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 아기씨와 나라의 복을 기원하는 '수호천사'들의 수난
[임영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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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로 지정된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조선 초기 세조의 자녀 태를 담았던 내항아리와 외항아리로 알려졌다. 태항아리는 우리의 도자 역사와 흐름을 같이 했다. 도기에서 청자를 거쳐 분청사기와 백자로 변천했다. 1970년 고려대학교 교내 공사 중 발견된 국보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
| ⓒ 국가유산청 |
더욱 심각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출생률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자로 불리는 짐 로저스는 지난 2월 한국을 방문해 "이대로 가면 한국은 30년 안에 사라질 수도 있다"라고 섬뜩한 경고를 한 바 있다.
지금 우리는 유례없는 '인구절벽'이라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낮은 출생률과 높은 청소년 자살률. 이는 단순히 수치상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미래 사회와 국가경쟁력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절박한 현실이다.
그렇다면 옛사람들은 아기의 탄생과 생명의 존엄에 대해 어떠한 생각과 가치를 가지고 살았을까. 우리 선조들의 생명존중 사상이 담긴 독특한 문화유산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현실을 반추해 보는 것도 나름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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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태조 (1335-1408년)부터 태종(1367-1422년)까지 3대 왕의 태항아리는 도기이다. 태조 이성계의 태항아리(좌)와 그의 아들 태종 이방원의 태항아리(우) |
| ⓒ 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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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사적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세종의 적서 18 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의 태실이 군집을 이루고 있다 |
| ⓒ 국가유산청 |
현대의 탯줄 보관함과 생김새는 다르지만 옛날에도 생명의 기원인 '태(胎)'를 소중하게 다루는 의례가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엄마의 뱃속에서 9개월간 자라는 태아에게 생명을 공급하는 탯줄을 곧 '생명의 상징'으로 소중하게 여겼으며 태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아기의 운명이 달라진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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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의 태항아리와 태지석. 태지석에는 “辛丑年八月十五日卯時生 元子阿只氏胎(신축년팔월십오일묘시생 원자아지씨태)”라고 쓰여있다. 신축년인 1661년(현종 2년) 8월 15일, 오전 5~7시에 해당하는 묘시에 태어난 ‘원자 아지씨’의 태라는 뜻이다 |
| ⓒ 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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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숙종의 아들 연령군(1699~1719)의 태항아리 내항아리 바닥에서 출토된 동전(좌)과 고종의 8번째 아들 이육(李堉 1914~1919)의 태실에서 출토된 목간(우) |
| ⓒ 국립고궁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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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 보물로 지정된 서산 명종대왕 태실 및 비. 조선왕실의 많은 태실이 본래 자리에서 옮겨졌거나 훼손됐는데 명종의 태실은 원래 자리에 온전하게 남아 있다 |
| ⓒ 국가유산청 |
장태를 마친 뒤에는 땅을 주관하는 '후토신(后土神)'에게 제사를 지내 왕실 아기씨와 나라의 복을 기원하였다. 또한 금표석을 세워 왕실 자녀의 태실임을 표시하고 백성들의 출입을 금했다. 이러한 안태의식은 신생아의 탯줄 자체를 또 하나의 생명으로 보는 생명존중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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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충북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태실 중에서 가장 오래된 태실이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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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청자 태항아리. 고려시대 사용한 태항아리 |
| ⓒ 국립중앙박물관 |
태를 담았던 태항아리는 우리 도자 역사의 흐름과 궤를 같이 했다. 도기에서 시작된 태항아리는 고려청자와 조선 초기 분청사기를 거쳐 점차 순수 백자로 변화되었음을 유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종의 의례용기였던 백자 태항아리는 기본형태에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으나 조선 후기 들어 왕조의 몰락과 함께 그 위상을 잃게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많은 태항아리 중에서 조선 초기 세조의 자녀 태를 담았던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가 유일하게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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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된 단종 태실지.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서삼릉으로 옮겨진 후 단종의 태실에는 친일파의 무덤이 들어서 있다. |
| ⓒ 국가유산청 |
현재 태실 숫자는 정확하게 집계된 바는 없으나 180여 곳이 확인되었고 그중 25곳이 국가 및 지방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북도에 100여 곳으로 가장 많다. 이렇게 전국 각지의 명당에 자리한 조선왕실의 태실은 임진왜란과 일제 강점기 시절에 큰 시련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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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사천에 있는 세종대왕태실지. 정유재란 때 왜적에 의해 훼손되었다. 현재 세종대왕의 태실터에는 민간인의 무덤이 들어서 있고 태실비와 석재 일부가 한데 모아져 있다. 경상남도 기념물이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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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의 태항아리와 태지석. 안태용 도자기로 도기, 청자, 백자 등이 사용되었다. 백자 태항아리는 1601년(선조 34) ‘세종의 태실을 고칠 때 새로 만든 것’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
| ⓒ 국립고궁박물관 |
이때 태실뿐 아니라 왕자, 왕녀, 후궁들의 분묘 45기도 한꺼번에 이장했다. 전국 각지에 흩어진 태실들을 관리하기 어려우니 한 곳에 모아 보존하겠다는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웠다. 그러나 일제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조선왕실의 정기를 끊어내고 식민통치를 가속화하기 위해 전국의 태실을 서울 근교에 있는 서삼릉으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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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일제에 의해 서삼릉으로 옮겨진 조선 왕실의 태실. 마치 공동묘지처럼 오와 열을 맞추어 놓았다. 왼쪽 오석비군이 왕의 태실이고 오른쪽 화강석 비군이 왕자와 공주의 태실이다 |
| ⓒ 국가유산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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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가 서삼릉으로 옮겨놓은 조선 왕실의 태실. 마치 공동묘지처럼 만들어 버렸다 |
| ⓒ 국가유산청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격월간 문화매거진 <대동문화> 151호(2025년 11월, 12월)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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