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시착 탈북민]③전문가들 "정착 지원, 초점부터 달라져야"
고립·여성…"탈북민 특성 고려한 대책 필요"
중구난방으로 분산된 위기관리 체계도 문제
권영세 "백지 상태에서 뒤바꿔볼 생각 있다"
편집자주 - 탈북민을 가리켜 '먼저 온 통일'이라는 표현이 관심을 모은 적이 있다. '탈북민 정착이 곧 통일'이라는 지상과제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겼다. 하지만 억압을 벗어나 남한으로 온 탈북민은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다. 목숨을 걸고 고향을 등질 만큼 간절했던 기대는 왜 무너졌을까. 남녘에 불시착한 탈북민의 어려움을 살펴보고 대안을 모색한다.
[아시아경제 장희준 기자] 통일부는 일련의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고독사 사건을 계기로 관계 부처와 지원 시스템을 보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문가들은 단순한 경제적 지원이 아니라 '정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탈북민의 특성을 고려한 기준을 정립하고 그에 따른 시스템 변화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접근성 높일 수 있도록 '특성' 고려한 대책"
장인숙 남북하나재단 선임연구원은 30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일반 국민보다 취약하며 복합적인 어려움을 지닌 탈북민의 안정적인 정착 지원을 위해선 '그들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선임연구원은 "탈북민을 안정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 민간 영역의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며 "생계비 지원이나 취업 지원 외에도 사회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는 지지 기반을 확대하는 등 사회통합의 기반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보건복지부의 취약계층 지원 서비스나 고용노동부의 취업 지원 서비스 전달체계는 자립 의지가 높은 탈북민에게 효과적일 수 있다. 그러나 심신이 건강하지 못하거나 문화·언어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 취약 수준이 높은 이들에겐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게 장 선임연구원의 지적이다.
그는 과거 남북하나재단에서 추진했던 '북한 이탈 주민 산모도우미 지원사업'을 예로 들었다. 해당 제도는 여성가족부의 산모도우미 지원사업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여가부에 이관됐지만, 탈북민에 대한 별도 지원이 마련되지 않았다. 사회적 차별 등에 시달리며 정체성을 드러내길 꺼리는 탈북민의 입장에선 서비스에 대한 편의성과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열에 일곱은 女…'여성'에 초점 맞춘 지원제도"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도 탈북민의 특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중요하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특히 ‘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탈북민 중 여성의 비율이 70%를 웃도는 만큼 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는 게 전체적 개선을 위한 선결 조건이라는 것이다.
윤 교수는 "최근 탈북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본 결과, 여성은 (남성보다) 소득 수준이 낮고 취업률 역시 떨어지는데 심지어 결혼이민자 여성보다 더 열악하다"며 "여성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첫 번째가 건강 문제, 두 번째가 출산·육아 문제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이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한부모 가정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데다 양육 과정에서 도움을 받을 가족마저 없는 상황을 '최악의 시나리오'로 제시했다. 탈북민 여성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이다.
윤 교수는 "출산·육아의 어려움은 일반 여성들도 겪는 어려움이지만, 탈북민의 경우 부모나 친척 혹은 제도적인 측면에서 고립돼 있어 지원받기 더 힘든 상황"이라며 "여성 탈북민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 출산과 양육,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관리체계 중구난방, 통일부 중심 재정비할 필요"
시스템 자체의 개선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통일부와 보건복지부, 남북하나재단, 지방자치단체 등으로 흩어진 관리체계를 지적하면서 탈북민 사안을 총괄하는 통일부를 중심으로 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교수는 "탈북민을 지원하는 하나센터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지부터 의문"이라며 "탈북민이 겪는 문제가 계속되고 이들의 정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위탁운영의 형태가 아니라 통일부 차원에서 지자체와 협업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재 탈북민 위기가구는 복지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뒤 지자체가 관리하지 못하는 가구에 대해서만 통일부 안전지원팀이 개입하는 구조로 돼 있다. 평시에 탈북민의 정착 지원을 도맡고 있는 건 통일부가 선발하는 하나센터인데, 실상은 전담 기관이 아니라 일반적인 복지관 등에 위탁운영하는 형태로 돼 있다.
일례로 지난달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 탈북민 여성이 거주하던 구역을 관할하는 하나센터엔 복지사 10명이 근무하는 반면, 등록된 탈북민의 수는 17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운데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고 관리 대상에 오른 건 850여 명, 위기관리 대상자는 70명 안팎이다. 전체와 비교하면 적어 보이지만, 복지사들 역시 기본적인 복지관 업무에 더해 '추가' 개념으로 탈북민 위기관리를 담당하는 탓에 전폭적인 관심을 쏟기 어려운 상황이다. 비단 이 센터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정 교수는 "노인복지관과 장애인복지관으로 역할에 따라 나뉘어 있듯이 탈북민 정착 지원을 전담하는 복지관 혹은 센터를 독립적으로 마련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며 "현실적으로는 통일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탈북민이 많이 거주하는 동네를 중심으로 관할 지자체와의 협업을 통해 센터를 가동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권영세 "백지상태에서 제도 뒤바꿔볼 생각 있다"
통일부는 현재 일련의 탈북민 사망사건을 계기로 위기관리 시스템에 대한 점검에 나섰다. 탈북민 지원체계가 정부 부처와 공공기관, 지자체 등으로 분산돼 어수선한 점을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관계 부처와 머리를 맞대고 있다. 다만 개선 작업의 구체적인 방향성은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탈북민 지원제도에 대해 "백지화 상태에서 체제 전체를 뒤바꿔볼 생각을 갖고 있다"고 강한 의지를 드러낸 바 있다. 특히 "탈북민이 정착 과정에서 겪는 정신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시스템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한 만큼 '사회적 고립'을 해결할 방안이 나올지도 주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정부는 그간 북한이탈주민이 조기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현재 관계 부처와 함께 기존의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점검 중이며 제도적인 차원의 개선책 위주로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해결책 마련에 분주하다. 탈북민 출신으로 최초의 지역구 국회의원 자리까지 오른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탈북민 고독사 사건이 잇따르자 지난 23일 토론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다. 당시 토론회에서도 탈북민의 특수성을 고려한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문이 나왔고, 태 의원은 위기가정 지원을 위한 지출금을 사후 지원하는 방식이나 행정서류 간소화, 북한이탈주민법 개정 등 보다 현실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장희준 기자 jun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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