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전세사기 빌라로 돈 벌라는 HUG…新빌라왕 양산 중심에

권현지 2024. 10. 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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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新빌라왕: 제2의 전세사기 공포]②
HUG, 전세사기 피해 주택 재임대 사실상 '권장'
전세사기 문제 해결 안 된 채 다시 전월세 시장으로
HUG 보증금 회수 실적은 해마다 악화
"보증금 제대로 회수했다면 新빌라왕 탄생했겠나"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4조원이 넘는 정부 혈세를 지원받아 전세사기 사태를 수습하면서도 이 자금을 회수하지 않아 전세사기 사태의 원인인 빌라왕의 등장을 조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법원 경매에서 전세사기 피해 빌라(다세대·연립주택)만 낙찰받은 법인들이 이를 재임대하도록 사실상 ‘장려’하면서 제2의 전세사기 위험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사기 주택 무자본 갭투자 방조한 HUG

16일 아시아경제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경매 물건 낙찰자에 대한 HUG의 보증금 회수 매뉴얼’에 따르면 HUG는 경매 물건 낙찰자에게 새로운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거나 그 밖의 방식으로 자금을 확보해 HUG에 채무(보증금)를 자발적으로 상환(임의상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낙찰자가 경매 물건을 재임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택보증기관인 HUG는 2022년 불거진 전세사기 사태로 전세계약 종료 후 집주인이 돌려주지 못한 전세보증금을 임차인(HUG 전세금반환보증 신청자)에게 대신 반환했다. 이어 이 임차인의 채권(돈 받을 권리)을 이어받아 해당 주택을 경매에 넘겨 대위변제금(보증금)을 회수하려 했다. 낙찰자 입장에서는 법원에 낙찰대금을 낸 뒤 HUG가 지원한 보증금을 돌려줘야 했다(피해 임차인이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모두 갖추고 임차권 등기를 한 경우)는 뜻이다.

그런데 낙찰자는 전세사기 피해 빌라를 낙찰받아 재임대하면서도 HUG가 이전 세입자에게 지원한 자금을 갚지 않았다. HUG가 낙찰자의 임대 수익을 회수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 보니 낙찰자는 재임대 보증금을 다른 전세사기 빌라를 낙찰받는 데 활용했다. 법적 장치가 미비한 상황에서 HUG가 적극적으로 추심에 나서지 않자 무자본 갭투자로 빌라왕이 된 것이다.

HUG 재경매하면 새로운 세입자 보증금은 어쩌나

이런 상황에서 HUG가 지원금을 회수하게 되면 피해 빌라에 낙찰자가 들인 새로운 세입자는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다. HUG는 지원금 회수를 위해 해당 주택을 재경매할 수 있는데, 새로 입주한 임차인의 돈을 받을 권리는 ‘후순위’로 밀려나 보증금을 돌려받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HUG의 재경매를 통해 낙찰받은 이가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면 거주 중인 집에서 대책 없이 나와야 할 가능성도 있다.

한문도 숭실사이버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증금 회수에 지지부진한 HUG가 낙찰자에게 돈을 돌려받으려 피해 빌라 재임대를 눈감아주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낙찰자가 HUG에 보증금을 전액 상환하지 않는 한 임차인을 들일 수 없도록 하는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새로운 형태의 전세사기가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며 "전세사기 수단으로 경매를 악용하는 악성 경매인을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HUG가 2022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경매를 신청한 수도권(서울·경기·인천) 소재 빌라 8929가구 중 낙찰자로부터 보증금을 전액 회수한 빌라는 547가구(6%)에 불과했다. 나머지 8382가구(94%)에 대해서는 회수 절차가 진행 중이다. 회수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것은 경매가 진행 중이거나 낙찰됐음에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의미다.

부동산 경·공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의 이주현 전문위원은 "낙찰자가 1~2가구 낙찰 후 보증금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점차 매수량을 늘려간 것으로 보인다"면서 "법인들이 빌라 낙찰을 받으면서 수억 원대 보증금을 그때그때 상환해야 했다면 이렇게 많은 빌라를 사들일 수 있었겠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HUG가 전세사기 피해 주택 경매에 안일한 태도로 대응하면서 빌라왕을 탄생시킨 것이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경매 신청 물건은 빠르게 불어나는데 보증금을 전액 회수한 물건은 좀처럼 늘지 않는 상황이다. 2022년 15%(1525가구 중 233가구)에서 지난해 약 9%(3258가구 중 303가구)로 감소했고, 올해는 9월 현재까지 4146가구 중 단 11가구(0.3%)에 대해서만 보증금을 전액 회수했다.

HUG가 낙찰자에게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해 피해 빌라를 다시 경매에 넘긴 건수는 지난 2년6개월여간 11건에 그쳤다. 2022년 3건, 2023년 4건, 2024년 4건이다. HUG는 낙찰자가 보증금을 자발적으로 상환하도록 한 후 6개월이 지나도 갚지 않는 경우 재경매에 나선다. HUG가 경매로 전세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해 ‘셀프 낙찰’을 받은 건수는 2022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총 1244건이었다. 서울에서 659건이 나왔고 인천과 경기(부천·김포·고양·파주·안양·수원)에서 각각 361건, 223건이 나왔다. 이외에 부산에서 1건이 있었다.

정부는 HUG의 방조로 제2의 전세사기 사태 조짐을 막지 않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혈세를 낭비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민홍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정부가 전세사기 여파로 적자재정 문제를 겪고 있는 HUG에 지원한 자금은 지난 4년간 5조4739억원에 달한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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