.
화웨이는 미국의 제재 조치로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에서 타격을 받았지만, 지난해 중국 최대 파운드리 업체 중신궈지(中芯國際·SMIC)가 만든 7나노공정 프로세서가 내장된 스마트폰 ‘메이트 프로 60′을 출시해 시장을 놀라게 한 바 있다.
미 상무부가 TSMC가 화웨이와의 거래에서 미 수출규정 위반을 확인할 경우 미 기술에 대한 일시적인 접근 제한이나 벌금 부과 등의 제재를 가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지난해 데이터 저장장치 업체인 시게이트테크놀로지가 화웨이에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기술을 판매한 혐의로 벌금 3억 달러를 부과했다.
더욱이 상승하는 칩 제조 비용에 TSMC 의존도를 줄이려는 빅테크의 움직임도 포착된다. 밀월관계인 엔비디아와 TSMC의 관계에 균열 조짐을 보이는 것이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TSMC는 젠슨 황 CEO가 이끄는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생산하며 30년간 돈독한 친분을 쌓았다. AI 열풍으로 엔비디아의 최첨단 AI 칩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이 칩을 TSMC가 독점적으로 생산하면서 한층 긴밀해졌다.
하지만 차세대 AI 칩 블랙웰 생산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생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블랙웰은 연내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발견된 결함 탓에 대규모 출하가 수개월 늦어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양측 경영진이 회동한 자리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첨예한 갈등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업은 이 결함의 원인을 서로 네탓으로 돌리며 공방을 벌였다. 엔비디아는 블랙웰 시리즈 공개 후 테스트 과정에서 TSMC가 만든 시제품에 결함을 발견하고 TSMC의 공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반면, TSMC는 엔비디아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젠슨 황 CEO는 23일 덴마크에서 열린 신형 슈퍼컴퓨터 출시 행사에서 “설계 결함 문제를 해결했다”며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AI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밀려드는 주문으로 TSMC의 공급 능력이 한계에 달한 점도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는 배경 중 하나다. 엔비디아는 TSMC에 '전용 패키징 라인' 구축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TSMC가 독점체제를 이용해 고객보다 더 많은 이윤을 남기고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TSMC의 올해 3분기(7~9월) 매출에서 원가를 제외한 총마진 비율은 무려 57.8%에 달한다. 매출이 100원이라면 생산에 직접 비용을 지불하고 남은 금액이 57.8원이라는 말이다. 영업이익률도 47.5%로 2분기 42.5%보다 5%포인트 확대됐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엔비디아는 TSMC보다 20~30% 낮은 가격에 생산을 맡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엔비디아는 최신 AI 칩보다 간단한 새로운 게임 칩을 제조하기 위해 삼성전자와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디인포메이션은 “엔비디아는 삼성과 해당 칩 가격에 대해 협상 중”이라며 “같은 기술에 대해 TSMC가 생산하는 칩보다 20∼30% 더 저렴한 제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력’이라는 암초도 만났다. ‘반도체 산업은 전기 먹는 하마’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많은 전력을 소비한기 때문이다. TSMC가 오는 2030년 대만 전체전력 사용량의 25%를 차지함으로써 심각한 전력난을 초래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제신용평가기관 스탠더스앤푸어스(S&P)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TSMC의 전력 사용량은 250기가와트(GW)다. 대만 전체 전력 사용량의 8%, 산업부문 전기 수요의 16%를 차지한다. 1GW는 원자력발전소 1기 전기 생산량과 맞먹는 용량이다.
그런데 TSMC의 전력 사용량은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대만 전력 사용량의 4분의 1 수준인 23.7%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1나노·2나노 등 초미세공정 반도체 생산량을 늘리면서 전력 사용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 있다. TSMC가 향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까지 '전력 공급' 여부가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글/ 김규환 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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