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리으리한 재벌집 대문 열렸다…옛 양옥집 들어간 '스벅' 왜 [비크닉]
■ b.플레이스
「 “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
서울 장충동 동대입구역 인근. 번화한 차도를 뒤로하고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에 다다르면 “이런 곳에 카페가 있나”하는 생각에 자꾸 지도 앱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단층 주거지대. 커다란 대문과 주차장을 몇 개 지나치다 보면 드디어 카페 간판이 등장하네요. 바로 지난달 문을 연 스타벅스 장충라운지R점 얘깁니다.
한동안 한옥을 개조해 상업공간으로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면, 요즘은 양옥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1960~70년대 지어진 정원 딸린 커다란 주택이 주인공이죠. 스타벅스 같은 커피 브랜드가 자리하기도 하고, 지방의 줄 서는 맛집이 칼국수를 파는 공간으로 삼기도 합니다. 매장으로 쓰이기도 하고, 팝업이나 전시회 용도로 쓰이는 복합 문화 공간 역할도 하고요. 오늘 비크닉은 주거 공간에서 상업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는 옛 양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누군가의 집에 초대된 듯
요즘 화제의 공간으로 떠오른 장충라운지R점은 스타벅스의 10번째 스페셜 스토어에요. 스타벅스는 지난 2020년 경기도 양평군에 문을 연 더양평DT점을 시작으로 ‘스페셜 스토어’ 전략을 펼치고 있어요. 카페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 있는, 말 그대로 특별한 매장이죠.
장충라운지R점은 상업지대가 아닌 주택가 안쪽 깊숙이 자리한,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어요. 그런데도 평일에도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루죠. 비결은 바로 공간의 힘. 1960년대 지어진 규모 있는 저택을 멋스럽게 재해석했어요. 마치 부잣집 응접실에 초대된 듯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죠. 실제로 이곳은 대선제분 창업주 박세정 회장 일가가 살았던 집으로 알려졌어요.
공간 곳곳은 옛 흔적을 고스란히 살렸어요. 1960년대 부잣집 양옥이라면 무조건 있을 법한 너른 정원과 차고·기둥·집 안의 계단·벽난로·샹들리에 등 디자인 요소가 눈에 띄죠. 스타벅스 스토어 컨셉 기획팀에 따르면 특히 공간 구성과 배치에 공을 들였다고 해요. 흔히 카페 같은 상업 공간은 탁 트인 시선을 중시하지만, 이곳은 실제 가정집처럼 공간이 방과 방으로 분할돼 있어요. 덕분에 카페 곳곳, 햇살이 내리쬐는 창가에 테이블을 두고 지인들과 담소를 나누는 사교적인 응접실 풍경이 재현되죠.
‘재벌집 막내아들’ 그 집의 변신
지난달 24일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문을 연 ‘도모헌’도 비슷한 사례예요. 옛 부산시장 관사로 쓰였던 공간이 약 40년 만에 일반에 전면 공개됐죠. 앞으로 다양한 전시와 행사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인데, 1층 한쪽에는 이미 커피전문점 ‘모모스 커피’가 입점했어요. 정원을 바라보며 즐길 수 있는 장소이다 보니 오픈 시간부터 사람들이 몰릴 만큼 인기가 많아요.
이 주택은 1984년 건축된 김중업 건축가의 후기작으로, 역시 1980년대 당시 한국의 고급 주거 건축 양식을 반영한 설계로 넓은 정원이 있는 붉은 벽돌의 2층 집이 시선을 끌어요.
과거 대통령의 지방 숙소로 쓰였던 이력이 있는 만큼 내부는 으리으리합니다. 덕분에 지난 2022년 화제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JTBC)’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고요. 일반 공개를 위해 최욱 건축가가 리모델링에 참여했어요. 그 과정에서 집을 정원과 라운지, 다목적 공간 등으로 구성했는데, 관사로 쓰였던 만큼 실제 거주 공간의 아늑함을 살린 공간도 두루 섞여 있어 곳곳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죠.
이 밖에 지난달 서울 종로구 계동길에 문을 연 ‘신라제면 안국점’ 역시 근대 양옥을 개조한 공간으로 눈길을 끌고 있어요. 경북 경주의 칼국수 맛집이 서울에 지점을 내면서 육중한 기둥이 인상적인 석조 주택에 자리를 잡은 거죠. 오는 24일 문을 여는 커피 전문점 ‘푸글렌’도 서울 마포구 상수역 인근의 한 주택을 개조해 문을 열 예정이에요. 짙은 체리 나무 패널로 마감한 낮은 천장을 그대로 둬 오래된 주택의 매력을 살렸죠.
연남·상수가 원조….‘뉴트로’ 맛집
주거지를 상업 공간으로 개조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대 초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서 연남동과 상수동, 합정동 쪽으로 상권이 확장하면서 뚜렷하게 나타났어요. 상권이 팽창하면서 동시에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현상이 생겼고, 좁은 골목 주택가까지 상업 공간이 들어섰죠.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기업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서 공간 컨설팅을 담당하는 정원욱 부장은 “당시 연남·상수동의 오래된 건물, 좁은 골목의 거주용 다가구 주택 1층과 2층에 젊은 예술가와 창업가들이 소규모 카페나 공방을 열고 주거 공간을 트렌디하게 변모시켰던 것이 대중에게 신선하게 다가갔고, 이후 주거 자산을 상업 공간으로 용도 변경해 개조하는 것이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설명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개조의 흐름이 한때 한옥에서 최근에는 1960~80년대에 주로 지어졌던 양옥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거죠. 공간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옛 양옥은 한옥만큼이나 신선해요. 아파트에서 태어나 자란 세대에게 집 안에 있는 육중한 기둥과 계단, 너른 정원 등은 충분히 비일상적인 경험이니까요. 이층 양옥을 부의 상징으로 인식하는 중장년층에게는 친근하게 다가가죠. 옛것을 새롭게 보이게 하는 이른바 ‘뉴트로’ 콘텐트인 셈이죠.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의 정 부장은 “양옥 개조로 이슈가 된 사례로는 지난 2021년 공개된 서울 종로구 북촌의 ‘설화수의 집’을 들 수 있다”며 “한옥과 1960년대 양옥을 절묘하게 섞어 성공적으로 풀어내면서 당시 주류였던 한옥 개조에서 양옥 개조의 흐름이 가속했다”고 분석했어요.
공간에 이야기를 담다
북촌 ‘설화수의 집’으로 양옥이 가진 매력을 발산했던 아모레퍼시픽은 최근 바로 옆 또 다른 2층 양옥집을 개조해 ‘뷰티 과학자의 집’이라는 팝업 공간을 오픈했어요. 일종의 전시관으로 바로 직전에는 ‘조향사의 집’이라는 제목의 전시가 이뤄졌던 공간이에요. ‘집’이라는 콘셉트를 살려 서재·정원·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에 70여년에 걸친 아모레퍼시픽의 연구 여정을 담아냈죠.
이곳 뷰티 과학자의 집은 옛 양옥의 상업적 개조가 왜 최근 들어 유독 인기를 끄는지 알게 해줘요. 우선, 시간이 쌓인 공간에서 브랜드의 유산(헤리티지)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고은영 아모레퍼시픽 넥스트 스페이스팀 디자이너는 “오래된 건물이 간직한 시간의 흐름은 억지로 만들어내기 어려운 것”이라며 “이는 오랜 시간 기업이나 브랜드가 충실히 만들어온 자산과 비슷한 성격의 것”이라고 설명했죠.
또한 오래된 주택의 특징인 복잡한 동선은 브랜드의 이야기를 담는 좋은 그릇이 됩니다. 일반적인 상업 공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창고로 쓰던 지하, 다락방, 구석에 숨은 작은 방이 브랜드의 스토리텔링과 절묘하게 만날 때 공간적 시너지가 생기는 거죠. 또 방과 방으로 작게 구분된 공간은 요즘 사람들이 원하는 다채로운 경험을 연출하기에 최적의 구조고요. 실제로 스타벅스 장충라운지R점의 스토어 컨셉 기획팀 관계자는 “1960년대 양옥집을 재생하면서 건축가의 방·음악 룸·거실 등 방마다 콘셉트를 다르게 구성해 여러 번 방문해도 공간마다 각기 다른 경험을 받을 수 있도록 의도했다”고 말했어요.
과거와 현대의 경계를 허무는 옛 양옥의 재발견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 세월의 무게가 있는 건축물은 그 자체로 풍성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니까요. 굳이 신축이 아닌 오래된 건물을 개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겠죠. 오늘 소개한 공간 중 어떤 곳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가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나들이 삼아 한 번쯤 다녀와 보길 권할게요.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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