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방의 해고노동자는 어떻게 한국 사회를 흔들었나
[임미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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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총궐기 2015년 11월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당시 물대포가 쏜 물줄기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 옆을 지나가고 있다. |
| ⓒ 한상균 |
이전에도 사회운동 세력의 조계사 피신 사례가 없지는 않았으나 전국적 관심 속에 시민들의 최대 집결지가 된 것은 2015년이 처음이었다. 당시 한국 사회 최전선이 한상균을 중심으로 그어진 까닭은 그가 단순한 민주노총 위원장이 아니라 '투쟁하는 위원장'이었기 때문이었다.
"변방의 해고노동자, 민주노총 63만 조합원의 대표 되다"
한상균은 2014년 12월 26일 민주노총 첫 직선제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국민파·중앙파·현장파로 나뉜 정파 중 그는 가장 힘이 약한 현장파에 속했고, 중앙무대에 등장한 적 없는 변방의 해고노동자였다. 그런 그가 단숨에 63만 조합원을 대표하게 된 것은 '투쟁하는 노동자'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시기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투쟁이 거세지자 조합원들은 강력한 대정부 투쟁을 이끌 리더를 원했고 한상균은 그에 가장 부합하는 사람이었다.
한상균이 세상에 존재를 알린 것은 2009년 쌍용자동차 투쟁(쌍차 투쟁)에서다. 사측이 전체 노동자의 36%에 해당하는 2,646명의 대량 해고를 발표하자 노조는 5월 21일 평택 공장을 점거하고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정부와 회사는 공권력과 용역 투입, 물·식량 차단 등 강경 탄압으로 대응했다.
점거농성은 헬리콥터, 크레인, 테이저건 등 대테러 장비를 동원한 경찰에 의해 강제진압될 때까지 77일간 계속됐다. 쌍차 투쟁은 대량 해고와 구조조정에 맞선 노동자들의 극한 투쟁과 연대의 상징이 됐고 당시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었던 한상균은 '옥쇄(玉碎) 투쟁'이라 불렸을 만큼 강경한 농성을 이끌면서 투쟁적 리더십의 진면목을 세상에 보여주었다.
쌍차 노조, 위기가 닥치니 "물불 안 가리고 싸울 놈" 필요
한상균은 쌍차 투쟁 불과 5개월 전인 2008년 12월 지부장에 선출됐다. 이전에 세 차례 출마했지만 모두 낙선했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당시 노조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아 쌍차 노조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지만 선거는 정치였다. 전남 나주군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찐한' 사투리를 쓰는 '촌놈'한테 표를 줄 노조원은 없었다.
전남기계공고를 졸업하고 입사한 부산의 거화자동차가 동아자동차공업을 거쳐 쌍용그룹으로 인수되지 않았더라면 평택까지 올 일도 없었다. 특히 쌍차는 '학출'(학생운동 출신 노동자) 하나 없는 변방이었다. 전국 조직 대신 지역 선후배들이 모여 만든 파벌인 "양파, 쪽파, 대파"만 수두룩했다. 한상균은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못했다.
쌍차가 꾸준히 성장하며 시장 점유율을 높여갈 때, 2000년대 초반 SUV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질 때는 싸우는 노조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니 달라졌다. 노동자들은 영리했다. "물불 안 가리고 싸울 놈"이 누군지 알아챘다. 그렇게 한상균은 쌍차노조 지부장으로 선출돼 한국 사회를 진동시킨 77일간의 투쟁을 이끈 뒤 해고노동자가 됐다.
민중총궐기 주도,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되다
투쟁하던 변방의 해고노동자 한상균은 민주노총 첫 직선제 위원장이 돼서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를 주도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한 대중 시위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여러 민중운동단체와 연합해 전국적이고 단일한 마스터 플랜 하에 대규모로 조직된 집회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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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정규직 철폐! 2015년 12월 10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에서 나와 ‘비정규직 철폐’ 머리띠를 묶고 있다. |
| ⓒ 한상균 |
- 쌍용차 해고노동자 투쟁은 사회적으로 큰 상징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다른 방식"의 투쟁도 가능했는가.
"다른 선택지는 사실상 없었다. 이명박 정부가 기업의 노동자에 대한 생사 면탈권을 자유롭게 하려는 시범케이스로 쌍용차를 선택했다고 보았다. 투쟁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된 것은 큰 고통이었지만, 만약 그 투쟁이 무너졌다면 한국 사회 전체 노동자들이 '해고의 자유' 앞에 노예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 희생은 너무나 쓰라렸지만, 다른 방식으로 회피하거나 저울질할 수 없는 문제였다."
조계사 나올 때 "비정규직 철폐" 머리띠 매
- 제1차 민중총궐기 집회로 조계사에 피신했다가 나올 때 비정규직 머리띠를 맨 장면이 유명하다. 왜 그랬는가.
"현재 우리 사회에는 중간 착취 문제와 불안정 노동이 급증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여전히 이 문제들을 중요한 사업으로 다루고 있지만 조합원들은 각 사업장 내 문제에만 몰두하는 상황이다. 언론의 주목이 예상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를 최우선의 쟁점으로 삼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 쌍차 투쟁 후 3년, 민중총궐기 후 8년 선고받아 3년 뒤 가석방됐다. 두 번의 수감생활은 어땠는가.
"감옥은 외부와 '단절된 안락함'이 있는 공간이다. 밖에서 투쟁하는 동지들이 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밖이 더 큰 감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첫 감옥 생활은 1년이라 좋은데 두세 바퀴 돌다 보니 좀 힘들 때가 있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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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리찾기 권리찾기유니온의 “일하는 사람 누구나 권리찾기 1000일운동” 시작 기자회견 모습. |
| ⓒ 권리찾기유니온 |
- 출소 다음 해인 2019년 10월 <권리찾기유니온 '권유하다'>를 설립했다. 기존 노조에 가입하기 어려운 5인 미만 사업장, 비정규직, 개별 노동자 등 노동 사각지대 노동자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고 직접 행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라고 알려졌는데 어떻게 만들게 됐는가.
"인권상 받은 돈도 일부 들어갔지만 주로 감옥에서 모은 영치금으로 만들었다. 아내가 '그 돈을 사사롭게 쓰면 안 된다'고 한 말이 크게 작용했다. 가짜 5인 미만 사업장, 가짜 3.3 노동으로 근로기준법을 회피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목표다. 당사자 운동이라는 게 핵심이다. 아직 수만 명까지 조직되지는 못했지만, 사회에 이 문제를 알리고 정치적 의제로 자리잡게 한 것은 큰 성과라고 본다."
한상균은 2017년 수감 중일 때 미국노동총연맹-산별노조회의(AFL-CIO)로부터 '조지 미니-레인 커클랜드 인권상'을 수상했다. 상금 일부는 권리찾기유니온 설립에, 일부는 투쟁 사업장 연대기금으로 넣었다. '가짜 3.3 노동'은 사용자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를 프리랜서로 위장한 불법·편법 고용 형태를 말한다. 3.3%는 프리랜서, 개인사업자의 원천징수 세율이다.
- 노동운동으로 가족을 떠나 있는 시간이 길었다.
"좋은 아빠와 남편은 아니었다. 특히 자녀들이 한창 자라던 중요한 시기에 곁에 있어 주지 못한 것에 대해 두고두고 미안한 마음이 있다."
- 어릴 적 어머니를 고생시킨 아버지에 대해 원망이 있었다고 했다. 결국 같은 길을 걸은 것인가.
"아버지는 시골에 계셨지만 어려운 시절 DJ의 정치 활동을 돕는 역할을 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집에 오가기도 했고. 반면 어머니는 종갓집의 무거운 일을 혼자 전담하며 극심한 고생을 하셨다. 어린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며 아버지를 원망했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60 넘은 지금 돌아보니 절망적인 시대에 아버지가 자신의 인생을 걸고 신념을 선택한 것이 큰 모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당시에는 가족이 힘들어 그렇게 생각할 여유가 없었지만 이제는 아버지의 삶을 다시 생각하고 있다."
학습이 아닌 현장의 탄압과 분노가 '투사' 만든다
- 결국 가정보다는 노동운동을 선택해 한평생을 바친 것인데 계기는.
"삶이 먼저지 목표가 삶을 규정하지는 않는다. 현장에서 겪는 탄압과 분노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길을 찾아가는 것이지 학습이 활동가, 대표자, 투사를 만들지는 않는다. 나는 이것을 노동자의 인문학이라고 부른다.
아무리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이론으로 포장해도 인간애가 바탕에 없으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동지를 배신하거나 투항할 수 있다. 교과서에 쓰인 이론만 갖고 동지를 '반동'으로 규정하는 것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하지만 운동의 진정한 가치는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든 상황에서 외로운 결정을 회피하지 않고 동료들을 지켜내는 데 있다."
[인터뷰②] "민주노총이 AI·로봇의 전망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https://omn.kr/2fg9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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