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접는 기술이 사람 생명도 구합니다, 이렇게요
아무도 부러워 하지 않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되는 '어른의 종이접기'. <기자말>
[최새롬 기자]
사소하지만 중요한 문제들이 있다. 사람마다 중요도는 다르겠지만 먹다 남은 과자를 바삭바삭 유지하기도 그중 하나이다. 눅눅해진 과자를 먹는 건 아무래도 반가운 일은 아닐 테니까.
▲ 임윤아 오피셜 유튜브 캡쳐 임윤아가 설명하는 과자봉투 밀봉접기 |
ⓒ 임윤아 |
봉투를 밀봉하는 접기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과자 봉투 입구를 좁은 사다리 꼴로 접어준다. 2. 뒤집어서 꾹꾹 눌러 계단 접기를 해준다. 3. 중간쯤 접으면 갑자기 양옆에 삼각형 깍지가 생긴다. 4. 깍지를 뒤집으면 단단하게 밀봉된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접는 사람도 모르게 생겨나는 양 귀퉁이의 삼각형 깍지이다. 처음 접어보면 아주 작은 힘으로 생각보다 그럴듯한 것을 만든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손을 쓰는 사람(호모 하빌리스)이라는 새삼스러운 고유명사가 내게도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고무줄이나 클립이 없어도 과자를 구할 수 있다니, 조금은 뿌듯해진다.
내 생명을 구하는 종이접기
그런가 하면 자동차의 에어백이 펼쳐지는 기술에도 종이접기 원리가 들어있다. 종이접기가 대체 삶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하는 이들을 조금은 벙찌게 만드는 순간이다. 종이접기처럼 단순한 취미가 복잡하기 그지없는 삶을 도울 수 있을 리가, 어린아이 놀이에 불과한 종이접기가 생명을 담보하는 중요한 지점에 있을 리가 없다. 아니 생각을 하는 것도 과분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J 랭 박사는 곤충의 다리 접는 방법을 응용해 차에 탄 승객의 목을 보호하면서도 순식간에 펼쳐지는 에어백 접기 기술을 만들었다. 종이접기에는 접었다가 펼쳐지거나 평면이 입체가 되는 속성이 있다.
▲ 종이 현미경 '폴드스코프' |
ⓒ 폴드스코프 |
종이접기는 종이라는 소재를 떠나 공학과 접목한다. '접기 공학'. 종이 현미경 '폴드스코프'가 대표적이다. 2013년 스탠포드 대학 약대 물리학 조교수 마누 프라카시가 개발한 이 발명품은 종이에 인쇄된 전개 도면을 따라 그대로 접기만 하면 현미경이 된다. 종이접기의 두 번째 속성, 평면이 입체가 되는 것을 이용했다.
종이로 만든 현미경? 장난감인가 싶지만 배율이 2000배 이상이나 되는 진짜 현미경으로 시료에 말라리아균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높은 해상도의 현미경을 저렴한 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기존의 현미경은 비싸기 때문에 가난하거나 자원이 부족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었다.
접기는 수술을 돕는 기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스텐트는 혈관에 들어간 뒤 3배 크기의 원통으로 펼쳐져 혈관을 확장한다. 약간의 힘을 가하면 펼쳐지거나 팝업 되는 종이접기 방법이 생명을 구하는 데도 쓰이고 있는 것이다.
더하지 않고 이루는 경지
한 장의 전개도로 이음새나 추가적인 공작을 하지 않는 접기가 참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놀랍게도 꽃이 접혀 있다가 피는 것, 곤충의 날개가 접혔다가 펼쳐지는 방법이라고 한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보다 우월해 보이는 인간이 엎드려 참조하는 것이 결국 이 작은 것들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뜻할까. 과자 봉투나 종이 현미경은 최소한의 자원을 사용해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에어백이나 혈관 속에 들어가는 스텐트에 접었다 펼쳐지는 방법을 적용하는 것은 어떤 기술이나 자원을 '더 하는' 것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음을 예시한다.
부족한 것은 나쁘고 많을수록 아무래도 좋아 보이는 세상에 접기는 다른 방향을 제안하는 것 같다. 일단 종이접기는 더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니까. 부족하게 주어진 한 장으로 안과 밖을 만들고 연결해서 완성하는 일.
종이접기가 복잡한 삶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자세히 살펴보면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 참고 기사 : - 서울신문, 10년간 160개국 보건 책임진 1달러 종이현미경
- 서울신문, 인공위성·내과 시술 속 '종이접기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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