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지상주의를 우려한다

이용재 음식평론가 2024. 10. 4.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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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도 소위 '갓생'을 살았다.

단백질 위주의 식생활을 일찍 경험해 본 건, 이삽십대에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당은 빼고 단백질과 섬유질은 듬뿍 더했어요!' 포장의 숫자며 느낌표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활력이 솟았다.

흰자의 가장자리를 바삭하게 지져낸 계란 프라이에 올리브기름을 살짝 찍은 곡물빵, 기름기 없는 돼지 등심과 양파 볶음에 콩나물 무침, 콩을 많이 더해 지은 잡곡밥처럼 자연 식재료의 울타리 안에서 단백질과 섬유질이 보강된 음식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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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재의 음식시론
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한때 나도 소위 ‘갓생’을 살았다. 6시면 ‘칼퇴’를 해 체육관으로 향했다. 실내 트랙에서 5킬로미터를 달리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 뒤 수영으로 마무리를 했다. 두 시간에 이르는 운동의 마무리는 단백질 드링크였다. 가루를 물에 타 쭉 들이키면 온 몸의 근육에 빠르게 흡수되는 듯 쾌감을 느꼈다. 근 이십 년 전의 일이다.

닭가슴살도 열심히 먹었다. 좋은 레시피를 찾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웬만해서는 닭가슴살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야들야들하게 삶아 먹었다. 핵심은 ‘수비드(Sous Vide)’라 불리는 저온조리의 응용이었다. 끓는 물이 아닌, 뜨거운 섭씨 80도의 물에 닭가슴살을 담가 내부 온도가 71도가 될 때까지 둔다. 뻣뻣하거나 목이 메지 않도록 익힐 수 있다. 이건 대략 십 년 전의 일이다.

요즘은 둘 다 열심히 찾아 먹지 않는다. 비상식량처럼 단백질 가루 한 봉지를 두고 가끔 닭가슴살을 썰어 채소와 볶아 먹기는 한다. 하지만 끼니 대신 먹지도, 간식으로 삼지도 않는다. 잡곡밥이나 통밀빵에 채소의 비중이 높은, 평범한 끼니를 차려 먹는다. 끼니 사이 간식으로는 아몬드를 한 줌 정도 찬찬히 씹어 먹는다.

단백질 위주의 식생활을 일찍 경험해 본 건, 이삽십대에 미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선 진작부터 모든 식품이 개별 영양소를 강조해 홍보했다. ‘당은 빼고 단백질과 섬유질은 듬뿍 더했어요!’ 포장의 숫자며 느낌표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활력이 솟았다. 이런 음식만 골라 먹으면 근육질의, 튼튼하고 멋진 사람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50대를 눈앞에 둔 요즘은 그런 식품을 피한다. 일단 하루 세 끼 먹는 식사에 최대한 자연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크다. 흰자의 가장자리를 바삭하게 지져낸 계란 프라이에 올리브기름을 살짝 찍은 곡물빵, 기름기 없는 돼지 등심과 양파 볶음에 콩나물 무침, 콩을 많이 더해 지은 잡곡밥처럼 자연 식재료의 울타리 안에서 단백질과 섬유질이 보강된 음식이 좋다.

한편 특정 영양소가 강화된 식품이 궁극적으로는 초가공식품이라는 점 또한 이제 더 이상 먹지 않게 된 이유이다. 15년 전 미국에서 흔히 보았던 단백질 강화 드링크류 등이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았다. ‘당류 0그램, 단백질은 20그램’ 같은 식으로 수치를 내세워 홍보한다. 맛이 있을리도 없지만 궁극적으로 몸에 안 좋은 초가공식품과 뿌리가 같다.

이런 단백질 지상주의의 선봉에 유업회사가 있다. 단백질의 주공급원이 치즈를 만들고 남은 액체인 유청인데다가, 우유의 수요가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새로운 활로를 모색 중이다. 기업의 시각에서는 참으로 명민한 행보이지만 소비자의 입장에서 우려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음식은 단순히 그것을 이루는 성분 혹은 영양소의 총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잡식동물의 딜레마’ 등으로 한때 음식과 건강 관련 화두를 맹렬히 던졌던 마이클 폴란의 개념 영양주의(nutritionalism)의 핵심이다. 사실 영양소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건강식품으로 위장한 초가공식품은 먹는 즐거움이며 음식의 사회적 기능 등을 원천봉쇄하고 식사를 영양소 섭취 행위로 전락시킨다. 통풍 등 과잉섭취의 부작용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단백질 지상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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