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네로 25시’에서 코믹한 연기로 사랑받던 개그맨 정명재.

당시 유행어처럼 따라하던 엉터리 중국어, 술 취한 사람 연기, 그림 개그까지…
하지만 그렇게 웃음 한가득이던 그에게도, 긴 외로움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1995년, 자녀 교육을 위해 아내와 두 자녀를 미국으로 보내고 시작된 기러기 아빠의 삶.
“결혼한 지 10년 만에 떠났죠. 그땐 조금만 참으면 가족이 행복해질 줄 알았어요”

그로부터 27년, 정명재는 여전히 한국에 혼자 남아 식당을 운영 중입니다.
방송에서도 세대교체가 일어나 설 자리를 잃었고, 외환위기로 운영하던 회사도 무너졌지만, 그는 끝까지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1달러가 800원이던 게 2천 원이 넘었어요. 미국에 돈을 보낼 때마다 휘청였죠”

지인의 도움으로 어렵게 차린 작은 가게.
그곳에서 그는 여전히 손님에게 그림을 그려주고, 직원들과 밥을 나누며, 자신의 하루를 묵묵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게 근처에는 혼자만의 시간이 있는 작은 작업실도 마련해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마음을 다잡는다는데요.

가장 아끼는 그림은 가족을 그린 작품.
전시회에도 낼 만큼 정성을 들였습니다.

정명재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과제물, 손편지, 사진은 지금도 보물처럼 모아두고 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시절은 가족과 함께 살던 첫 집이었어요”
그는 지금도 그 시절을 종이에 다시 그리며 하루하루를 견딥니다.

“미국에 있는 아이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그는 담담히 말합니다.
“아이들이 한국에 있어도, 결국은 다 떠나요. 결혼하면 또 멀어지죠. 그거나 이거나, 장소만 다를 뿐 다 똑같아요. 기대는 이제 내려놨어요”

그래도 그는 오늘도 웃습니다.
손님에게는 유쾌한 멘트를 건네고, 지역봉사활동도 15년째 이어오며 사람들 곁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혼밥의 외로움이 싫어 시작한 식당이 이제는 그의 삶을 채우는 가장 따뜻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푸드덕 푸드덕… 기러기 아빠는 한쪽 날개로 노를 젓는다”
그가 쓴 시처럼, 정명재는 지금도 날개 한 쪽을 다쳐도 하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웃음을 주던 사람의 또 다른 얼굴.
그는 지금, 가족을 향한 그리움을 예술로 풀어내며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가 언젠가 다시 온 가족과 함께 웃게 될 날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