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망은 안 품었으면 좋겠네요" 도서관 근무의 현실
[이지현 기자]
|
|
| ▲ AI생성 이미지 |
| ⓒ 오마이뉴스 |
이곳을 관리하는 사서들은 그들 제각각 다른 요구에 언제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몸이 열 개라도 바쁜 업무 속에서도 깨끗하고 단정한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시민들은 그런 그들의 노고를 잘 알지 못하는 듯하다. 데스크를 넘어 도서관 책장을 누비며 책을 지키는 그들의 이름은 사서다. 그리고 사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앞날이 보장되지 못하는 '비정규직 사서'다.
"백조 같은 존재죠.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물에 떠 있는 것 같은데 발밑으로는 물장구 열심히 치고 있는. 그런 존재."
공공도서관 현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서 A 씨는 자신의 직업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현재 근무 중인 기관과 개인 신상 보호를 이유로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했다. A씨는 공공도서관에서 2년이 넘게 근무하면서 그곳에서 겪었던 고충과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사서와 사서 '실무사', 도서관의 '톱니바퀴'로서의 삶
도서관마다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도서관의 사서는 두 부류로 나뉜다. 사무실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사서와 전면에 나서서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서다. 사무실에 있는 직원과 이용자들이 실무자로서 마주하는 직원은 서로 업무가 완전히 구분된다. 사무실에 있는 사서들은 도서관 전체 경영, 주관 업무를 도맡는다면 외부의 실무자들은 설계된 프로그램을 실제로 운영하고 이용자들을 응대한다. 데스크에서 쉽게 마주하는 사서도 후자에 속한다.
A씨 역시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는 자신을 도서관을 구체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톱니바퀴'라고 비유했다. 그래서 어떤 도서관은 자신들을 사서라고 지칭을 안 하고 '사서 실무사'라고 지칭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 이 직업을 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책이 옆에 있었고 항상 좋아해서 자연스럽게 결정했던 것 같아요. 딱히 거창한 꿈은 아니었죠. 한창 진로를 결정하는 시기에 그런 말을 들었어요. '너는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좋아했던 게 뭐냐?' 이 말에 힌트를 얻었죠. 전 도서관과 책을 좋아했으니까 이에 관련된 일을 하면서 살면 최소한 불행하진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는 도서관과 서적에 대한 애정이 어릴 적부터 짙었다. 자타공인 소위 말하는 '책벌레'였고 집안에서도 독서는 당연시되는 분위기였다. 그 덕분에 그의 진로는 자연스럽게 활자, 책, 도서관으로 향하게 되었다.
"어쩔 수 없다"... 비정규직을 택해야 하는 사서들
그러나 그렇게 들어선 공공도서관 데스크 뒤편에 깔린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소박한 마음으로 사서가 된 그를 기다리는 건 예산 부족에 허덕이는 도서관의 현실과 뗄 수 없는 '비정규직'이라는 타이틀이었다.
A씨는 도서관의 모자란 돈으로 인한 만성적인 인력난을 털어놓았다. 해당 문제는 오래전부터 지적되온 공공도서관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2017년 공공도서관 사서 배치 연구에 따르면 2016년 말 기준 전국 공립 공공도서관의 법정 사서 충원율은 18.2 %에 불과했다.
2026년 전국 공공도서관 통계에서는 도서관과 방문자 수는 모두 증가했다고 나타났으나, 인력 부족과 고용 불안정 문제는 여전했다. A씨는 현장에서 부족한 나머지 일손을 단기 계약직과 봉사자로 보완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국가도서관위원회가 올해 발표했던 2026년 도서관 발전 정책의 총 8992억 원을 투입했다는 내용과는 전혀 맞지 않은 현실이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부터 느꼈던 고질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어요. 도서관은 모기관들이 너무 다양해요. 그러니까 지자체가 직접 운영을 안 하고 위탁 운영이 만연화되어 있는 거죠. 그렇다 보니까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다고 해도 그 중간에 거치는 기관들이 너무 많다 보니 그대로 내려올 수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은 거죠."
A씨는 정부가 시 도서관에 쏟는 예산만큼 실제로 현장에서 체감되는 변화는 없었다면서 이런 정책에 대해서도 다소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도서관과 연결된 타 기관들이 많다 보니 지원받는 예산들이 분산될 수밖에 없고, 실질적으로 정부의 뜻대로 도서관 시설 보완과 인력 확충이 실현되긴 힘들다는 게 현실이다.
도서관은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정규직 사서를 뽑을 수가 없어 비정규직 형태로 근로 계약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급여를 최대한 적게 제공하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기분이 좋을 순 없었다. 그러나 A씨는 다른 방법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어쩔 수 없죠. 저희는 그렇게라도 경력을 쌓아야 하니까. 11개월이든, 6개월이든, 3개월이든, 끊어서 계약하자고 해도 선택지가 달리 없어요."
통계상 공공도서관의 정규직 사서 수는 증가하고 있으나, 현장에선 계약직 중심의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계약이 끝나가는 사서들에게 남은 자리라곤 비정규직이 대부분 차지했다. 결국 안전하다고 여길 수 있는 정착지는 없는 셈이다.
-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의 최대 계약 기간은 어느 정도인가요?
"웬만해선 2년이 마지노선이죠. 그런데 보통의 도서관들이 1년 11개월, 이렇게 계약하려고 하지 2년을 잘 안 채우려고 해요. 2년이 넘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니까요."
이런 월 단위의 '끊어치기 계약'은 퇴직금 지급 의무를 회피하기 위해서였다. 결국 금전적·심리적 압박은 사서들의 몫이었다.
"서운할 시간도 없죠" 빠른 포기로 잃어버린 도서관에서의 시간과 추억
고용 불안정은 책을 즐길 여유도 사라지게 했다. 부족한 인력과 이로 인해 격화되는 업무와 민원 응대는 A씨에게 정든 도서관을 떠나야 한다는 슬픔도 빼앗아갔다.
- 이전에 있던 도서관에서 계약 만료 시점이 다가왔을 때 기분은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해서 별 감정도 없었어요. 이직 준비하기도 바쁜데 그럴 여유도 없죠. 사실 화가 나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 기관이 절 정규직을 시켜줄 리가 없다는 걸 알아서 빠르게 포기한 거지만요. 그럴 시간에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는 게 저에게 더 도움이 돼요. 어떻게 보면 좀 착잡하긴 해요."
A씨는 도서관에 자주 왔던 어린이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정든 사서 선생님과 헤어지는 것에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도 미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바쁜 현실은 그럴 감정의 찰나도 주지 않았다.
"애틋함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어요. 추억이라는 것도 여유가 있어야 돌아보고 하는 거지. 당장 눈앞에 놓인 일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돌아보고 하겠어요?"
'민원의 최전선', 도서관에서 일하기 위한 자세란
시민들이 가지고 있는 사서에 대한 이미지는 차분하고 편안하고 조용하다. 그래서인지 직장인 사이에서 도서관 근무에 일종의 '로망'을 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사서직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 않다. 사서 자격 취득은 문헌정보학 또는 도서관학 전공과 연결돼 있으며, 2급 정사서 자격증 역시 다수가 대학 전공자들이 취득한다. 단순히 책을 좋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다.
"부디 겉만 보고 사서직에 도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이 일을 그저 조용히 책 읽으면서 하는 업무라고 생각하고 오셨다가 한 달도 못 버티고 나가시는 경우도 있거든요."
A씨는 사서가 앉아서 편안히 근무한다고 아는 사람들의 편견을 깨는 사실을 알렸다. 그가 근무했던 도서관의 경우, 하루 평균 도서관에 상호 대차로 들어오는 책이 14박스나 되는 날도 있었다. 많을 때는 수천 권에 달하는 무거운 서적 더미를 다뤄야 했다. 들어오는 책 수량만큼 내보는 책들을 분류하고 옮기는 것도 그들의 일이다. 심지어 기본적인 미화도 사서가 담당하는 경우가 있다.
"미화원이 계시긴 하지만 주말에는 상주해 계시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작은 도서관이나 예산이 없어서 추가 인력을 고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평일이나 주말 상관없이 미화가 전부 저희 몫이죠."
하지만 가장 힘든 부분은 역시 '이용객 응대'였다. 공공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만큼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 종류만큼 다양한 요청 사항들을 들고 있다. 이 중에는 대응하기 어려운 짜증이나 무리한 요구도 많이 섞여 있다. A씨는 일반적으로 모든 민원은 사무실까지 가지 않도록 실무직 선에서 처리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사서라는 직업은 결국 '민원의 최전선'이죠. 이용자들을 직접 마주해야 하잖아요. 부적절한 짜증도 받을 때도 많고 그에 따른 감정적 소모가 커요. 많이들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에요."
A씨는 부디 사서로의 진로를 꿈꾼다면 절대 헛된 '로망'을 품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은은한 독서대와 책장 사이에서 우아하게 앉아서 편안히 책을 읽다가 웃으며 예의 바른 이용자들을 안내하는 아름다운 풍경. 불가능하진 않으나, 일상적인 사서의 모습은 아니었다.
- 그럼에도 사서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하자면 어떤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가요?
"하루라도 봉사를 먼저 해보시라고 하고 싶네요. 들어오는 책 양이 얼마나 되는지 직접 가늠해보시고 도서관 현장을 경험해보셨으면 해요. 기왕이면 주말에 몇 번 하는 걸로 끝내지 말고 꾸준히 해보시면서 일이 돌아가는 방식을 파악하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상상과는 많이 다른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작은 사랑방'에 사서가 있어야 하는 이유
사서는 엄연히 전공 기반 전문직으로 확실한 교육과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전문 자격이 필요한 직업이다. 그러나 도서관 내부의 여전한 고용 불안정은 그 전문성을 충분히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최근 들어 발전하는 AI의 기술력은 장차 사서직을 위협할 수 있는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실제로 정부 관할 대규모 도서관의 경우에는 데이터 관리 측면에서 AI 사용 비율을 늘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변화의 물결 속에서도 A씨는 묵묵히 작은 공공도서관의 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반납하고 대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강조했다.
"도서관에선 인간 사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분명 존재해요. 복합 문화 공간으로서, 혼자 사는 노인분들이라든지 학부모분들이라든지, 도서관을 모임의 장소처럼 이용하는 분들이 분명 존재하세요. 이런 분들에겐 그 장소가 일종의 작은 '사랑방', 공동체 공간인 거죠. 그래서 인간 사서가 필요해요. 그분들은 라포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교류를 원하고 오시거든요. 그런 서비스를 주는 건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A씨의 말대로 공공도서관은 현재 시 규모 공동체 커뮤니티 공간으로 그 위상을 높이고 있다. 최근 신설한 여의도 브라이튼 도서관에서도 개관과 거의 동시에 북 토크를 위시한 다양한 문화 체험과 전시를 개시하면서 지역 주민들을 끌어모으기도 했었다. 이 안에서 빛나는 핵심 가치는 결국 타인과의 교류, 관계였다. 인간만이 줄 수 있는 서비스가 사서가 아직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현장의 고된 모든 일을 견뎌낸 비정규직 사서, A씨는 마지막으로 물었던 질문에 담담하게, 솔직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 당신한테 도서관은 어떤 의미인가요?
"동반자? 그냥 말 그대로, 단어 그대로. 인생의 끝까지 함께할 그런 공간. 일터든 아니면 제 여가 생활을 하는 곳이든."
그 대답에서 짙게 묻어나는 건 경험이 낳은 도서관에 얽힌 사서의 애환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추경호 있는 '추사모' 단톡방 입수... "일(1)찍은 죽어야" "간첩 김부겸"
- 13년 만에 결실...'내란 심판' 만큼이나 중요한 게 있다
- 대통령만 기표소 재입장 가능? 국힘이 들고 온 사례 틀렸다
- '희망 고문' 이제 그만... 당신의 건강 지킬 후보 판별법
- [단독] 여인형, '내란 준비 문건' 내부 반발에 격노... 회의 박차고 나갔다
- 도서관 책에 낙서하라고? 서울 빌딩 숲에 있습니다
- 미국 스타벅스서 만난 사람들...'탱크데이' 말했더니 돌아온 반응
- [오마이뉴스·STI 예측] 경기 추미애 51.5% - 양향자 26.8%
- 이 대통령, 검찰에 "무오류의 함정 빠지면 안 돼"
- 하정우와 막판유세 전재수 "부산 일으킬 마지막 기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