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트럼프가... 티켓 예약하고도 입장 못한 이유
[장소영 기자]
▲ 18일(현지시간)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유니언데일에 있는 나소 콜로세움에서 열린 대선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다. 14일 플로리다주 트럼프 인터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있었던 두번째 암살 시도 이후 첫번째 유세다. |
ⓒ 연합뉴스 |
지난 2022년 뉴욕 주지사 선거에서 롱아일랜드에 기반을 둔 공화당의 리 젤딘 후보가 약진하며 민주당의 캐시 호컬 후보를 긴장시킨 지역이다. 공화당의 조지 샌토스 의원이 허위 이력과 선거 자금법 위반으로 제명되면서 치러진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의 톰 수오지 의원이 의석을 탈환하긴 했지만, 공화당 후보가 돌풍을 일으켜 주목받기도 했다.
지난 2020년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에서도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는 '보트 랠리'가 바다 위에서 열리는가 하면 지지 깃발을 걸고 스탠드를 꽂은 주민을 쉽게 볼 수 있다.
롱아일랜드에서 열린 트럼프의 유세를 보기 위해 일찌감치 예약부터 했다. 아들이 퇴근하면 함께 가려고 두 자리를 예약하고 확인 문자도 받았으니 당연히 입장이 될 줄 알았지만 오판이었다.
행사 시작은 오후 7시였으나 12시간 전부터 콜로세움 주변은 몰려든 차량으로 인해 혼잡했다. 문자 안내로는 오전 9시에 주차장을 먼저 개방한다고 했는데 출근길에 이미 주변이 마비된 걸 보았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도로 상황과 함께 우회하라는 글이 여러 개 올라오고 있었다.
▲ 지난 18일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가 열린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나소 콜로세움 |
ⓒ 장소영 |
예약 확인 문자를 자세히 보니 좌석이 아니라 입장 가능한 신분 확인용 예약이었고 작은 글씨로 선착순이라고 쓰여 있었다. 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혼자 오전 10시쯤 줄을 서기 위해 행사장에 도착했다. 이미 수천 명의 지지자들이 겹겹이 줄을 서 있었다. 주최 측에 따르면 1만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행사장에 입장하기 위해 6만여 명이 신청했다고 한다.
입장을 포기한 것은 긴 줄 때문만은 아니었다. 예약 티켓 덕에 정문 주차장은 통과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9시간을 콜로세움 안에서 버텨야 하므로 물과 먹거리, 겉옷 등의 소지품을 가득 챙겨 백팩에 넣어갔는데 큰 사이즈가 문제였다. 투명한 가방이나 작은 가방만 검문에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친절한 안내원이 미리 이야기를 해주어 '줄 지옥'에 갇히기 전에 돌아설 수 있었다.
행사장 주변에서 만난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트럼프를 포함한 미국의 가치를 지지하기 위해 왔다"는 이에게 미국의 가치가 무엇인지 묻자 갑자기 줄을 서야 한다며 되돌아갔다.
근사한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맨 젊은이에게 아직 이른 아침인데 그 복장으로 오랜 시간 기다리려면 힘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해리스가 거짓말쟁이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왔다"면서 "아무도 연설이 지루해서 자리를 뜨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보라. 10시간도 괜찮다"고 답했다. 지난 10일 있었던 첫 대선 토론에서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 후보가 '트럼프 유세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지루해서 일찍 자리를 뜬다'며 도발적으로 발언한 것을 빗댄 듯했다.
주차장에서 만난 한 지지자 가족은 "서둘러 왔는데 못 들어갈까 불안하다"면서 십대 자녀는 학교도 빠지고 왔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책임지는 중요한 사회문화 행사 참여는 정당한 결석 사유가 된다. 개봉을 앞둔 트럼프의 흑역사를 다룬 영화 <어프렌티스>에 대해 물었더니 "모른다"면서 "그게 뭐든 문제없을 것이다. 암살 시도도 이겨냈다. 우리는 더 강하게 뭉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행사장 입장에 실패하고 행사 시간에 주변에 머물렀다는 한 청년에게 연락해 보았다. 모니터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지지자들이 워낙 많아 모니터는 물론 편의시설이 부족했다고 했다. 또 다른 청년은 행사장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 질겁했단다. 이왕이면 지지하는 후보의 깨끗한 이미지를 위해 질서도 잘 지키고 정리까지 잘하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전했다.
▲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자들이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나소 콜로세움 밖에서 대형 스크린을 통해 대선 유세를 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트럼프는 또한 경찰 지원 예산 확대, 노후한 다리와 고속도로 같은 공공재 재건, 그라운드 제로(911 기념 공원) 국가 기념물 지정, 주정부 및 지방세 공제 한도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의 연설은 기존 트럼프 행정부의 노선을 확인시켜 주고 뉴욕과 롱아일랜드 주민의 관심 분야를 정확히 읽어낸 것으로 보였다. 특히 범죄와 이민자 문제가 그랬다. 남부 국경을 무단으로 넘어온 이민자들이 뉴욕으로 대거 보내지면서 뉴욕주에서는 주민을 위한 예산과 공공서비스는 축소되고 이민자 지원 정책의 예산이 대폭 확대되었다.
트럼프는 이 점을 짚으며 '세금을 내는 주민과 주민을 보호하는 경찰에 대한 지원'과 연결시켰다. 지난 3월 교통 단속 중 총에 맞아 사망한 뉴욕 경찰관 조나단 딜러의 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2016년 MS-13 갱단에게 살해된 롱아일랜드의 청소년 미켄스와 쿠에바스의 사건도 언급했다. MS-13은 롱아일랜드 지역에서 활동하는 살바도르 출신의 악명높은 갱단이다.
한편, 이날 <뉴욕타임스>는 치열한 경합주 가운데 하나인 펜실베이니아에서 해리스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갔고 미국 공화당 행정부에서 일했던 전직 외교·안보 당국자 100여 명이 해리스 지지선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을 다시 수행하기에 부적합하다는 이유였다. 리즈 체니 전 하원의원을 비롯한 공화당 내 주요 인물도 트럼프에게 투표하지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도전을 포기하기 전 민주당 내부에서 그를 두고 분열 조짐을 보였던 상황이 공화당으로 옮겨 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상이 실제 유권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지는 알 수 없다. 콜로세움에서 만났던 지지자의 말처럼 외부의 악재가 오히려 내부의 결속력을 높여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통령, 정상일까 싶다... 이런데 교회에 무슨 중립 있나"
- 박영근 작품상 반납한 조성웅 "조혜영 시인의 '미투', 외면할 수 없었다"
- [단독]"'김건희 사기꾼' 표현, 한국대사관 이의 제기로 수정"
- 윤석열·김건희 비판하자 행정관료들이 벌인 일
-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 금투세는 '재명세'가 아니라 '주가조작방지세'다
- 뇌졸중 뒤 몸이 불편해진 아빠, 그건 민폐가 아니에요
- [손병관의 뉴스프레소] "김건희 공천 루트가 이철규", 또 다른 폭로
- 한미일 외교장관 "연내 3국정상회담 개최 위해 적극 노력"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독대 공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