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 라빈이 말하는 예술의 공명

권아름 2024. 10. 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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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 컬렉션 디렉터 엠마 라빈은 현대 예술가들의 내밀한 언어를 발굴하고 세상과 공유한다.
엠마 라빈
파리의 저명한 공공미술관 관장을 역임하고 현재 피노 컬렉션을 이끌고 있는 엠마 라빈은 현대미술과 관객을 잇는 다리를 놓고, 신선한 예술적 경험을 창조하는 데 집중한다.

2011년 피노 컬렉션을 ‘송은’에서 처음 선보인 후 두 번째 전시입니다. 이번에 선보인 〈피노 컬렉션: 컬렉션의 초상〉전은 2021년 부르스 드 코메르스의 개관전 〈우베르튀르 Ouverture〉와 연결돼 있다고요

〈우베르튀르〉는 코로나19 직후에 열린 전시로, 피노 회장은 인간의 존재를 탐구하는 초상화 작품을 소개하고 싶어 했어요. 마를렌 뒤마(Marlene Dumas), 미리암 칸(Miriam Cahn),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 등의 작가들이 참여해 구상과 추상을 넘나들며 인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주었죠. 이번 송은 전시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한국 관람자에게도 피노 컬렉션의 폭넓고 다채로운 예술적 탐구를 종합적으로 선보임과 동시에 인간과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13년 만에 다시 만나는 한국 관람자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선정한 기준은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들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스위스 작가 미리암 칸의 작품은 구상적이면서도 표현방식이 강렬해 한국 관람자에게도 큰 인상을 줄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 피노 컬렉션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브라질, 중국, 알바니아, 벨기에 등 세계 각국의 작가를 포함하고 있어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작가들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시각예술가 타티아나 트루베(Tatiana Trouve`)의 작품은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대규모 모노그래피 전시를 앞두고 있어 그 작업을 한국에서 소개하게 된 건 매우 가치 있는 일이죠.

이번 전시에서 작품을 배치할 때 특별히 고려한 점이 있다면

송은의 독특한 건축적 구조를 최대한 반영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각 작품이 공간 속에서 서로 대화할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그리고 지하 공간에는 도미니크 곤잘레즈-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의 설치미술 작품을 두어 오페라 가수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의 곡으로 감상 몰입도를 높였어요. 또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Felix Gonza′lez-Torres)의 시간과 인간관계를 의식하게 만드는 작품을 통해 24시간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얀보(Da′nh Vo), ‘Untitled’(2020).

프랑수아 피노는 50여 년간 1만여 점의 작품을 수집해 왔습니다. 이 컬렉션은 단순한 미술 작품의 집합을 넘어 동시대 예술의 본질적 질문과 사유를 담고 있어요. 작품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과 접근방식을 가지나요

상업적 성공이나 유행을 기준으로 삼지 않아요. 현대사회의 본질을 깊이 탐구하고, 이를 작가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작품을 중시하죠. 예술적 언어를 통해 시대와의 대화를 시도하는 작가들을 찾아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하며, 그들의 비전을 관람자들과 공유하려고 합니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팔라초 그라시, 푼타 델라 도가나 그리고 프랑스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 미술관을 통해 피노 컬렉션을 소개하고 있는데, 총괄책임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피노 컬렉션은 미술사를 구성하려는 목적보다 한 수집가가 자신의 직관과 취향 그리고 열정에 따라 모은 작품으로 이뤄져있어요. 중요한 것은 관람자들이 전시를 통해 컬렉션의 다채로운 작품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내 역할은 이 다의적인 작품을 어떻게 더 많은 이에게 소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죠.

당신은 퐁피두 센터와 팔레 드 도쿄 같은 파리의 주요 공공미술관에서 이력을 쌓아왔습니다. 공공미술관과 사립 컬렉션을 큐레이팅하는 데 차이점이 있다면

공공미술관에서는 미술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지만, 피노 컬렉션은 그보다 자유로워요. 피노 컬렉션은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전시를 구성합니다. 하나는 그룹전이나 주제별 전시, 또 하나는 작가별 모노그래피 전시죠. 모노그래피 전시는 공공미술관과 크게 다를 것 없어요.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모아 그들의 세계관을 충실히 반영합니다. 하지만 주제별 전시의 경우 피노 컬렉션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기획해요. 그러나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구성되는 것은 아니에요. 프랑수아 피노는 항상 새로운 모험을 시도하라고 격려하기 때문이죠.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으로 채워진 웰컴 룸.

프랑수아 피노와의 협력에서 가장 영감을 받은 순간은

그의 열정은 늘 큰 영감을 줘요. 공공에서 사립미술관으로 옮기게 된 이유 중 하나도 그의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와 선구적 시각 때문이었죠. 피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인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가 널리 알려지기 전부터 주목해 왔어요. 특히 그는 작가에 대한 충실성과 우정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몇몇 작가의 작품을 오랜 기간 수집해 왔어요. 이런 태도는 내게 도전과 모험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줍니다.

현대미술을 통해 강조하고 싶은 주제나 사회적 담론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피노 컬렉션의 전시가 동시대를 반영하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지금의 시간을 예술을 통해 공유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요. 예술 작품은 사회를 설명하는 도구는 아니지만, 작가들이 세상에 대한 시각을 표현하고 관람자들이 이를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 전시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우리 시대에 깊은 인식을 나누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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