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열풍 속, 노무현 정부의 '창의한국' 주목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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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신규 기자]
최근에 한국 문화예술계의 가장 큰 화제는 무엇보다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일 겁니다. 노벨문학상이 전 세계적으로 갖고 있는 위상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합니다.
과거에도 노벨문학상이 결정되던 시기마다 한국 예술계, 특히 문학계에서는 대표적인 문인들의 이름이 거론되며 시상에 대한 기대가 높았지만, 번번이 좌절되었습니다.
물론 예술이란 것이 본질적으로 우열을 가리는 것이 무척 어렵고, 특히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문학의 경우에 있어서는 번역 및 해외 출판 등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한국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좌절이 단지 문인들의 역량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가 17일 서울 강남구 아이파크타워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참석자에게 친필 사인을 하고있다. |
ⓒ 사진공동취재단 |
또한 한강 작가의 수상이 감동적인 것은 이것이 평지돌출로 갑자기 뛰어난 한 개인이 등장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1917년에 쓰인 춘원 이광수의 <무정>을 시작으로 하여, 100여 년이 넘는 한국 현대문학의 다양한 노력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한국 현대문학은 식민지 시대, 전쟁과 분단, 군사독재와 이에 맞선 민주화 운동이라는 굴곡진 역사를 끊임없이 관찰하고, 고뇌하고, 반성과 성찰을 거듭하며 성장해 왔습니다. 또한 민주화 이후에도 환경 문제, 노동 문제, 성평등 문제,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사회적 테마에 대해 응전하며 새로운 작품을 꾸준히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의 이번 수상은 작가 개인의 놀라운 예술 성취에 대한 찬사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 문학이 꾸준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과 현실 문제에 대해 팽팽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강 작가뿐만 아니라, 최근 들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으며 거장의 반열에 올라간 한국 예술가들이 꽤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칸 영화제와 미국의 아카데미 영화제를 휩쓴 봉준호 감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지만, 그 외에도 알게 모르게 한국 예술이 국제 사회에서 갖는 위상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이 세계 질서에서 갖는 위상이 다른 국가의 원조에 의존해야 했던 20세기 중반과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문화예술의 질적 성장이 엄청나게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문학과 같은 기초예술 장르뿐만 아니라, 드라마나 대중음악, 최근에는 웹툰, 애니메이션 같은 대중문화콘텐츠 분야에서도 그 국제 위상이 국민이 체감하는 것보다도 훨씬 높습니다.
▲ 2004년 발간된 <창의한국> 중 일부. |
ⓒ 문화관광부 |
특히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인 2004년 발표된 '창의한국'은 지금 현재의 시각으로 봐도 상당히 놀라운, 혁신적인 정책 비전이었습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대부분 자신의 임기 동안 수행할 문화 정책 계획 같은 걸 발표하긴 하지만, 그 계획에 참여하는 이들이 매우 제한적이었고, 실제로는 거의 관료들이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준비하였던 '창의한국'은 문화예술 현장과 관련 학계의 수많은 전문가들을 망라해 참여시켰고, 단기적인 임기 내 계획이 아닌 10년, 20년을 전망하는 정책비전으로서 풍부한 전망과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 탓인지 그 이후에 숱하게 정권이 교체됐음에도 여전히 정부 문화정책의 기본 방향은 '창의한국'의 자장 안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금의 문화체육관광부를 봅시다, 괜찮습니까
최근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이 전달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을 통한 '제2의 한강 만들기'를 준비하겠다는 취지의 보도자료를 발표했습니다. 주된 내용을 보면 한국문학번역 출판지원 등에 대한 예산 증액, 한국 문학 해외 홍보 관련 예산 증액, 우수 문학도서 지원 확대 등입니다.
물론 이런 사업들은 모두 어느 정도 필요한 정책사업들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다름 아니라 최근 문체부 예산에서 문화예술의 저변을 떠받치고 있던 각종 정책사업에 대한 예산 삭감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 오버랩됐기 때문입니다.
▲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38회 책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하고 있다. |
ⓒ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
하지만 문화예술 분야는 스타 프로젝트 못지않게 저변과 생태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예술가를 홍보하고 알리는 일도 필요하지만 더 많은 예술가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도 매우 중요하며, 그런 예술이 원활하게 소통될 수 있는 향유자와 매개자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런 점에서 최근 정부의 문화정책에서는 지나치게 '스타 프로젝트' 정책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20년 전에 만들어진 문화정책비전 '창의한국'을 현재 시각으로 다시 읽어보면, 상당히 많은 시대적 한계를 느낍니다. 그만큼 사회적 환경과 문화예술의 여건이 변화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비전에서 강조하고 있는 부분인, 문화예술분야를 생태계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유효해 보입니다. 완전히 별개의 것처럼 보이는 많은 것들이 점과 점으로 연결돼 있는 것이 문화예술의 세계입니다. 당장 '제2의 OO' 만들기보다는, 문화생태계 전반의 건강에 대한 진단과 전망 제시가 더 시급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염신규씨는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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