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월드의 패션 브랜드 ‘후아유’가 판매한 패딩점퍼가 거위털 함량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사실이 드러나 품질 논란에 휩싸였다. 이랜드는 검증절차가 소홀했던 점을 인정하며 사과했지만, 앞서 거위털 가격 인상으로 품질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는 점에서 문제 해결에 대한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해외의존적인 품질검증 시스템을 전면 개편해야 소비자의 신뢰가 회복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이랜드월드는 거위 솜털 함량이 기준(75%)에 미달한 구스다운점퍼의 판매를 중단한 뒤 전량 회수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생산된 문제의 제품은 표기상 거위 솜털 비중이 80%였지만 실제 검사 결과 30%로 드러났다. 조동주 대표는 “현지 파트너사의 품질보증만 신뢰하고 자체적인 검증절차를 소홀히 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며 사과했다. 이랜드는 현재 전 세계 13곳의 공장에서 자사 브랜드 상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랜드의 품질관리 문제가 불거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7년 슈펜의 아동용 운동화, 2021년 뉴발란스 키즈 제품에서 유해물질이 검출되며 협력사의 관리소홀과 자사의 품질 시스템 부실이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 당시 이랜드는 재발방지를 약속했으나 이번 사태로 품질관리 미비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히 구스다운 품질 문제는 거위털 가격 급등이 본격화된 2023년 이후 여러 차례 주의가 요구됐다. 업계에 따르면 거위털 가격은 2년 전 70달러(약 10만2000원)에서 지난해 말 100달러(약 14만5000원)로 올랐다. 중국의 프리미엄패딩 수요가 증가한 반면 거위와 오리 고기 소비는 줄며 털 공급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일부 업체들이 단가를 맞추기 위해 다른 털을 섞는 관행이 이어지며 원재료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랜드 역시 미얀마 현지 파트너사를 통해 제품을 생산하면서 이 같은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랜드의 후아유 패딩은 10만원대로 저렴해 박리다매 전략으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거위털 가격이 오르면 이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며 “현지 파트너사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오리털을 혼합하거나 품질이 낮은 충전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국내 주요 패션 기업들은 본사가 직접 원자재를 관리하거나 외부 인증기관을 활용하는 체계를 갖추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내부조달팀에서 1년 전부터 원부자재를 직접 확보한 뒤 필요한 만큼만 생산 업체에 발주하는 시스템을 운영한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다운 소재를 포함한 모든 제품을 외부 인증기관에서 검증하는 내부 기준을 마련했으며, LF는 대규모 원자재 업체와 계약해 수급 단계부터 철저히 품질을 관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랜드가 품질 논란을 해소하려면 현지 생산 공장을 직접 방문해 충전재 혼합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한다. 혼합재 문제가 다른 제품에도 해당되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사용 금지된 충전재가 발각되면 소비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이랜드처럼 해외 생산체계를 갖춘 기업들은 국내 품질검증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위탁생산의 특성상 현지 공장의 모든 과정을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통제하기 어려워 국내에서 품질검사를 엄격히 하고 문제가 발생하면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대 의류학과 박소현 박사는 “출고 전 본사의 품질검사뿐 아니라 한국 도착 이후 추가 검사도 실시해 검증단계를 강화해야 재발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며 “특히 대기업일수록 문제 과정을 투명하게 관리하고 구체적인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소비자의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랜드월드는 사과문에서 "재발방지를 위해 원자재 수급부터 최종 제품 출하까지 전 과정에 걸쳐 품질검증을 강화하고, 반복적인 검수절차를 추가해 보다 엄격한 품질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유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