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권 없이 남용 없다’ 뒤집은 양승태 2심…해외연수검사 논문, ‘반전’ 변수됐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가 ‘1심 무죄’에서 ‘항소심 일부 유죄’로 반전되는 데 있어 현직 검사의 국외훈련 연구논문이 변수로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4부(재판장 박혜선)가 지난 1월말 양 전 대법원장의 일부 재판개입 등 혐의(직권남용)를 유죄로 판단한 376쪽 분량 항소심 판결문의 주요 부분에 남철우 부장검사(사법연수원 37기)가 작성한 국외훈련 연구논문 ‘미국의 직권남용 규정체계 및 해석’에 담긴 핵심 논리와 판례 등이 상당 부분 반영된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중앙지검 공보관으로 재직 중인 남 부장검사는 2019~2022년 이 사안에 공판검사로 참여했고, 미국 연수 직후인 2022년 7월쯤 이 논문을 1심 재판부에 제출했다.
앞서 1심은 “대법원장은 재판에 개입할 권한이 없고, 설령 권한이 있는 사안이라 해도 직권을 행사하거나 남용하지 않았다”며 양 전 대법원장 혐의를 무죄로 봤다. 이는 대법원이 2022년 4월 임성근 전 부장판사의 재판개입 의혹 사건을 무죄로 확정하면서 인정한 ‘직권 없이 남용 없다’는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한 결론이었다.
항소심은 그러나 1심 판단을 뒤집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법행정권자의 행위가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일반적 직무권한을 행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은 재판에 개입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면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또 대법원의 임 전 부장판사 사건에 대한 무죄 판단을 두고는 “직권남용의 구성요건 해석에 관한 대법원의 일반적이고 확립된 판례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은 이 과정에서 이른바 ‘월권적 직권남용’을 인정한 대법원 판례 5개를 1심 파기 근거로 들었다. 이중 ①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정치개입 사건, ②A시 자치행정국장의 개발제한구역 내 허가 요구 사건, ③해군 법무실장의 군검찰 수사기밀 보고 요구 사건 등은 남 부장검사가 논문에서 월권적 직권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든 경우였다. 나머지 판례들도 공소유지 과정에서 제출한 의견서 등이 반영된 것으로 전해졌다.

남 부장검사는 논문에서 미국의 직권남용 판례를 분석해 “미국 법원은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직무 범위를 벗어난 경우에도, 그것이 해당 공무원에게 주어진 직무와 관련을 맺을 수 있다면 법의 컬러로 행한 행위(Act under color of law), 즉 권력 남용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무원의 불법행위가 공적 직무에 포함되는지 여부가 아니라 ‘해당 공무원의 행위가 법적 권한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 여부’라고 판시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안팎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항소심 판결문에 녹아들었다고 본다. 대표적인 대목이 “(1심 판단은) 중하게 보호하여야 하는 ‘재판사무의 핵심영역’에 대한 행위에 관하여는 오히려 언제나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되므로 재판의 독립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진다”는 지적이다.
항소심은 특히 “법관의 재판권은 직권남용죄가 보호 대상으로 삼는 구체적 권리에 해당한다”고 전제한 뒤 “신뢰받지 못하는 재판은 더 이상 그 존립 근거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법행정권자의 재판관여 행위로 재판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초래되고 그 재판이 신뢰받지 못하는 결과에 이르면 법관의 정당한 재판권 행사는 현실적으로 방해받았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지난 26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등 혐의 사건을 3부(주심 이숙연 대법관)에서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로 재배당했다. 근무 인연으로 인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우려가 재배당 배경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결국 대법원 전원합의체를 통해 직권남용 법리를 재정립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창 성윤수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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