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서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신수연 기자]
걷고, 배를 타고, 바닷속을 다이빙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제주 전역의 해양보호구역을 탐사하고 기록할 탐사대원을 모집하자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신청했다. 그렇게 만난 6명의 탐사대원과 함께,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과 해양다큐멘터리 제작팀 '돌핀맨'은 5월부터 8월까지 4차례에 걸쳐 제주 해양보호구역 14곳을 탐사하였다.
▲ 추자도를 향해 출발하는 제주해양보호구역 파란탐사대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불(화산)과 물(바다)의 조화로 형성된 성산일출봉과 보호가 필요한 공간인데도 정작 도립 공원 부지에는 포함되지 않아 난개발된 섭지코지(탐사기①), 인구 1600명의 작은 섬에 한 해 관광객이 160만 명에 달하지만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개발 중인 우도(탐사기②), 드물게 주민들의 신청으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으나 사유지로 인해 지정 면적이 아쉬웠던 오조리(탐사기③), 엄청난 탄소 저장 능력으로 주목받고 있는 천연 잘피 군락지 토끼섬(탐사기④), 세계 최대 규모의 해상풍력 단지가 들어설 계획에 찬반으로 주민 의견이 갈린 추자도 그리고 추자도 연안의 슴새와 상괭이, 천연잘피와 해조류(탐사기⑤, ⑥), 관광잠수함 운항에 따른 연산호 군락 훼손으로 쟁점이 되었던 서귀포 문섬·범섬 천연보호구역(탐사기⑦), 여러 보호구역으로 중복지정된 곳이지만 '이용'에 치중되어 있는 서귀포 해양도립공원(탐사기⑧), 미역이 실종되고 해안사구가 사라지고 있는 마라도(탐사기⑨), 올여름 6주 연속 이어진 고수온 현상으로 녹아내리고 있는 제주연안연산호군락(탐사기 ⑩), 복합 화산체가 빚어낸 다양한 암석과 지형으로 감탄을 자아냈지만, 잔뜩 쌓인 해양 쓰레기로 탄식도 하게 된 차귀도(탐사기⑪)까지...
어느새 탐사를 마치자 시작 무렵 탐사대원들과 나눈 질문을 다시 떠올렸다.
▲ 서귀포 문섬 주변에 관광잠수함과 바지선, 어선, 다이빙선 등이 보인다 |
ⓒ 파란탐사대 박성준 |
'바다'라고 하면 드넓고 탁 트인 경계 없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쉽지만, 탐사대가 마주한 연안 바다는 어업과 관광, 개발, 그곳에 원래부터 깃들어 살던 해양 생물들의 서식지가 마구 중첩되어 아수라장인 꽤나 복잡한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해양보호구역, 습지보호지역, 해양도립공원 등 '보호'를 명목으로 지정된 각종 보호구역이 예상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변한 바다... 이제 바다에 웬만하면 들어가지 않"는다던 39년 차 프로다이버, "바다가 나보다 더 빨리 병들고 늙었다"는 우도 해녀의 탄식, "바다가 키우고 내어준 미역이 사라진 게 가장 아픈 기억"이라던 마라도 주민의 말이 떠오른다.
▲ 서귀포 범섬 직벽에서 산호를 기록하는 모습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바다에서의 거리두기는 얼마만큼이 적정한 것일까. 제주해양보호구역 탐사대를 공동기획한 해양다큐멘터리 제작팀 돌핀맨의 배 배롱호를 타며 어느 순간 바다에서의 적정한 거리두기에 대해 깨달았다.
네 번째 탐사를 앞두고 지난 8월 15일 돌핀맨에게 급한 연락이 왔다. 낚싯줄에 걸린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구조가 필요해 탐사대 일정에 늦을 거라고 했다. 종달이가 낚싯줄에 얽힌 채 발견된 지난해 11월 초, 돌핀맨과 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 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는 '제주돌고래 긴급구조단'을 결성했고 모니터링과 구조활동을 지속하던 터였다.
긴급구조단은 올 1월 종달이의 꼬리지느러미에 늘어져 있던 낚싯줄을 제거했고, 8월 16일에는 종달이 몸통에 얽힌 낚싯줄 절단에도 성공했다. 낚싯줄로 인해 등이 굽은 채 다니던 종달이는 무리들과 한층 빠르고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돌핀맨이 어미와 함께 다니는 야생 상태의 새끼 돌고래를 구조하는 광경을 보며, 도나 해러웨이가 말한 '응답 능력'을 떠올렸다. 생태 위기 시대에 문제적 상황 속에 살며 인간-비인간, 종 간의 응답력을 키우자는 것이다.
바다에서 고된 훈련을 거듭하며 구조 수단으로 분리형 후프넷과 절단용 장대를 실제 사용하기까지, 구조 개체를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부상 입은 상태와 환경을 읽고 돌고래의 반응에 따라 어떻게 대응할지 시뮬레이션하기까지 구조단은 바다를 '돌고래의 공간'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것이다.
▲ 2024년 8월 16일 종달이 주둥이에서 꼬리로 이어진 낚싯줄을 절단하다. |
ⓒ 제주돌고래 긴급구조단 |
▲ 2024년 8월 16일 새끼 남방큰돌고래 종달이 몸통 낚싯줄 절단 성공 |
ⓒ 제주돌고래긴급구조단 |
바다의 위기 신호가 거듭된다. 수온 상승, 유해 물질과 플라스틱 오염, 과도한 어획과 어업, 해안 지역의 난개발과 매립으로 해양 생물은 서식지를 잃고 있다. 위기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는 해양보호구역 제도를 도입하고, 공동의 목표를 설정했다. '30by30', 2030년까지 전 세계 해양 면적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현재보다 15배 가까이 해양보호구역을 확대해야 하는 숙제를 갖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지정만 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문서상의 보호구역(paper-park)으로만 남을 것이다.
현재 제주도에 해양보호구역 관련 2개의 계획이 준비 중이다. 하나는 제주특별법을 개정해 제주남방큰돌고래를 국내 최초 '생태법인 1호'로 지정하겠다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의 계획이다. 생태법인은 사람 이외에 생태적 가치가 중요한 자연환경이나 동식물 등과 같은 비인간 존재에 법인격을 부여하는 제도이다. 남방큰돌고래의 권리를 대변할 '후견인'을 통해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 주요 서식지를 유지하기 위해 해당 공간은 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 제주 관탈도 주변해역 해양보호구역 범위설정(안) |
ⓒ 해양수산부 |
바다를 이용할 때, 관광 선박과 해상풍력기는 해양 생물 서식 공간과 얼마만큼의 이격거리를 두어야 할까. 해양보호구역 확대 계획 만큼, 구체적인 관리 계획이 필요하다. 행위에 대한 규제, 이격 거리에 대한 규정, '이용'으로 한없이 기울어져 있던 무게 중심을 '보호'로 전환해야 한다. 다른 종에 대한 응답 능력, 불러도 서로 들리지 않는 거리에 대한 연구와 반영이 필요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주투데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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